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티메프' 제도개선 착수…"에스크로 도입·정산주기 단축"
(서울=연합뉴스) 이율 채새롬 박재현 기자 = 정부가 위메프·티몬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에 본격 착수했다.
판매사 정산대금을 쌈짓돈처럼 굴릴 수 없도록 에스크로(결제대금예치) 전면 도입과 정산 주기 단축 등이 검토되는 가운데 이커머스 업체가 겸하고 있는 결제대행업(PG)에 대해 관리·감독 강화도 추진된다.
금융당국은 1일 연구기관, 지급결제 전문가들과 회의를 열고 제도개선 방안에 대한 협의를 개시했다.
PG사에 대한 규제가 담긴 전자금융거래법 외에도 전자상거래법, 대규모유통업법, 온라인플랫폼법 등을 아울러 전방위적 검토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위메프와 티몬 등 플랫폼 사업자들이 힘이 세지면서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스스로 PG사를 내재화한 게 근본적 문제"라면서 "한 업체가 물건을 판매하고 정산하고, 관리하고, 배송까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있는데 기존 규제체계는 이런 업태가 생길지 예상하지 못하고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판매대금 정산을 50∼60일까지 미루며 자금을 활용하면서도 금융기관과 같은 규제를 받지 않아 '그림자 금융'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부실이 발생하면 위험이 전 업권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한폭탄'으로 여겨진다.
또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마어마한 그림자 금융이 형성되고 있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산주기 단축, 결제대금 예치를 넘어서는 종합적 규제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반적으로 이커머스와 지급 결제 역할 분담을 어디까지 해야 할지, 경제 주체 간 누가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가져가는 게 좋을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허가받아야 하는 금융사와 달리 등록업체인 PG사에 대해서는 법적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아 관리·감독에 소홀했다고 국회 등에서 지적받은 것과 관련해서도 경영개선 권고나 명령권을 도입하는 등의 형태로 관련 규정을 손볼 예정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이날 오픈마켓 사업자들의 판매 대금 정산 실태를 점검하기 위해 네이버와 카카오, 쿠팡, 지마켓, 무신사 등 8개 주요 오픈마켓 사업자들을 소집, 업체별 판매대금 정산 주기 및 관리 방식을 공유하고 제도 개선 논의에 대한 의견을 받았다.
공정위는 티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에스크로 전면 도입과 정산 주기 단축을 검토 중이다.
에스크로는 구매자와 판매자 간 신용관계가 없을 때 제3자가 결제 대금을 보관하다가 거래 조건이 충족된 뒤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전자상거래법은 통신판매업자가 선지급식 통신 판매를 할 때는 에스크로를 이용하거나 소비자 피해 보상보험계약을 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현행법상 티몬과 위메프 등은 통신판매업자가 아닌 중개업자인 플랫폼으로 해석된다. 판매업자로 보더라도 신용카드로 대금을 지급하거나 일정 기간 분할돼 공급되는 재화는 에스크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공정위는 정산 대금 미지급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플랫폼을 통한 거래에 에스크로 도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네이버와·쿠팡, 11번가 등 많은 플랫폼 사가 이미 에스크로나 이와 유사한 제도를 운용 중인 만큼, 업계의 반발도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정산 주기 관련 제도 개선은 법 개정을 통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상 유통업자는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라 월 판매 마감일로부터 직매입 60일, 위수탁 40일 이내에 대금을 정산해야 한다.
하지만 유통업법에 적용받지 않는 티몬 등 플랫폼들에 대해서는 정산 주기를 규정한 법 규정이 없는 상태다.
때문에 전자상거래업체들은 각자 판매자와 자율 협약을 통해 정산 주기를 정해왔다. 통상적인 정산 주기는 구매 확정 후 1∼2일가량이지만, 티몬과 위메프는 40∼60일가량으로 매우 길었다.
공정위는 법 개정을 통해 대규모유통업법과 유사한 방식으로 플랫폼의 정산 주기를 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물품을 직접 판매하는 유통업자와 달리 단순 중개만 하는 플랫폼의 특성상 정산 기한은 상대적으로 더 짧게 설정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티몬 캐시'처럼 이커머스가 발행하는 상품권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1999년 상품권법이 폐지된 이후 사업자마다 자유롭게 상품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됐지만, 관리 감독이 어려워지면서 상품권을 '돌려막기' 수단으로 악용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상품권에 대해서는 사실상 아무런 규제가 없는 상태"라며 "티몬 위메프 사태로 쟁점이 된 만큼 개선 방안을 모색해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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