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입니다 [말글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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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오늘도 그 마을버스 기사로군.
그는 끼어들거나 더디 가는 차를 만나면 운전하는 내내 욕을 한다.
옛날 같으면 '차에 애들도 타고 있는데, 이제 그만하시죠'라고 했을 텐데, 지금은 '계속 욕을 하시니 사람들이 불편해하는군요'라고 할 듯하다.
그는 이 말이 두 가지 점에서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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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오늘도 그 마을버스 기사로군. 그는 끼어들거나 더디 가는 차를 만나면 운전하는 내내 욕을 한다. 옛날 같으면 ‘차에 애들도 타고 있는데, 이제 그만하시죠’라고 했을 텐데, 지금은 ‘계속 욕을 하시니 사람들이 불편해하는군요’라고 할 듯하다. 더 직설적으로 ‘말이 좀 심하시네요. 제가 듣기 거북하군요’라고 할 날이 오겠지(실제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게 다 어느 학생의 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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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세상이 연결된 것이면 뭐든 좋으니 써보라는 과제에 학생 이은채씨는 ‘상담원에게 욕설, 폭언, 성희롱을 하지 말라’며 이어지는 다음 안내 문구를 문제 삼았다. “지금 통화하는 상담원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그는 이 말이 두 가지 점에서 불편했다. 하나는 아무의 가족도 아니고 아무에게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막 대해도 되냐는 것. 다른 하나는 자기 가족을 막 대하는 사람은 상담원도 막 대해도 되냐는 것. 노동자를 향한 언어폭력을 막기 위해 ‘가족’을 끌어들이는 건 옳지 않다는 말이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이유는 그에게 가족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가족이 없어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그가 제안한 안내 문구는 이랬다. “지금 통화하는 상담원도 사람입니다.”
어느 노동조합 특강에서 비슷한 취지로 말한 적이 있다.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노동자로만 머무르지 말고 존엄한 인간 되기를 추구하자. 그래야 인간 존엄성을 위협하는 모든 것에 저항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존엄을 옹호할 수도 있다는, 뭐 그런 시시껄렁한 얘기였다. 선생은 빈 허공을 허비적거리는데, 학생은 능숙한 검객이 되어 현실 세계의 병폐를 겨누고 있었다.
누군가를 보호하겠다는 말이 사회적 고정관념을 강화하기도 한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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