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티메프 사태에 담긴 이커머스의 '민낯'

김아름 2024. 8. 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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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주기·대금보관방법 등 입법 예정
소상공인에 이자 부담 떠넘기는 상황
관행으로 이어온 시스템 바꿔야 해
그래픽=비즈워치

벌써 한 달

위메프가 입점 업체들의 정산을 제 때 진행하지 못하면서 시작된 큐텐 사태가 어느덧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한 달입니다. 처음 정산 문제가 제기됐던 지난달 중순, 큐텐 측은 "시스템 문제"라고 해명했지만 이날 검찰이 티몬과 큐텐 본사, 구영배 큐텐 대표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면서 이번 사태는 수천억원대 '사기' 사건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지난달 29일 열린 긴급 현안질의에 참석해 고개를 숙이고 사과한 구영배 큐텐 대표/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사건은 이제 유통업계가 아닌, 정부와 검찰, 경찰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이미 구 대표는 출국금지 명령이 떨어졌고요. 검찰은 구 대표에게 1조원대 사기, 400억원대 횡령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구 대표가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대금을 빼돌려 '위시(Wish)' 인수에 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소비자들과 판매자(셀러)들은 다른 이커머스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국내 이커머스 생태계는 특이합니다. 수많은 업체들이 난립해 있고, 그 중 대다수가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던 만년 적자 기업입니다. 웬만하면 벌써 사업을 접었어야 할 지경인데, 점점 더 몸집을 불리고 있습니다. 티몬과 위메프가 그랬듯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어떨지 모릅니다. 불신이 생긴 겁니다.

다 바꿔

업계에서는 또다시 이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중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최대 두 달이 넘는 정산 주기 개선과 제 3의 금융기관에 정산 대금을 맡기는 '에스크로(escrow)' 도입입니다. 애스크로를 도입하면 플랫폼이 아닌 금융기관이 정산 대금을 갖고 있다가 배송이 확인되면 대금을 지급합니다. 이번 큐텐 사태처럼 정산 대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일을 막기 위한 장치입니다.

정산 대금은 이커머스의 돈이 아닙니다. 입점한 판매자가 제품을 팔고 받아야 할 돈을 잠시 보관하고 있는 거죠. 이걸 중간 유통업체인 플랫폼이 자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실제로 티몬과 위메프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커머스들은 에스크로나 그에 준하는 시스템을 갖춰 정산 자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지난달 29일 열린 긴급 현안질의에 참석한 류화현 위메프 대표와 류광진 티몬 대표, 구영배 큐텐 대표/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지나치게 긴 정산 주기도 손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르면 매출 1000억원이 넘는 소매업자는 위탁판매의 경우 40일, 직매입의 경우 60일 이내 정산이 의무입니다. 하지만 오픈마켓은 이 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각자 알아서 하라는 수준입니다. 플랫폼마다 정산 주기가 제각각인 이유입니다. 

티몬과 위메프가 정산 주기가 최대 60일이 넘는 익익월 정산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논란이 됐죠. 다른 곳들도 한 달을 훌쩍 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SSG닷컴이나 무신사 등은 익월 10일에 전월 대금을 정산합니다. 월말 매출의 경우 10일, 월초 매출의 경우 40일이 걸리는 셈입니다. 반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나 11번가, G마켓 등은 구매확정 다음 날 대금이 지급되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빠른 정산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정치권에서도 움직임이 있습니다. 지난달 29일에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에스크로 도입 의무화와 정산주기 단축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했고요.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강준현 의원이 관련 법안을 낼 예정입니다.

이커머스의 엄살?

에스크로 도입 의무화에 대해서는 대부분 찬성하는 분위기입니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죠. 남의 돈 함부로 쓰지 말라는 이야기에 반박할 논리는 없을 테니까요. 다만 에스크로가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쿠팡이나 컬리처럼 직매입 중심의 플랫폼은 정산대금을 운영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수수료가 매출액인 일반 이커머스와 달리 거래액이 곧 매출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큐텐의 사례처럼 오픈마켓이 자체 PG사를 운영하는 식으로 대금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기업이 자체 PG사를 보유하는 것이 아닌, 제 3의 업체가 관리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반면 정산 주기 단축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준비 없이 갑자기 정산 주기를 크게 앞당기면 당장 현금이 부족한 업체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겁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정산 이후 발생하는 반품·환불에 따른 역매출입니다. 대금을 지급했는데 반품이나 환불이 발생하면 플랫폼이 비용을 떠안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금 보유량이 많은 대형 플랫폼이야 다음달 정산 때 해당분을 반영하면 되지만 보유현금이 적은 중소 플랫폼에겐 타격이 될 수 있습니다.

플랫폼에 입점한 소상공인들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달 30일 성명문을 내고 정산 기일 10일 이내 입법 제정과 판매대금 보관 의무화 등을 요구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플랫폼 입점업체들은 느린 정산에 따른 자금 사정 악화 때문에 6%대 금리의 은행 선정산 대출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플랫폼이 입점업체의 매출을 쥐고 운영자금으로 쓰는 동안 소상공인들은 고금리 대출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환불을 받기 위해 위메프 사옥 앞에 몰려든 피해자들/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플랫폼이 긴 정산주기를 고수하는 건 그들이 '갑'이기 때문입니다. 대규모유통업법에서 정산 주기를 규정한 것도 갑의 위치에 있는 채널들이 납품업체의 규모에 따라 정산 주기를 조정하는 사례가 빈번해져서입니다. 그러다가 '사고'가 터지면 피해를 보는 건 힘없는 소규모 업체뿐입니다.

물론 긴 정산주기에 맞춰 운영돼 온 플랫폼이 갑자기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버티지 못하는 곳도 많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제대로 운영할 수 없는 플랫폼이 그간 소규모 판매업체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며 생존해 왔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처음 위메프에서 정산대금 미지급 사태가 벌어졌을 때 위메프 측은 '시스템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지금은 그게 사실이 아니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이커머스업계의 관행과 입점업체에 대한 부담 전가를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듭니다. 이 모든 게 진짜로 이커머스 시장의 '시스템 문제'였던 건 아닐까요.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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