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기구, 베네수엘라 선거 기록 공개 요구 결의안 부결···마두로, 대법원에 감사 청구
대선 부정선거 의혹에 휩싸인 베네수엘라에 개표 기록 공개 등을 요구하는 미주기구(OAS) 결의안이 부결됐다. 국내외에서 선거 결과 기록을 공개하라는 압박이 높아지자 3선에 성공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자국 사법부에 투표 결과 감사를 맡겼다. 하지만 친여 인사들이 장악한 사법부가 공정한 결론을 내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요식행위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현지 일간지 엘나시오날은 31일(현지시간) OAS가 미국 워싱턴에서 연 긴급 상임이사회에서 베네수엘라 대선 투표 기록 공개를 요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찬성 17표, 반대 0표, 기권 11표로 부결됐다고 보도했다.
안건이 부결되면서 OAS 차원의 베네수엘라 부정 선거 의혹 조사는 이뤄지지 못하게 됐다. OAS 긴급 이사회 안건이 통과되기 위해선 34개 회원국 중 과반인 18개국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OAS 회원국이긴 하나, 활동을 중단한 쿠바는 이번 안건에 관여하지 않았다.
결의안에는 투표소별 개표 결과 공시, 외국 참관인의 개표 결과 검증, 베네수엘라 시민들이 평화롭게 시위할 권리 보호, 베네수엘라 상주 외교관과 망명 요청자 보호 등 네 가지 요구사항이 담겼다.
미국과 아르헨티나, 캐나다, 페루, 칠레 등 ‘친미’로 분류되는 나라는 이번 안건에 찬성했다. 당사국인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멕시코와 도미니카,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트리니다드토바고는 회의에 불참했다. 기권한 나라 중에는 마두로 정부에 개표 기록 공개를 요청한 콜롬비아와 브라질도 있었다. 일찌감치 마두로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한 볼리비아, 온두라스도 기권표를 던졌다.
브라이언 니컬스 미 국무부 서반구 담당 차관보는 이날 회의에서 마두로 대통령과 외국 정부들이 야권 후보인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의 대선 압승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니컬스 차관보는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가 아직도 구체적인 대선 결과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의 승리를 보여주기 싫거나, 선거 결과를 조작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비판했다.
반면 마두로 정부에 호의적인 멕시코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외국의) 개입주의를 멈춰야 한다”며 “OAS의 편향된 태도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참 이유를 밝혔다. 그는 베네수엘라가 구체적인 투표 기록을 공개해야 한다면서도 베네수엘라 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미주 국가 연대체인 OAS는 1948년 미주 지역의 안보 협력, 분쟁 해결 등을 목적으로 결성됐다. 2019 볼리비아 총선, 2021 니카라과 총선 당시에도 부정 선거 의혹이 나오자 해당국 감사 결의를 추진했다.
나라 안팎에서 선거 결과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마두로 대통령은 이날 대법원에 대선 개표 감사를 청구했다. 그는 “우리 정부를 향한 쿠데타 시도와 공격을 방어하고, 모든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베네수엘라에 대한 세계적 음모의 증거가 횡행하는 가운데 우리는 각종 범죄 행위를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법원 내 주요 직위에는 친여 성향 법관들이 대거 포진해 감사가 ‘보여주기식’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P통신은 베네수엘라에 대선 참관단을 파견한 미국의 인권 비정부기구(NGO) 카터센터가 “대법원에서는 독립적인 검토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고 전했다.
마두로 정부는 선거 외부 개입설을 계속 제시하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날 자신과 온라인에서 설전을 벌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야권의 선거 시스템 해킹에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해킹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 검찰은 전날 북마케도니아에서 자국 선거 시스템을 해킹한 정황이 있다며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같은 날 베네수엘라 정부는 선관위 통신 시스템에 대한 공격 시도를 확인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 전문가가 포함된 특별자문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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