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쫄깃하고 고소한 ‘맛의 신세계’…얼큰한 국물도 무한매력
암탉 배속서 달걀되기 전 노른자 ‘알’
현대시장서 40년 역사 지닌 향토음식
제철공장 노동자들 허기 달래던 별미
곱창 모양의 특수부위 알집도 들어가
깻잎·들깻가루로 잡내 잡고 풍미 살려
인천은 한국 근대화 문을 활짝 연 개항 도시이자 제조업의 중심지다. 1980년대 항구 주변에 있는 공장 기계는 지칠 줄 모르고 돌아갔고, 인천 앞바다를 드나드는 선박의 불빛은 어두운 밤을 환하게 비췄다.
제철공장 대부분이 몰려 있는 인천 동구엔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저녁을 책임지던 음식이 있다. 바로 현대시장 건너편 줄 이은 노포에서 파는 ‘닭알탕’이다. 노랗고 동글동글한 닭알이 들어가는 닭알탕은 이곳 사람들의 추억이자 근대의 흔적이다.
닭알탕에 들어가는 닭알은 달걀과 다르다. 달걀은 암탉이 산란한 알로 단단한 껍데기에 싸여 있다. 닭알은 산란 전 암탉 배 속에 있는 알을 말하는데, 노른자만 있는 모습이다. 닭알탕엔 알집도 들어간다. 알집은 흰자와 껍데기가 만들어지는 난관이다. 이는 속이 꽉 찬 소 곱창 모양으로 꼬들꼬들한 식감을 느낄 수 있는 특수부위다. 일반인에게 닭알은 생소한 식재료다. 닭알로 탕을 끓이게 된 건 닭 한마리도 귀했던 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40여년 전 현대시장 근처 닭집에선 닭알과 알집을 따로 모아 팔았다. 당연히 살코기보단 잘 팔리지 않았고, 주변 주점이나 식당에선 비교적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닭알과 알집으로 얼큰한 탕을 끓여 팔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닭알탕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서민들에게 부담 없이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별미였다.
달걀은 대표적인 완전식품이다. 우리 몸에 중요한 비타민과 미네랄, 양질의 단백질까지 풍부하다. 닭알엔 흰자와 노른자가 구분 없이 모두 들어 있으니 여름 보양식으로도 손색없을 듯하다.
현대시장 건너편 골목은 한때 닭알탕 골목으로 이름을 날렸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식당 세곳 정도에서만 닭알탕을 맛볼 수 있다. ‘현대원조닭알탕’ 식당은 닭알탕이 탄생한 초창기부터 40년 넘게 자리를 지켰다. 식당 밖 50m 거리에서부터 칼칼한 매운 냄새가 침샘을 자극한다. 식당 미닫이문을 여니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닭알탕을 시켜 식사하고 있었다. 식당 벽에 달린 선풍기가 좌우로 돌아가는 정겨운 노포의 풍경도 눈에 들어온다.
식당 사장 양근주씨(72)는 닭알탕이 고된 하루를 보낸 사람들이 찾는 음식이라고 설명한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면 주변 제철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하나둘 찾아왔죠. 헛헛한 배도 채우고 소주 한잔도 곁들이면서 하루를 털어내기에 이만한 음식이 없어요.”
닭알탕 냄새를 맡으니 만드는 방법도 궁금해진다. 닭알은 실온에 두면 금방 터져버리니 냉동 보관으로 탱글탱글한 식감과 모양을 살린다. 넓은 냄비에 해동한 닭알과 다양한 식감을 더해줄 알집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이렇게 하면 잡내도 날리고 쫄깃한 식감도 살릴 수 있다. 고추장이 들어간 빨간 양념과 감자·파·미나리 등 갖가지 채소를 넣는다. 마지막으로 풍미를 살릴 깻잎과 들깻가루를 아낌없이 듬뿍 얹으면 완성이다.
소박한 반찬과 함께 닭알탕이 상에 올랐다. 닭알탕은 테이블에 있는 가스버너에서 보글보글 끓이며 먹어야 제맛이다.
주황빛을 띠던 닭알이 푹 익어 연노란색으로 변하면 먹어도 된다는 신호다. 닭알탕을 한국자 듬뿍 뜨니 구슬 같은 닭알 서너개와 뽀얀 알집이 함께 올라온다. 닭알을 숟가락으로 가르니 영락없는 달걀노른자 모양이다.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닭알과 알집을 콕 찍어 먹어본다. 처음 느껴보는 맛과 식감의 연속이다. 닭알은 달걀 흰자 식감에 진한 노른자 맛이 나며 알집도 쫄깃하고 고소하다. 국물은 얼큰하고 텁텁함 없이 깔끔하다. 깻잎과 들깨가 어우러져 닭 누린내를 가린다. 빨간 국물엔 면 사리를 빼놓을 수 없다. 면 사리 가운데서도 쫄면 사리가 가장 인기란다. 옆 테이블에서 닭알탕을 먹던 어르신들도 “여기 쫄면 사리 하나 줘요”라고 외친다. 양씨는 “오늘 점심 때 쫄면이 다 떨어졌는데, 대신 라면 사리도 맛있으니 먹어보라”고 대답한다. 면 대신 참기름을 둘러 밥을 볶아 먹는 것으로 마무리해도 좋다.
옛 인천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닭알탕을 오늘날 젊은 세대는 평소에 맛보지 못한 이색 별미로 즐긴다. 서로 가진 기억은 달라도 음식이 간직한 이야기와 맛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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