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수심 때문이라고?' 韓 수영 황금세대 부진 루머 확산[파리올림픽]
"성적 지상주의··· 성적 좋았다면, 루머가 미담으로 바뀌었을 것"
대한수영연맹 "선수들 사기 차원에서 그거 없는 루머 확산 자제해야"
한국 수영의 '황금세대'가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보이자, 부진 원인을 두고 근거가 미약한 소문들이 인터넷상에 무성하다. 수영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 전 루틴에 대한 코치의 과거 발언이 소환되는가 하면, 수영장 수심을 탓 하는 주장도 나오는 실정이다.
지난달 26일 한 유튜브 채널(더 코리아 스위밍)에 올라온 동영상에는 경영 국가대표 전담팀을 지도하는 전동현 수영 국가대표팀 코치의 발언이 소개됐다. 전 코치는 이 영상에서 직접 황선우와 김우민(이상 강원도청)의 경기 전 루틴에 대해 언급했다.
전 코치는 영상을 통해 "이 친구들(황선우·김우민)은 일단 누워서 핸드폰을 보다가 본인 (경기) 시간이 되면 스트레칭하고, 들어가기 전에 '쌤 저 다녀올게요' 이러고 간다. 그런 부분들이 특이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도자들이 봤을 때는 굉장히 답답하다. 3시간 뒤에 결승을 뛰어야 하고 메달을 따느니 마느니 전 세계가 집중하고 있는데 핸드폰을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스트레칭도 해야 하고, 왔다 갔다 뛰면서 맥박도 올려야 하고. 우리(코치들)는 이런 걸 원하지 않느냐. 옆에서 보는 사람은 얼마나 답답하겠나"고 말했다. 이어 "자야 한다고 해서 좀 쉬어라, 눕혀 놓으면 폼롤러하고 게임하고, 물병 던지기 놀이를 한다. 그러면, 와(감탄사) 저런 애들이 과연 메달을 딸까(싶다)"고 토로했다.
코치, "남 다른 루틴" 칭찬 발언 vs "너무 믿은 것 아니냐, 실력 퇴보"
전 코치의 이 같은 발언은 사실과 다른 취지로 왜곡돼 확산하고 있다. 동영상의 앞 부분을 보면 전 코치가 황선우와 김우민의 루틴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전하는 듯하지만, 진짜 속내는 달랐다. 앞에 늘어놓은 말들은 사실상 두 선수의 남다른 루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전 코치는 "언젠가 한 번 이야기를 해보니까, 이렇게 해야지 본인은 마음이 편하다고 하더라"며 "그걸 내 방식대로 바꿀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한번 놔뒀는데 진짜 결과로 보여주니까 이제는 더 하라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항상 그런 식으로 하더라. 그게 그 친구들만의 방법이지 않나 싶다. 경쟁자들은 몸 풀고 밴드 당기기 같은 거 하는데, 우리 애들은 누워 있다. 그런데 경쟁 선수들을 이기니까 정해진 방법이란 건 없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올림픽 남자 계영 800m 경기에서 황선우, 김우민 등 남자 계영팀이 6위에 머물자 직후 이 영상은 온라인상에서 기대에 못 미친 성적의 원인으로 등장해 이슈가 됐다.
황선우와 김우민의 남다른 루틴을 사실상 칭찬한 내용인데도, 경기 전 핸드폰을 보는 등의 루틴 때문에 경기에서 진 듯한 취지의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또 네티즌들은 '코치진이 선수들을 너무 믿은 것 아니냐', '너무 믿으니 실력이 퇴보했다' 등의 추측성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이 일자, 1일 현재 이 영상은 해당 채널에서 사라졌다.
3m 안되는 수심 때문에 vs 모든 선수 동일 조건 + 황선우 발언 + 판잔러 등 기록 갱신 다수
수영장 수심 루머도 온라인상에 떠돌고 있다. 황선우 등 한국 선수들의 성적 부진이 '파리올림픽' 수영 경기가 펼쳐지는 라데팡스 아레나의 수심과 관련 있다는 것이 루머의 핵심이다.
세계수영연맹이 권장하는 올림픽 수영장의 수심은 3m지만, '파리올림픽' 수영 경기가 펼쳐지는 라데팡스 아레나의 수심의 경우 2.15m에 불과해 한국 선수들의 성적이 저조했다는 취지의 말들이 양산되고 있다.
수심이 얕을수록 바닥에서 튕겨 나오는 물살은 거세지고, 선수들은 큰 저항을 받을수록 체력 소모가 커진다는 주장이다. 모든 나라의 선수들이 같은 조건에서 경기를 벌이고 있기 때문에 한국 선수들의 성적 부진이 수심 때문이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여기에 황선우는 지난 2022년 TV 예능 프로그램(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한국에 대회 공식 수심 3m 수영장은 한 곳뿐"이라며 "우리나라는 아직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그 부분이 아쉽긴 한데 적응 잘하고 시합 잘 뛰자는 생각이 컸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황선우가 그동안 3m 수심이 되지 않는 수영장에서 훈련해온 상황을 언급한 것을 감안할 때 얕은 수심 때문에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은 그야말로 근거 없는 루머에 불과하다.
실제 미국 매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에 따르면 '파리올림픽'에서 메달 주인이 가려진 수영 종목 15개 중 7개 종목은 지난 2021년 도쿄올림픽 때보다 기록이 빨랐다. 나머지 종목에서도 1개 종목은 같았고, 7개 종목은 느렸다. 도쿄올림픽 당시 수영 수심은 3m였다.
특히 판잔러(19·중국)의 우승은 수심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1일(한국 시간) 수심이 얕다는 파리 라데팡스 수영장에서 열린 대회 남자 자유형 100m 결승에서 자신의 종전 기록을 0.40초나 줄인 46초40의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아시아 선수가 남자 자유형 100m 챔피언에 오른 것은 92년 만이다.
기대 컸을 뿐, 성적 부진 아님에도 "선수들 이전과 달리 기 죽어 보여"
이 같은 루머 때문인지, 파리 현지의 선수들이 힘들어한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1일 파리 현지에서 황선우, 김우민, 양재훈, 최동열 등 강원도청 소속 국가대표 선수들과 간담회를 연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선수들이 밝은 표정으로 맞이 했지만 이전의 만남과는 달리 기가 죽어보였다"고 수영 선수단의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수영 '황금세대'에 대한 기대가 컸을 뿐 성적이 부진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많다. 당초 목표는 메달 3개로, 대한수영연맹은 금메달 1개 이상을 기대했다. 예상치에는 못 미쳤지만 대한민국 수영은 이번 올림픽에서 의미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김우민이 남자 자유형 400m에서 동메달을 획득, 박태환 이후 12년 만에 메달을 안긴 데다, 남자 계영 800m에서는 수영 단체전 사상 첫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확산하는 '선수 루틴·수심 탓' 등의 루머가 성적이 좋았다면, 거꾸로 미담으로 전해졌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국가대표 수영 선수 출신의 A 씨는 "성적 부진 원인을 선수들의 루틴이나 수심 등을 들어 설명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루머는 성적 지상주의의 결과물이다. 메달을 따는 등 성적이 좋았다면 오히려 선수 루틴이 긍정적으로 재조명되고, 얕은 수심을 이겨냈다는 등 칭찬이 이어졌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선수들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가뜩이나 사기가 저하된 선수들을 두 번 죽이는 루머를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대한수영연맹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의 관련 취재에 "코치의 발언 취지가 왜곡된 내용 등의 루머가 확산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파리 현지에서 선수들이 경기를 벌이고 있는 만큼, 관련 입장을 자세히 밝히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선수들의 사기 저하 방지 등을 위해서라도 근거 없는 루머 확산은 자제해야 마땅하다"고 당부했다.
CBS노컷뉴스 동규 기자 dk7fly@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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