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전문의 중심병원? 무조건 상급종합병원 찾는 환자 설득이 우선"

사진 왼쪽부터 하은진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 정진향 희귀난치성질환협회 사무총장, 임종한 주치의운동본부 운영위원장, 조영민 서울대병원 기획조정실장,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박종훈 병원정책연구원장, 문미란 소비자시민모임 대표, 박재일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대표가 1일 서울의대에서 열린 '의료개혁, 현장이 말하다' 토론회에 참석했다./사진=구단비 기자

"중증 환자의 처지가 끝난 후 2차 요양병원으로 보내야 하는 데 동의를 얻기 어렵습니다. 열심히 치료했지만, 환자·보호자와 '라포'(친밀감)가 무너지는 거죠. 보내고 나면 환자는 불만족하고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요. 병원만 구조전환을 하겠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찾아온 환자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인데, 환자들이 (구조전환에 대한) 공감대를 갖지 않는 상황에서 가능할까요."

하은진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은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의대에서 열린 '의료개혁, 현장이 말하다.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과 전문의 중심병원'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하 교수뿐만 아니라 의료진은 정부의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을 위해선 먼저 환자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환자·소비자 단체도 "공감되는 이야기"라고 화답했다. 정진향 희귀난치성질환협회 사무총장은 "희귀질환 환자들에게도 (중증환자가 상급종합병원으로 가는) 방향이 좋다"며 "동네병원에서도 치료받을 수 있는데 꼭 상급병원에 가는 환자에겐 정부나 의료계 차원에서의 교육이 선행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하대병원에서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을 경험한 임종한 주치의운동본부 운영위원장은 1, 2차 병원 의료 질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임 위원장은 "3차 병원의 구조전환이 1, 2차 병원의 변화와 함께 가야 한다"며 "환자에게 '상태가 좋아졌으니 1~2차에서도 충분히 진료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동의받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했다.

전문의 중심병원을 위한 정부의 준비 단계가 좀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고려대의료원 산하 안암병원장을 역임한 박종훈 병원정책연구원장은 "상급종합병원이 전문의 중심이 되려면 '전문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전문의는 준비됐는가' '어떻게 육성하겠다'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라며 "전부 전문의를 안 하겠다고 뛰쳐나갔고 지방은 전문의가 없는데 수도권 '빅5' 전문의 중심 병원을 하겠다는 건 정부의 필수·지방 의료 육성 기조와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조영민 서울대병원 기획조정실장은 구조전환 전 현재의 전공의 의존도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조 실장은 "전공의 의존도가 50%라고 하면 30%로 줄였을 때 20%는 누군가 채워야 한다"며 "전환에 따른 비용이 큰데 병원 입장에선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건강정책심의위원회에서 획기적으로 반영돼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을 앞두고 있지만 의정 갈등으로 병원을 떠난 전공의의 복귀는 미비한 상황이다. 박재일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대표는 "(전공의가 없는 이 상황에서) 전문의 중심병원이 시급한 문제일까"며 "(전공의 대표인) 제가 '돌아와라, 명령이 내려왔다'고 해서 복귀할 상황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전공의가 요구하는 게 '원점 재검토'라고 하지만 본질적인 의미는 정부가 사회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체제 전환 등) 미봉책으로 끝날 정책을 연달아 발표하고 밀어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중 하나로 진료지원(PA)간호사 법제화를 꼽았다. 박 대표는 "전공의가 없고 교수는 없으니 간호사를 PA 인력으로 돌리면 해결되겠다는 (정부의) 생각은 의료 특성을 무시하는 행위"라며 "간호법 통과를 앞둔 것 같은데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상급종합병원의 구조전환 등을 포함한 1차 의료개혁 방안을 이달까지 내놓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하반기 전공의 추가 모집도 진행한다. 지난달 31일 기준 하반기 모집 결과에 따르면 전국 수련병원에 104명의 전공의가 지원했다. 이는 전체 모집인원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구단비 기자 kdb@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