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발레의 턴아웃

2024. 8. 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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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발레를 좋아한다.

발레리나의 균형 잡힌 몸매도 대단하지만 발레리노의 잘 다듬어진 섬세한 근육에서는 전율이 느껴진다.

파격을 선사하는 모던발레 작품 '봄의 제전'은 충격 그 자체다.

다 해어진 토슈즈 밖으로 드러난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의 상처투성이 발이 상징하는 것처럼 온전하게 숱한 인내와 고통의 시간들로 승부하는 세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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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발레를 좋아한다. 10년 전쯤 예술의전당에서 '백조의 호수'를 본 이후부터다. 중력을 거스르고 발끝으로 서서 수많은 턴과 점프를 해내는 무용수들에게 넋을 잃었던 그날의 감흥이 지금도 생생하다.

발레가 끌리는 첫 번째 이유는 필자가 몸담은 세계가 서류 작업이 많고 이성과 논리의 영역인 데 반해, 발레는 몸으로 하는 작업이고 감성과 직관의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발레를 보고 있으면 응축된 에너지가 분출하는 느낌이 든다. 단순한 우아함 그 이상이다. 말단 세포 하나하나 그리고 뇌신경과 혈관이 꿈틀꿈틀 살아나는 것 같다. 발레리나의 균형 잡힌 몸매도 대단하지만 발레리노의 잘 다듬어진 섬세한 근육에서는 전율이 느껴진다. 수석무용수들이 추는 독무의 기교와 탁월함도 경탄을 자아내지만 칼같은 군무도 작품에 대한 몰입감을 높이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백조의 호수'로 대표되는 클래식발레에서는 현란한 발레 기술과 정제된 완벽함에 빠져들 수 있다. 파격을 선사하는 모던발레 작품 '봄의 제전'은 충격 그 자체다. '왕자호동'과 같은 창작발레는 한국적인 정서를 음미하는 맛이 있다.

최근 발레를 콘셉트로 조달청이 하는 일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하나 만들었다. 다소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발레와 조달은 유사점이 꽤 많다. 무엇보다도 발레의 매력은 몸을 깎는 작업, 순수한 열정과 노력으로 성과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라는 데 있다. 발레는 극한의 단계까지 인간의 몸을 단련해 아름다움의 극치를 드러내 보이는 행위다. 위선이나 허위, 과장이 발붙이기 힘든 세계다. 다 해어진 토슈즈 밖으로 드러난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의 상처투성이 발이 상징하는 것처럼 온전하게 숱한 인내와 고통의 시간들로 승부하는 세계인 것이다. 조달기업도 다르지 않다. 조달기업이 생존하기 위한 제일의 무기는 자기 실력이다.

발레는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호흡을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시켜간다. 공공조달의 본질도 제품을 만드는 기업과 이를 필요로 하는 공공기관을 조화롭게 연계시키는 일이다. 발레와 조달 모두 참가자들의 조화, 균형, 합의가 성공의 전제다. 발레 꿈나무들이 세계적인 스타를 꿈꾸듯 공공조달도 우리 기업들의 세계 무대 진출이라는 지향을 공유한다. 발레에서 가장 기초 기술이 '턴아웃(Turn Out)' 포지션이다. 우리는 평상시에 허벅지 앞쪽 근육을 사용하는 '턴인(Turn in)' 상태로 생활한다. 발레는 발등이 바깥으로 향하도록 골반에서부터 '턴아웃'한 상태에서 무릎을 쭉 펴야 한다.

내부 논의 과정에서 발레와 조달을 연계하는 콘셉트는 너무 튄다는 걱정도 있었다. 설명과 설득에 치중하는 정부기관의 전통적인 홍보 방식이 안전하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대중의 감성에 호소하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우리 국민의 높아진 수준에 비추어 딱딱함보다는 세련됨이 더 호소력 있을 듯도 싶었다. 일종의 턴아웃 발상이다.

우리나라에는 불면의 밤과 혁신 의지를 자산으로 내로라하는 실력을 갖춘 기업들이 적지 않다. 이 기업들이 공공조달 시장에서 잠재력을 폭발시켜 세계적인 반열의 수출기업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해본다.

[임기근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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