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협력’ 사라진 군 정신 교재···“힘에 의한 평화” 윤 대통령 발언 그대로

곽희양 기자 2024. 8. 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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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의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 표지. 국방부 제공

독도를 ‘영토 분쟁지역’으로 기술해 질타를 받았던 군인 정신교육 교재가 8개월 만에 다시 나왔다. 남북 화해·협력 관련 기술은 자취를 감췄고 통일에 대한 언급은 크게 줄었다. 대신 “힘에 의한 평화”와 “내부 위협 세력”에 대한 기술이 추가됐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기조에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국방부는 1일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 교재는 이달 중에 전군에 배포된다. 지난해 12월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기술해 전량 회수됐던 교재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였던 2019년 3월 펴낸 기존 교재를 대체하게 된다. 정신교육 교재는 5년마다 발간된다.

‘남북 화해·협력’ 사라져

이번 교재에서 남북 화해·협력에 대한 기술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018년 9·19군사합의에 대한 언급은 없다. 통일에 관한 기술은 3페이지뿐이다. ‘통일의 필요성’이 1페이지 미만, 윤 정부의 대북 정책인 ‘담대한 구상’이 2페이지로 쓰였다.

2019년 교재에선 이승만 정부를 시작으로 역대 정부의 통일 정책을 담았다. 분량 역시 16페이지였다. 당시에는 “또 다른 국군의 사명은 조국의 통일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는 기술도 있었다. 화해·협력에 대한 기술이 사라진 것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장병들은 총을 들고 싸워야 하는 군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북 화해·협력은 외면하고 대결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 발언 그대로 담았나?

지난해 12월 논란이 됐던 “힘에 의한 평화”는 수정없이 그대로 담겼다. 교재는 “평화를 구걸하거나 말로 하는 평화, 가짜 평화에 기댔던 나라는 역사에서 사라졌다”며 남베트남 사례를 들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자주 사용하는 “북한과 적당히 타협해 얻은 가짜 평화”, “힘에 의한 평화” 발언과 겹친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인은 힘을 전제로 평화를 유지하는 게 당연해서 (해당 문구를) 뺄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다.

“내부 위협세력”이란 표현도 지난해 12월 그대로 유지됐다. “북한에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면서 이적 행위를 자행하는 세력”이라고 정의하며 2014년 통합진보당의 해산사건을 그 예로 들었다. 이 역시 ‘반국가세력들이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취지의 윤 대통령의 발언과 닮아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내부 위협세력이 명확하게 있다는 사실을 장병들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독도 기술 바로 잡고, 이승만 기술 줄여

지난해 12월 비판받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기술은 줄어들었다. 이 전 대통령 생애를 담은 별도 기술을 없앤 것이다. 지난해 12월 교재에선 이 전 대통령의 반공주의 행보를 강조하면서 4·19 혁명으로 인한 하야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기술이 줄어든 이유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역사 교재가 아니어서 이 전 대통령의 생애까지 담을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질타를 받은 “댜오위다오, 쿠릴열도, 독도문제 등 영토분쟁도 진행 중에 있어”라는 표현은 삭제됐다. 이번 교재에서는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라며 “독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독도는 외교 교섭이나 사법적 해결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기재했다. 이어 “우리 군은 독도에 대한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하고 엄중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2019년 교재에 없었던 “북방한계선(NLL)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해상 경계선”이라는 기술이 새로 담겼다. 북한은 NLL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번 교재에는 집필진·감수진·자문위원은 별도로 기재하지 않았다. 국방부 관계자는 “관련 부처와 동북아역사재단, 국립외교원 등의 자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역대 교재에서 집필진 등이 기재되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 집필진의 신원이 공개돼 정치적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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