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40년 왕좌와 40년만의 굴욕

이호승 기자(jbravo@mk.co.kr) 2024. 8. 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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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양궁 대표팀이 2024 파리올림픽에서 여자 단체전 10연패, 남자 단체전 3연패의 대업을 달성했다.

압도적 세계 1위 대한민국 양궁을 만들어낸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 한국 축구는 한국 양궁의 정반대 길만 걷고 있다.

아시안컵 4강 탈락과 올림픽 진출 실패, 위르겐 클린스만 국가대표팀 감독 해임과 최근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잡음 등 올해 들어서만 축구협회는 축구팬들의 혈압을 올리는 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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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금자탑 쌓은 韓 양궁
공정·투명한 시스템의 성공
올림픽 탈락 충격 한국 축구
불투명·비합리 논란에 추락
한국사회 택할 모델은 명확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이 2024 파리올림픽에서 여자 단체전 10연패, 남자 단체전 3연패의 대업을 달성했다. 개인전과 혼성 단체전에서도 좋은 소식이 기대된다.

압도적 세계 1위 대한민국 양궁을 만들어낸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 아낌없는 지원, 두꺼운 선수층 등등.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이다.

대표팀에 뽑히는 것은 올림픽 금메달 따기보다 어려운 일로 정평이 나 있다. 선수 개개인은 6개월간 총 5차례에 걸친 선발전에서 활 4000발을 쏘며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대회가 열리는 해에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하느냐가 유일한 선발 기준이다. 직전 연도 대회의 금메달리스트가 탈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경력은 물론이고 학연과 지연, 협회 고위직과의 친소관계 따위는 발을 붙일 수 없다.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으니 메달리스트조차 안일해질 수 없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선수들도 희망을 가지고 훈련에 매진할 수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대한양궁협회이고, 그 뒤엔 양궁 발전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해온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있다.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에 이어 2005년 양궁협회장에 취임한 정 회장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철저히 지켜오고 있다. '협회 운영은 투명하게, 선수 선발은 공정하게 해달라'는 원칙만 주문할 뿐이다. 경기장까지 동선을 직접 걸어보며 체크해 숙소를 정한다든지, 보양 특식을 공수한다든지, 전용 숙소와 전용 훈련장을 따로 마련하는 식의,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화도 많다. 통 크면서도 세심하고, 솔선하지만 나서지 않는 그의 '을(乙)의 리더십'은 경기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잘 드러난다. 정 회장은 "선수들이 워낙 잘해서 묻어가는 것 같다. 제가 운이 좋은 것 같다"며 "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할 것"이라고 했다.

축구로 생각을 돌리니 한숨부터 나온다. 지금 한국 축구는 한국 양궁의 정반대 길만 걷고 있다.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약체 인도네시아에 패하면서 10회 연속 올림픽 출전에 실패했다. 단순히 축구공이 둥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한축구협회의 파행적 축구행정이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아시안컵 4강 탈락과 올림픽 진출 실패, 위르겐 클린스만 국가대표팀 감독 해임과 최근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잡음 등 올해 들어서만 축구협회는 축구팬들의 혈압을 올리는 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 불투명한 의사결정 과정, 학맥과 인맥에 의존한 공정하지 못한 선수 선발 등은 수십 년째 고쳐지지 않는 축구협회의 고질병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은 축구협회 측의 선수 선발 개입 압력을 뿌리치고 공정하게 대표팀을 뽑았다. 그 결과는 4강 신화였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그 소중한 자산과 경험을 내팽개치고 퇴행했다.

이 모든 사달의 정점에 있는 정몽규 협회장에 대한 비판도 빗발치는데, 그는 묵묵부답이다. 대신 내놓은 답은 자신의 축구 인생 30년을 담은 회고록이다. 내용은 둘째 치고라도 그 절묘한 타이밍에 팬들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축구팬들이 "정의선 회장이 축구협회 회장을 맡아달라"며 하소연할까.

한 체육계 관계자는 "을을 자임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는 조직과 갑(甲)이 돼서 끼리끼리 나눠 먹으려는 조직, 이 점이 양궁협회와 축구협회의 가장 극명한 차이"라며 "성적이 모든 걸 증명한다"고 말했다.

두 협회 운영과 회장 리더십의 대비는 한국 사회에도 던져주는 시사점이 많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쪽이 어디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이호승 콘텐츠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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