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m 물길이 눕는다, 수백년 물살 쏟아낸 박연폭포에 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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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처럼 일어났다가 사람처럼 드러눕는다.
18세기 조선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의 명작 '박연폭포'가 기운차게 움직이고 있다.
수백년 쉴 새 없이 물살을 쏟아오는 격무를 벌여온 겸재의 박연폭포를 사람처럼 의인화해 그에게 누운 채로 흘러가는 휴식을 선사한 것은 이 작가가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실현시킨 색다른 아이디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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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처럼 일어났다가 사람처럼 드러눕는다.
18세기 조선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의 명작 ‘박연폭포’가 기운차게 움직이고 있다. 65인치 엘이디(LED) 티브이 여덟개를 잇대어 붙인 길이 11m를 넘는 거대한 수평 화면 속에서다. 폭포 양쪽 검은 바위에 물안개를 피워 올리면서 세찬 물길을 아래로 움직이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 자체로 거인의 모습을 연상시키지만, 폭포를 담은 화면은 서 있지 않고 어두운 전시실 바닥 속에 누운 구도로 놓여있다. 수직으로 꽂혀야 할 물길이 수평 구도로 포착되니 너르게 흘러가는 장강처럼 비치며 편안함을 안겨준다. 물론 전시실 입구에는 수직으로 곧추선 폭포의 또 다른 엘이디 동영상이 우람하게 수직으로 놓여 폭포의 생동감을 전해주면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대구 인당미술관에서 6월 초 개막한 중견 미디어 작가 이이남(55)씨의 신작전 전시 현장은 독특한 파격적 연출을 시도한다. 첨단 영상기술로 전통 산수화 명작의 보이지 않는 기운생동을 끄집어낸다. 수백년 쉴 새 없이 물살을 쏟아오는 격무를 벌여온 겸재의 박연폭포를 사람처럼 의인화해 그에게 누운 채로 흘러가는 휴식을 선사한 것은 이 작가가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실현시킨 색다른 아이디어였다.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지쳐가는 현대인의 심상을 옛 진경산수의 명화에 투영시켜 전에 없는 구도와 이미지를 빚어낸 것이다. 전통 화조화나 산수화를 입체적인 영상 설치로 재구성하면서 그림 자체를 의인화해 조형의식을 표출하는 이번 전시는 전통 산수화 이미지를 최첨단 디지털 기술로 재해석한 작품 10여 점을 내놓았는데 작가 특유의 실험적 시도를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새롭다.
조선시대 전통 묵죽도 속의 풍설에 흔들리는 대나무 잎의 움직임을 표현한 들머리 로비의 '8폭 묵죽도’로 시작하는 이 전시에서 박연 폭포와 더불어 주목되는 작품이 1층 오른쪽 끄트머리 엘이디 병풍 작품 ‘흩어진 산수’다. 작가가 서울대 생명과학 연구소에 의뢰해 추출한 그의 디엔에이(DNA) 염기서열 정보를 인공지능 정보와 섞어 중국 전통회화, 조선의 진경산수화·남종화가 해체되고 뒤섞이고 다시 복원되는 모습이 현란하게 펼쳐진다.
열매 실(實)의 한자가 끊임없이 작은 조각들이 되어 흩어지는 ‘분열하는 인류 2’, 빔 프로젝터에서 투사되는 다채로운 빛깔의 레이저 광선이 안개 자욱한 공간 속에서 군무를 벌이면서 전통 산수의 이미지를 새롭게 해석해 펼치는 영상설치물 ‘형상 밖으로 벗어나 존재의 중심에 서다’ 등의 수작들을 잇달아 만나게 된다.
소치 허련의 묵죽화를 아크릴 붓질로 옮기며 청화백자의 이미지로 해석한 연작은 작가의 새로운 조형의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통 회화의 본질을 사의적인 붓질이 아닌 첨단 기술력으로 어떻게 표출해낼까를 집요하게 고민한 미디어아티스트의 열정과 노력이 돋보인다. 12일까지. 일요일 휴관.
대구/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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