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 어제 광주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
대체 광주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31일 두산은 광주 KIA전 5회까지 이미 14-3으로 점수 차를 벌리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새 외국인 타자 제러드 영이 KBO 첫 홈런을 때렸고, 강승호가 스리런을 날렸다. 그렇게 두산의 ‘평범한’ 대승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 경기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두산은 6회초에만 11점을 더 올렸다. 선두타자 허경민이 유격수 실책으로 출루했고, 제러드가 비거리 130m 초대형 홈런으로 KBO 2호 홈런을 신고했다. 양석환이 2루타를 쳤고, 김재환이 다시 광주 담장을 넘겼다. 강승호와 김기연이 연속 안타를 쳤다. 전민재가 내야 뜬공으로 물러나면서 6타자 연속 출루 이후 가까스로 첫 아웃 카운트가 잡혔다.
겨우 흐름을 끊는가 했는데 아니었다. 안타와 볼넷으로 2사 만루가 만들어졌고, 다시 타석에 들어선 제러드가 이번에는 주자 싹쓸이 2루타를 때렸다. KBO 선발 출장 첫 경기에서 8타점을 기록했다. 종전 외국인 타자 1경기 최다 타점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이미 초토화된 KIA 마운드는 끝모르고 무너졌다. 양석환부터 강승호까지 세 타자 연속 볼넷을 허용했고, 김기연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았다. 전민재를 다시 내야 뜬공으로 잡아내며 겨우 6회를 마감했다. 두산은 7회 5점을 추가하며 기어코 30득점째를 채웠다.
두산은 이날 1997년 삼성이 LG를 상대로 기록한 1경기 27득점 기록을 27년 만에 갈아치웠다. 당시 현역으로 뛰면서 상대 마운드를 때려 부수는데 크게 한몫을 했던 이승엽 두산 감독이 이날은 사령탑으로 역사적인 기록을 달성했다. 1997년 당시 이 감독은 홈런 1개에 2루타 3개를 때렸다.
이날 경기 전만 해도 “넘어간 경기는 확실히 넘기겠다”고 했던 이범호 KIA 감독은 기록적인 대패의 흐름 속에서도 승리조 투수들을 줄줄이 마운드 위에 올렸다. 1만8000 홈 관중 앞에서 역사에 남을 불명예를 떠안지 않겠다는 의지로 느껴졌다. 그러나 누굴 올려도 답이 없었다. 최지민이 1이닝 5실점, 이준영이 아웃 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4실점으로 무너졌다. 미국 트레이닝 센터를 함께 다녀온 김기훈과 김현수가 이날 나란히 1군 등록 후 바로 등판했지만, 역시 두산 타선을 배겨내지 못했다. 김기훈이 0.2이닝 3실점, 김현수가 0.2이닝 7실점을 했다.
야수진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유격수 박찬호가 6회초 선두 타자 허경민을 실책으로 내보내며 11실점의 빌미를 줬다. 우익수 나성범은 3회초 2사 만루에서 허경민의 뜬공을 다 잡았다 놓쳤다. 주자 3명이 모두 들어왔다.
이 감독은 9회에야 백기를 들었다. 외야수 박정우가 이날 9번째 투수로 마운드 위에 올랐다. 웃지 못할 일이지만 이날 가장 깔끔하게 이닝을 끝낸 투수가 고교 시절에도 별로 공을 던져보지 않았다는 박정우였다. 김재환을 2루 땅볼로 잡았고, 강승호는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두산 마지막 타자로 나온 투수 권휘까지 삼진으로 잡았다. 이날 피안타를 기록하지 않은 유일한 KIA 투수였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참담한 경기였지만, KIA 홈 팬들은 마지막까지 선수들을 응원했다. 응원단장의 지휘에 맞춰 노래하고 노란 응원봉을 흔들었다. 30-3에서 30-6으로 따라가는 변우혁의 8회 3점 홈런에 3루 홈 응원석에 관중 모두가 일어서서 환호했다.
기록적인 패배 후 KIA 선수들이 도열해 인사했다. 홈 팬들은 박수로 선수들을 격려했다. 2홈런에 8타점을 때리며 상대 마운드를 무너뜨린 두산 제러드도 KIA 팬들의 열정에 그저 감탄했다. 경기 후 제러드는 “어썸(awesome·엄청나다)”이라고 찬사를 보내며 “이 나라의 야구 열정을 미국에 계신 부모님께도 알려야겠다”고 말했다.
광주 |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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