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출신 작가 길후, 빌라쥬 드 아난티서 <불이>전 개최

부산CBS 김혜경 기자 2024. 8. 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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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구작 10점, 평면과 조각 50여점 등 선보여
길 후 GIl-hu, 사유의 손 The Thinking Hand, 2010, 캔버스에 혼합매체 Mixed media on canvas, 260x194cm 학고재 제공

작가 길후 개인전 <불이(不二)>가 1일 부터 31일 까지 부산 빌라쥬 드 아난티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21년 학고재에서 개최된 <혼돈의 밤>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이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구작 10점과 새롭게 선보이는 평면 및 조각 50여 점으로 구성된다.

길후는 만물의 근원과 감각의 영역을 초월하는 정신성을 수십 년간 탐구해 왔다. 고요한 깨달음의 순간을 담은 미륵불의 초상부터 세상의 창조적 에너지를 그려낸 유화, 이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조각까지, 하나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해서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다양한 매체와 스타일의 작품을 관통하는 그의 예술적 화두는 바로 '깨달음'에 자리한다.

2000년대에 들어 불학에 정진한 그는, 특히 불교에서 최고의 경지라 일컫는 '위없는 완전한 깨달음(無上正等覺·무상정득각)'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깨달음의 세계를 우리는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교리나 언어로 진리를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천 년간 여러 방편을 통해 이를 문자화하고 시각화해 왔다. 길후의 예술 세계 또한 언전불급(言詮不及)한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있다. 불교 경전인 『유마경』에서는 대립을 떠난 경지를 '불이(不二)'라 부른다. 선과 악, 빛과 어둠,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의 경계가 사라져 일체 평등한 경지가 불이의 의미다. 번뇌가 즉 보리이고, 보리가 즉 번뇌라는 뜻이며(煩惱卽菩提), 생사와 열반에 구분이 없음을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로써 표현하고 규정하는 행위 자체가 진리가 될 수 없음을 유마거사는 침묵으로 설명했다. 길후는 이러한 침묵의 세계를 시각 예술로 표현한다. 2010 년대부터 선보인 <현자>와 <사유의 손>에서, 작가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인간의 삶에서 포착된 깨달음의 순간을 그려냈다.

작품 속의 '현자'는 부처인 동시에 작가이기도,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이기도 하다. 바르게 보고 행하는 수행을 거쳐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길 후 GIl-hu, 현자 The Wise Man, 2013, Mixed media on canvas 캔버스에 혼합매체, 162x130cm 학고재 제공


작가는 2020 년대부터 일필휘지의 에너지가 담긴, 선(線)적인 요소가 지배적인 유화를 선보여왔다. 흩날리듯 켜켜이 쌓아 올려진 선에는 인연화합에 따라, 흘러내리거나 솟구쳐 오르는 고정불변한 진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인간의 형상 같기도, 커다란 나무의 모습 같기도 한 형체는 꿈과 같은 우리의 삶을 연상시킨다. 현상의 모든 것은 우리가 매 순간 선택한 마음의 거울에 따라 그 모습과 느낌을 달리 한다. 작가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마음의 세상임을 상기한다.  

<사유의 손>은 수신(修身)의 요체(要諦)인 정각정행(正覺正行)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정각(正覺)은 바른 자리를 깨달았다는 뜻이다. 바른 자리는 유무가 아니고, 선악도 아니며, 시비도 아니다. 생사도 떠나며, 고락도 불허한다. 만일 이 바른 자리를 깨닫고(覺) 보면 바른 자리가 곧 부처님의 마음자리이며, 동시에 각자의 마음자리임을 알게 된다.

'사유'는 정각을 가리키며 작품에서 90도로 기울인 얼굴이 정각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그려졌다. 나무의 뿌리처럼 굵고 커다란 두 손은 바르고 원만한 행위,  즉 정행(正行)을 상징한다. 검은 두 눈을 지닌 인물은 나이도, 성별도 가늠할 수 없다.

뱃속에 웅크린 자세로 자리를 튼 태아를 상기하기도, 생을 다 하고 자연으로 돌아간 사람의 몸을 떠올리기도 한다. 생사에는 다름이 없으며, 생(生)을 가지고 태어나는 모든 존재는 탄생과 소멸이라는 순환을 거친다는 점을 은유한다.

<현자> 2022 캔버스에 혼합매체 200x130cm 길후는 2010년대부터 꾸준히 '현자'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려왔다. 견성(見性)을 통해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한 현자의 모습을 배경과 구분이 모호한 형태로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작품 속 두텁게 쌓아 올려진 마티에르는 작품에 조각적 입체감을 더한다. 그의 회화에서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특성 중 하나다.

현자는 기도하는 사람의 형상으로 보이는 동시에, 높이 솟아오른 산 봉우리의 모습을 띠고 있기도 하다. 진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진리 안에 모두가 일체임을 상기한다. 우측 상단의 붉은 색채는 빛이 작열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깨달음을 얻은 현자의 기쁨을 강렬하게 시각화한다.

길후 작가는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88년 계명대학교 회화과 졸업 후 1996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 SAC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여 같은 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포항시립미술관(포항), 송장당대문헌전시관(베이징) 등 국내외 기관에서 개인전을 선보였으며, 2014년에는 베이징 화이트 아트박스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했다.

2021년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2020년 창원조각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서울시립미술관(서울), 대구미술관(대구), 소카 아트센터(베이징), 우봉미술관(대구) 등에서 개최한 단체전에 참여했다. 2021년 제11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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