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모든 시나리오 준비”, 하메네이 ‘직접 보복 명령’…불확실성 속 강 대 강 치닫는 중동

김서영 기자 2024. 8. 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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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테헤란에서 1일(현지시간) 피살된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의 장례식이 열려, 하니예의 관을 실은 트럭에 추모 인파가 모여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정정파 하마스 최고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 피살을 계기로 이란과 이스라엘이 또다시 확전 기로에 섰다. 자국 수도 테헤란이 암살 시도에 뚫리는 수모를 겪은 이란이 이스라엘에 가할 보복 수위에 관심이 쏠린다. 이란 최고 종교지도자이자 군 통수권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직접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명령하고, 이스라엘은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했다”고 경고하는 등 양측은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갔다.

1일(현지시간) 알자지라·CNN 등에 따르면, 이날 이란 테헤란대학에서 하니예의 장례식이 열렸다. 하니예가 전날 테헤란에서 암살당한 이후 하루 만이다. 이란 국영 프레스TV는 이 장례가 ‘국장’이라고 전했다.

장례식에서 칼릴 알하야 하마스 대변인은 “하니예 암살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시오니스트 집단(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를 불러일으킬 것이라 확신한다”고 연설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마즐리스) 의장은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은 이란 영토에서 야습을 저지른 것에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하메네이가 장례 기도를 주관했다. 그동안 하메네이는 가장 중요한 고위급 인사의 장례에서만 직접 기도해, 외국 인사 추모 기도에 나서는 건 이례적이다. 알자지라는 “이란이 하니예를 기리기 위해 지난 5월 사망한 이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과 같은 대우를 하고 있다”는 전문가 견해를 전했다.

장례식에는 수천명이 모였다. 하니예의 관에는 팔레스타인 국기가 드리워졌으며, 많은 이들이 팔레스타인과 이란 국기를 들고 있었다. 장례식 이후 하니예의 시신을 태운 차량이 테헤란의 아자디 광장까지 약 6㎞를 이동했으며 추모 인파가 뒤따랐다.

암살된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의 장례식이 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대학에서 열려 이란 최고종교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추모 기도를 하고 있다. 이란 국영 프레스TV 엑스 갈무리

하니예 피살을 계기로 이란과 이스라엘 관계는 영토 내 직접 타격을 주고받았던 지난 4월 이후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번 피살은 새 대통령 취임식 당일 수도 테헤란 한복판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이란의 충격이 특히 컸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이란은 이스라엘에 보복을 다짐했으며, 이란이 내놓을 보복 수위에 일대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

이날 하메네이는 이스라엘을 두고 직접 보복 명령을 내렸다고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하메네이는 이날 오전 최고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해 이 같은 명령을 내리며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공격을 대비한 방어 계획도 세우라고 지시했다. 하메네이는 군통수권자이기도 하다.

양측 갈등이 전면전으로 확전할지는 향후 서로 주고받을 공격의 목표물과 헤즈볼라, 후티 반군, 이라크 민병대 등 주변 대리 세력의 반응 등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NYT는 “이란은 공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예멘, 시리아, 이라크 등 다른 전선에서 동시 공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 관리 3명은 “이스라엘의 군사시설을 무인기(드론)와 탄도미사일로 대규모 합동 공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지만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는 일은 피할 것”이라고 NYT에 전했다.

일각에선 이란이 미국까지는 끌어들이지 않는 선으로 대응 수위를 조절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이란이 자존심을 크게 다쳤으나 수위를 참작할 명분은 있다는 것이다. 안드레아스 크리그 런던킹스칼리지 교수는 “이 공격은 이란 고위 관리가 아닌 외국 손님을 표적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란이 대응을 조정할 여지가 있다. 이란은 어떤 식으로든 대응하겠지만 그것이 전환점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NYT에 따르면 헤즈볼라 고위급과 하마스 지도자를 살해하는 데 성공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상징적 승리’를 주장하며 휴전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다만 이는 네타냐후 총리가 휴전 협상을 정권 유지에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이란 테헤란에서 1일(현지시간) 피살된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의 추모식이 열려, 하니예의 관을 실은 트럭에 추모 인파가 모여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네타냐후 총리는 ‘강 대 강’ 언급을 이어갔다. 그는 이날 대국민 TV 연설에서 지난 며칠 동안 적에게 “치명적 타격”을 가한 점을 언급하며 “힘든 시기가 다가온다. 모든 시나리오가 준비돼 있다”고 했다. 다만 하니예를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또한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끝내라는 요구에 대해선 “예나 지금이나 그러한 목소리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휴전 및 인질석방 협상은 최악의 악재를 만나 한동안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이 협상에서 하마스에 압박을 가하고자 하니예를 노렸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최소한 하마스가 하니예의 후계자를 결정할 때까지는 논의에 진전이 없으리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니예는 협상에서 하마스 측 협상 대표를 맡았다. 미 외교관 출신 발리 나스르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협상 상대가 암살된 상황에서 지금 휴전이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이슬람 세계 곳곳에선 하니예 암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파키스탄, 모로코, 튀르키예, 튀니지, 요르단 등에서 인파가 모여 이스라엘을 규탄했으며 “하니예, 당신의 피가 세상을 바꿀 것”, “우리는 모두 하니예이며 하마스다” 등의 문구가 등장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선 항의 행진이 벌어졌으며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는 애도의 날을 선포했다.

긴장이 커지면서 유나이티드항공, 델타항공 등 미국 항공사들이 이스라엘 텔아비브행 운항을 속속 중단했다. 미 국무부는 레바논 여행 위험 수준을 ‘여행 재고’에서 ‘여행 금지’로 상향했다. 미국이 자국민을 레바논에서 대피시킨 건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전쟁을 벌였던 2006년이 마지막이다. 현재 레바논에는 미국인 약 8만6000명이 거주하고 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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