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와 혐오의 폭발’···영국 흉기 난동 참사가 극우 시위로

박은경 기자 2024. 8. 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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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정보가 폭력으로 바뀌는 데 24시간”
‘용의자=무슬림’ 등 추측 게시물 2700만 건 이상
30일(현지시간) 어린이 댄스 교실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영국 사우스포트에서 흥분한 군중이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이날 사우스포트의 한 댄스 교실에 복면 차림의 10대 용의자가 침입한 뒤 흉기로 어린이들을 마구 공격해 3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다치자 희생자 추모 행사에 참여한 일부 군중이 경찰과 충돌하며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사진 AP연합뉴스

영국에서 발생한 어린이 댄스 교실 흉기 난동 사건이 반이슬람 폭력 시위로 번지면서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용의자에 관한 거짓 정보와 극우 단체의 부추김이 더해지면서 비극을 추모할 새도 없이 또 다른 비극이 만들어졌다.

1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사우스포트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이후 영국 곳곳에서 반이슬람·반이민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30일 사우스포트에서 열린 시위로 경찰관 53명이 다쳤으며 골절이나 뇌진탕을 겪은 중상자도 8명 나왔다. 5명이 체포됐다.

시위는 더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런던 다우닝가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참가자들이 “우리 나라를 찾고 싶다”는 구호를 외쳤고, 경찰을 향해 맥주 캔과 유리병을 던지며 공격했다. 100명 이상이 체포됐다. 같은 날 더럼주 하틀리풀 머리가(街)에서 일어난 시위에서는 경찰차가 불탔다.

시위의 발단은 어린이 댄스 교실 흉기 난동 사건의 용의자를 둘러싼 가짜 뉴스다. 지난달 29일 오전 한 17세 소년이 댄스 교실에 난입해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6~9세 어린이 3명이 사망했다. 다친 어린이 8명 중 5명이 위중한 상태이고 현장에서 용의자를 막던 성인 2명도 중태다. 경찰은 이 사건의 용의자가 웨일스 카디프 태생으로 사우스포트 인근 마을 뱅크스에 거주해 왔다고만 밝히고 종교는 공개하지 않았다. 영국은 18세 미만 미성년 용의자의 신상은 상세히 밝히지 않는다.

30일(현지시간) 어린이 댄스 교실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시위대에서 경찰 차량에 불에 타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비극적인 사건이 반이슬람 혐오 시위로 변하는 데는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소셜미디어에는 범인의 이름이라면서 아랍식 이름이 떠돌았고 그가 소형보트를 타고 영국에 입국한 지 얼마 안 되는 이주민이라는 유언비어도 퍼졌다.

혐오 발언으로 여러 차례 논란이 된 전직 킥복싱 선수 겸 인플루언서 앤드루 테이트는 “침략자들이 당신 딸들을 학살하는데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서 부추겼다. 이 글은 조회 수 400만 이상을 기록했다. 극우 단체 ‘영국수호리그’(EDL)를 공동 설립한 영국의 반이슬람 활동가 토미 로빈슨은 정부를 향해 “국경을 폐쇄하고 모든 범죄자를 추방하라”고 했다. 채널3나우 같은 일부 매체는 흉기 난동범이 무슬림 망명 신청자라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흘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퍼진 가짜뉴스로 인해 혐오 집회가 여러 도시에서 일어났다.

더 타임스는 “거짓 정보가 폭력으로 바뀌는 데 24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면서 “이번 사태는 SNS 시대에 영국에서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가짜 뉴스 캠페인”이라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용의자가 무슬림, 이민자, 난민 혹은 외국인일 것으로 추측하는 SNS 게시물이 24시간 동안 최소 2700만 건 쏟아졌다고 더 타임스에 밝혔다.

경찰은 소셜미디어에 도는 피의자의 이름은 사실과 다르다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과도한 억측을 하지 말라”고 진화에 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엑스(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사우스포트 주민들은 우리의 지원과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며 “희생자를 위한 추모회를 폭력으로 강탈한 자들이 슬픔에 잠긴 지역사회를 모욕했다”고 폭력 시위대를 비판했다.

희생자 유족들도 목소리를 냈다. 이번 흉기 난동 사건으로 희생된 한 아동의 어머니는 “제발 폭력을 멈춰 달라”면서 “경찰은 (사건 후) 영웅적인 행동을 보여줬고, 우리에게는 이런 일(시위)이 필요하지 않다”고 호소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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