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정→필리버스터→통과→거부권→폐기 '무한루프'···민주당 득실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전국민 25만원 지원법'(2024 민생회복 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조치법안)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강행 처리에 들어가면서 여당은 또 다시 2박3일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나섰다.
야권이 '의석수'로 밀어 붙이고 여당은 '필리버스터', 윤석열 대통령은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맞서면서 해당 법안은 또다시 폐기 운명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법안 강행 처리와 거부권 행사에 따른 폐기가 반복되며 결론적으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는 셈인 가운데 민주당도 속내가 복잡하다.
1일 강유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민주당 정책조정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거부권에 대한 대응방안을 묻는 질문에 "국회는 할 수 있는 것, 이를 테면 입법청문회 등 국회법 안에서 할 수 있는 적극적 대응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탄핵소추와 국정조사를 함께 가는 것도 국회법 안에서 (야권이) 최대한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라 본다. 이에 대한 국민적 판단이 있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야권은 법안 폐기의 책임을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있음을 부각한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 국면에서도 법안 강행처리를 하는 야권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띄운다는 전략이다. '강대 강' 대치 속 법안 폐기 결론이 정해진 상황이다. 여당이나 거대 야당 모두 민생을 뒷전에 두기는 마찬가지란 비판이 나온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22대 국회가 임기 시작 후 약 60일 동안 실질적으로 통과시킨 법률안이 0건"이라며 "할 일은 안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만 골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어 "국회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뻔한 사안만 골라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키고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거부권을 행사하는 '무한 루프'(infinite loop) 강 대 강 대치가 반복되고 있다. 나라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고 했다.
민주당은 "법안 처리는 총선 민심을 받드는 일이며 국회 대치의 근본 원인은 대통령의 변하지 않는 태도"라는 주장을 앞세운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대변인은 정책조정위원회에서 "(총선을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았으면 반성하고 쇄신하는 것이 상식이다. 낮은 자세로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민의의 정당인 국회를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윤 대통령의 힘 자랑의 끝은 파국임을 경고한다"고 했다.
법안이 최종 부결·폐기되더라도 결과적으로 야당보다 정부·여당에 더 큰 부담이 될 것이란 계산도 작용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에 "민생 악화 책임은 결국 행정력이 따르는 집권 여당이 더 크게 질 수밖에 없다"며 "지금과 같은 강공책을 펼쳐서 현 정부를 빨리 끝내겠다는 기본 전략은 쉽게 바뀌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탄핵을 거론하면서 대통령을 흔들고 거부권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민주당 강성 유권자들로부터는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벼랑끝을 달리는 치킨게임이 야당에 전혀 부담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박 평론가는 "민주당도 제1야당으로서 정치에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총선을 포함해 최근까지는 현정부 실정으로 반사이익을 얻었다 할 수 있지만 결국 야당도 보여 준 게 없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며 "민주당이 강성 지지자의 지지는 얻을지 몰라도 여야 장기 대치에 피로감을 느끼는 중도층이 이탈할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도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힘이 오차범위를 넘어 민주당을 앞서고 있다"며 "중도층의 이탈이 최근 정당 지지율에도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여론을 살피면서 특정 시점에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21대 국회에서는 거부권에서 막히는 것까지만 보여드렸다. 앞으로도 거부권이 수없이 나올텐데 우리가 뭘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이라며 "(보여주는 것이 없을 때의) 국민들의 심판이 두렵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지지자들은 강한 투쟁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민생 현안들에 있어 성과도 내길 바란다며 "민심을 따른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되 이제는 성과를 낼 수 있는 방안도 찾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 비공개 회의에서 '제3자 특검(특별검사) 추천'의 내용을 담은 '채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처리를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3자 특검 추천 방식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안한 방식이기도 해 여야가 의견 접근을 이룰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정경훈 기자 straight@mt.co.kr 이승주 기자 gre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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