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보다 더 빛나는 ‘명품 조연’의 드라마… 엔딩크레딧에서 홀대 받지 않을 가치

김태우 기자 2024. 8. 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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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인천 롯데전에서 연장 12회 끝내기 홈런 등 4안타 대활약으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낸 오태곤 ⓒSSG랜더스
▲ 내외야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맹활약하고 있는 오태곤은 기록 이상의 가치를 인정 받기 충분한 선수다 ⓒSSG랜더스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SSG 멀티 플레이어인 오태곤(33)의 가방에는 항상 글러브가 여러 개 있다. 1루수용 글러브, 외야수용 글러브, 그리고 내야수용 글러브까지 다 들고 다닌다. 경기에 나갈 때 어떤 글러브를 쓰게 될지는 사실 자신도 모른다. 항상 철저한 준비가 있을 뿐이다.

오태곤의 기록은 특별하지 않다. 7월 31일 현재 시즌 76경기에 나가 타율 0.273, 3홈런, 15타점, 17도루, OPS(출루율+장타율) 0.762를 기록 중이다. 득점 생산력에서 돋보이는 선수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SSG를 거쳐 갔던 모든 코칭스태프는 ‘오태곤’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1군에서 제외된 기억이 별로 없다. 벤치에 있으면 이렇게 든든한 선수가 없다. 외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고, 1루수로도 뛸 수 있으며 심지어 비상시에는 유격수나 3루수로도 나갈 수 있다. 벤치에서 시키는 것을 척척 한다.

사실 오태곤도 어릴 때부터 이런 롤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주전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한 단계를 더 밟고 올라가면 그렇게 될 수 있었기에 당연히 부려볼 만한 출사표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고, 베테랑이 되면서 어느덧 자신의 목표보다는 팀의 목표를 더 중시하는 선수가 됐다. 벤치에 있어도, 때로는 출전에서 홀대를 받아도 싫은 소리를 한 적이 없다. 팀 플레이어다. 그리고 그런 품격은 동료들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프런트가 가장 먼저 안다. 모두가 좋아한다. 오태곤은 그런 선수다.

오태곤 정도의 베테랑이 볼 때는 어쩌면 성에 차지 않는 임무. 그러나 오태곤은 이 스페셜리스트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어쩌면 한 번의 실수도, 한 번의 실패도 용납되지 않는 스트레스가 큰 자리다. 그 자부심과 책임감이 오태곤을 오늘도 성실하게 뛰게 한다. 스스로의 임무를 낮춰 보지 않고, 그 임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책임감을 갖는다.

오태곤은 “내 자리는 만족이 없는 자리다. 확고한 주전이라면 뭔가 하겠지만 나는 쉬는 날도 많다. 나가 봐야 7·8·9회 3이닝에 나간다. 나는 제4의 외야수, 제5의 내야수다”면서도 “나는 스스로 자부심이 있다. (주전 선수들이) 비었을 때 나가 티가 안 나게 해야 한다. 유섬이형이 빠져도 내가 나가 티가 안 나게 할 수 있게 하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플레이를 한다”고 강조했다.

드라마는 주연도 있지만, 주연만으로 모든 촬영 분량을 채울 수는 없다. 명품 조연들이 더 주목을 받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 오태곤은 주연 못지않은 임팩트로 31일 인천을 수놓았다. 오태곤은 31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롯데와 경기에서 4안타(1홈런) 대활약을 펼치며 팀의 12-11, 끝내기 승리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모두가 “졌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오태곤의 스윙 한 방이 인천을 깨웠다.

첫 두 타석 모두 좌중간에 잘 맞은 2루타를 때렸다. ‘트랙맨’ 집계에 따르면 이 두 타구의 타구 속도 모두 시속 170㎞를 넘겼을 정도로 이날 시작부터 컨디션이 좋았다. 그리고 10-11로 뒤진 연장 12회, 2사 1루 상황에서 극적인 좌중월 끝내기 투런포를 터뜨리며 마지막에 웃었다. 명품 조연이 드라마를 지배한 날이었다. 오태곤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 오태곤은 팀이 가진 저력이 있고 5위에서 만족할 게 아니라 그 이상을 꿈꿀 수 있다고 믿는다 ⓒSSG랜더스

오태곤은 “2·3루가 됐다면 나를 거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그런데 2사 1루가 되는 순간 한 번 걷어도 되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미리 타이밍을 잡고 앞에서 스윙을 하자고 했는데 2S가 될 때 어정쩡한 스윙이 나왔다. 그 짧은 시간에 너무 후회가 되더라”면서 “지더라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내 스윙은 끝까지 하고 죽자고 했다. 타이밍을 잡고 내 스윙을 했는데 구종도 몰랐다. 그 정도로 후회 없이 스윙을 하자고 했고 내가 뭘 쳤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끝내기 상황을 돌아봤다. 오태곤은 “맞는 순간 갔다고 생각했다. 끝내기 홈런이 몇 개 없는데 오늘이 제일 기분이 좋은 것 같다”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코칭스태프에도 공을 돌렸다. 오태곤은 “강병식 오준혁 코치님이 솔직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으실 것이다. 하지만 절대 티를 안 내신다. 선수들을 끝까지 믿어주시고 어떻게 하면 더 좋게 할 수 있을까 장난도 많이 치신다”면서 “오늘 타석에 들어서는데 강 코치님이 ‘감이 좋으면 어떻게 해야지?’라고 하시더라. 내가 ‘가볍게 쳐야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하니 ‘아무 생각하지 말고 치라’고 하셨다. 그래서 막 돌렸는데 잘 맞아 떨어졌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오태곤은 팀의 베테랑이고 한때 주장도 했었다. 선수들을 이끄는 능력에서 인정을 받는다. 그런 오태곤은 요즘 ‘2위’라는 말을 한다. 5위에 만족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선수단 분위기도 그렇다고 말한다. 오태곤은 “트레이닝실에서 치료를 받을 때 형들이랑 그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뭐 5강이다, 5위를 하자가 아니라 잘하면 2등도 가능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면서 “이제 44경기 정도 남았는데 당연히 힘들겠지만 계속 위닝시리즈만 해도 충분히 2위까지는 가능한 수치가 나온다. 남은 44경기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만약 SSG가 그렇게 원하는 드라마를 쓴다면, 그 엔딩크레딧에 오태곤의 이름은 꽤 높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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