도경동 "질 자신이 없었다"… 28초 사이 5득점, 믿을 수 없었다

김지한 기자(hanspo@mk.co.kr) 2024. 8. 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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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싱 男 사브르 단체전 3연패
'신스틸러' 도경동 결승 활약
오상욱 개인전 이어 2관왕
구본길 "동생들 덕분에 金따"
막내 박상원과 11살 차이
"펜싱 10연패 못하란 법 없어"

◆ 2024 파리올림픽 ◆

구본길, 오상욱, 도경동, 박상원(왼쪽부터)으로 구성된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이 1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단체전 결승에서 헝가리를 45대41로 제압한 후 기뻐하고 있다. 파리 이충우 기자

불과 3개월 전에 대표팀이 확정됐지만 선배들의 내공과 후배들의 패기를 무기로 장착한 '뉴 어펜져스'는 세계 최강이었다.

1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이 끝난 뒤 구본길·오상욱·도경동·박상원은 하나같이 서로에게 금메달 공을 돌렸다. 구본길과 오상욱은 "동생들 덕분에 우리가 금메달을 땄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반면 도경동과 박상원은 "형들이 잘 이끌어줬기에 첫 올림픽을 멋지게 장식했다"며 선배들을 치켜세웠다.

이들이 정식 결성된 것은 지난 5월. 기존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이었던 김정환과 김준호가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 이후 은퇴하고 국가대표선수촌 훈련 성과와 국제대회 경기력 등을 통해 빈자리를 채울 멤버로 도경동과 박상원이 낙점됐다. 오상욱과 구본길의 경험을 내세워 올림픽 단체전 3연패를 노렸지만 두 신예의 경험 부족이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그러나 '뉴 어펜져스'의 화력은 파리올림픽에서도 막강했다. 8강에서 캐나다를 45대33으로 완파한 대표팀은 4강에서 펜싱 종주국 프랑스를 45대39로 눌렀다. 한국 선수들의 빠른 공격 펜싱에 프랑스가 무너졌고, 그랑팔레를 가득 채우던 프랑스 홈 관중의 함성은 일순간 사라졌다.

결승에서 헝가리를 만난 한국은 초반부터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박상원이 헝가리 간판 아론 실라지를 5대4로 누르고 앞서갔다. 그러나 헝가리도 만만치 않게 추격했다. 6라운드에서 언드라시 서트마리가 홀로 7점을 뽑아 한국이 30대29로 1점 차 근소한 리드를 지켰다. 이때 '교체 멤버' 도경동이 구본길 대신 투입됐다. 이날 대표팀이 치른 세 경기를 통틀어 처음 피스트에 선 도경동은 상대 크리스티언 러브를 줄기차게 몰아세우고 찔렀다. 단 28초 만에 5연속 득점. 그랑팔레는 도경동의 현란한 플레이에 순식간에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1점 차였던 스코어도 6점 차로 벌어졌다. 마지막에 나선 오상욱이 금메달을 결정짓는 포인트를 따내자 선수들은 일제히 피스트에서 기쁨을 나누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2024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정상에 오른 한국 대표팀의 구본길, 박상원, 오상욱, 도경동(왼쪽부터)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감격에 젖어 있다. 파리 이충우 기자

이날 도경동은 경기가 끝난 뒤 비밀병기, 특급 조커, 신스틸러 등 다양한 '수식어 장인'이 됐다. 도경동은 "올림픽 금메달은 꿈이자 선수 인생 최종 목표였다. 김정환, 김준호 등 전 사브르 국가대표 형들이 '경기에 나가면 네가 어떤 놈인지 보여주라'고 했는데, 제가 어떤 놈인지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국군체육부대 병장인 도경동은 전역(10월 16일)을 두 달 앞두고 조기 전역 혜택도 받았다.

축구선수를 하다 중학교 3학년 때 펜싱으로 전향한 도경동은 남들보다 늦게 종목을 시작했다. 늦은 만큼 훈련을 열심히 했고, 기량도 빨리 늘었다. 2019년 23세 이하(U-23) 아시아펜싱선수권대회 개인·단체전 2관왕에 오르며 국제 무대에 등장했고, 2021년 첫 국가대표가 됐다. 도경동은 팀 내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톡톡히 했다. 구본길은 "8강전에서 내가 부진한 경기를 하니까 경동이가 '형, 자신 있게 해. (동료들) 믿고 뛰어'라고 하더라. 경동이가 한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4강전부터 내 플레이가 나왔다"고 말했다.

경기 후 도경동은 "투입될 때 형들이 불안해하지 않게끔 믿음을 줬다. 그만큼 나도 질 자신이 없었다"며 웃어 보였다. 도경동과 함께 대표팀에 새로 합류한 '막내' 박상원도 두 형들과 주축 멤버로 나서 패기 넘치는 플레이로 강렬한 올림픽 데뷔전을 치렀다.

박상원은 "선배들이 너무 잘해서 중압감도 크고,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갔다"면서 "펜싱을 시작할 때 TV로만 봤던 원우영 선생님, (구)본길이 형과 함께 해냈다는 것이 감회가 새롭고 신기하다"고 말했다.

개인전과 함께 단체전도 석권해 한국 펜싱 첫 올림픽 2관왕을 달성한 오상욱은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펜싱의 간판 선수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오상욱은 "개인전은 그랜드슬램을 달성해 기분이 좋았고, 단체전은 아시아 최초의 2관왕으로 역사를 쓸 수 있어 영광스러웠다"고 말했다.

올림픽 단체전 3연패에 모두 함께했던 구본길은 화려한 올림픽 '라스트 댄스'를 췄다. "가장 실력이 뛰어났고, 가장 금메달을 향한 자신이 있었던 건 이번 대회"라던 구본길은 "솔직히 후배들이 많은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고, 힘들어했다. 그걸 버텨내고 이겨내 좋은 결과를 만들어줘 후배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올림픽 3연패 비결로 끈끈한 팀워크를 단연 첫손으로 꼽았다. 대표팀은 1989년생 '맏형' 구본길부터 2000년생 '막내' 박상원까지 최고 11세 차이가 난다. 그러나 서로 간의 세대 차와 벽은 느껴지지 않았다. 제자이자 후배들을 본 원우영 사브르 대표팀 코치는 "올림픽 10연패도 가능할 것이다. 못하란 법이 있나"라고 거들었다.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의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됐다.

[파리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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