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텃밭'서 트럼프 공개지지…실리콘밸리도 안갯속 [송영찬의 실밸포커스]
미국 실리콘밸리의 ‘거물급’ 인사 200여명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실시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공개 지지하고 나섰다. 테크 업계를 중심으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 선언이 잇따르는 데 대한 맞불을 놓은 것이다.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인 실리콘밸리에 정치적 균열 조짐이 나타나며 오는 11월 미국 대선의 향방도 안갯속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리스·트럼프 공개 지지 잇따라
31일(현지시간)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VC) 투자자 및 테크업계 창업자 200여명은 ‘카멀라를 위한 VC들’이라는 웹사이트에 해리스 부통령 공동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리드 호프먼 링크트인 공동창업자, 비노드 코슬라 코슬라 벤처스 창업자, 크리스 사카 로워카본캐피탈 창업자 등이 공동 성명에 서명했다. 이들은 “우리는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제도는 버그(오류)가 아니라 장치라고 믿는다”며 “우리 산업을 비롯한 모든 산업은 이러한 제도 없이는 무너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선거에 이 모든 것이 달렸다”고 덧붙였다.
공동 성명은 일부 인사들의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선언에 대한 맞대응 차원이다. 카멀라를 위한 VC들은 소개글에서 “몇 주간 수많은 VC 거물들이 트럼프 지지를 발표한 걸 지켜본 뒤 해리스를 지지하는 세 단락의 서약서를 작성해 10여명에 보낸 것이 시작”이라고 밝혔다. 엔젤 투자자 스티브 스피너는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실리콘밸리가 분열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전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것”이라며 “이곳은 여전히 민주당의 나라이고, 해리스의 나라”라고 말했다.
거물들의 집단 행동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선언은 이어졌다. 전 페이팔 최고경영자(CEO)였던 데이비드 마커스 라이트스파크 CEO는 이날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민주당은 온건파와 중도파를 외면하고 점점 더 좌파 이념을 채택하고 있다”며 “직면한 선택의 기로에서 2025년 공화당 행정부로의 복귀를 지지하고 지원한다”고 밝혔다. 앞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피터 틸 팰런티어 테크놀로지스 창업자 등도 공개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다.
대선 앞두고 '페이팔 마피아' 분열
대선을 계기로 이른바 ‘페이팔 마피아’의 분열도 가속화하고 있다. 페이팔 마피아는 1990년대 후반 핀테크 기업 페이팔의 창업자와 초기 멤버들을 일컫는 말로, 이들은 페이팔 매각 자금으로 유튜브, 링크트인, 테슬라, 팰런티어 등 다수의 유니콘 기업 창업·투자에 나서며 실리콘밸리 핵심 주역으로 꼽힌다. 그동안 페이팔 마피아는 통상 민주당을 후원하는 큰손으로 꼽혀왔지만 최근엔 지지 후보를 놓고 핵심 멤버간 공개 설전까지 벌어지고 있다.
온라인매체 데일리비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호프먼 창업자는 지난 10일 선밸리 콘퍼런스에서 “틸이 트럼프를 지지하며 ‘도덕적 문제’가 생겨 최근엔 그와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틸 창업자는 이 말에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호프먼 창업자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법적 소송에 자금을 댄 사례를 꼬집으며 “당신이 트럼프를 순교자로 만들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호프먼 창업자가 이에 “진짜 순교자가 됐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응수하며 설전은 커졌다.
실리콘밸리의 이같은 분위기는 안갯속 미국 대선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 기반으로 꼽히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가 빅테크 규제를 강화하고, 민주당 소속의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성소수자와 마약 등에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며 반감이 확대되고 있다. 공화당 역시 54명의 선거인단이 걸린 캘리포니아주에서 이길 만한 묘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폴리티코는 “실리콘밸리의 유권자들은 해리스의 테크 정책에 대한 입장을 보기 전까지 입장을 유보하고 있다” 분석했다.
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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