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더라도 이건 아니다" 문학을 뒤집어놓은 홈런, 기적은 어떻게 일어났나[인천 인터뷰]
[인천=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지더라도 이건 아니다. 내 스윙은 끝까지 하고 죽자."
오태곤이 랜더스필드를 뒤집어놨다. SSG 랜더스는 7월 31일 인천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연장 12회말 오태곤의 끝내기 투런 홈런으로 기적같은 역전승을 거뒀다. 접전이 대단했다. 9회초까지 5-10으로 끌려가던 SSG는 5회말 집중타에 이어 기예르모 에레디아의 동점 스리런 홈런으로 10-10 동점을 만들고 롯데 마무리 김원중을 끌어내렸다.
이어진 연장전. 12회초 1실점했지만, 12회말 찬스를 살렸다. 무사 1,2루 찬스에서 번트 모션을 취하던 김민식이 강공 전환을 했는데, 이 타구가 투수 직선타로 2루 주자까지 아웃되면서 더블 아웃이 되고 말았다.
2사 1루. 찬스가 무산되는듯 했을때 오태곤의 한 방이 터졌다. 오태곤은 현도훈의 슬라이더를 완벽하게 걷어올려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끝내기 투런 홈런으로 연결시켰다. 믿기지 않는 경기였다. 오태곤의 개인 세번째 끝내기 홈런이다.
경기 후 오태곤은 끝내기 상황에 대해 "솔직히 민식이 형이 보내기를 해서 2,3루가 됐으면 조금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아니면 나를 거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더블 아웃이 되면서)이제 졌구나 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이건 한번 욕심이 났다. 제 타석이 오니까 이제 진짜 한번 (타구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났다. 한번 걷어도 되겠다는 욕심이 생겨서 미리 타이밍을 잡고 앞에서 스윙을 하자는 생각만 했다"면서 "2스트라이크 먹는 과정에서 어정쩡한 헛스윙을 했다. 그 짧은 순간에 너무 후회가 되더라. 지더라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싶었다. 죽어도 내 스윙은 끝까지 하고 죽자라고 생각했다. 그게 이렇게 홈런으로 연결됐다"며 웃었다.
"사실 제가 무슨 공을 쳤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기억도 안난다"며 당시 상황을 다시 복기한 오태곤은 "타구가 맞는 순간 알았다. 뛰지도 않고 타구를 보고 있었다. 너무 너무 좋았다. 제가 끝내기 홈런을 몇번 쳐본 적이 없는데 오늘이 가장 기분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오태곤은 지난달 28일 오른쪽 발가락 미세 골절로 이탈했다가 고명준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지자 예상보다 조금 서둘러 1군에 올라왔다. 내외야 수비가 모두 가능한 오태곤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숭용 감독은 "회복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오태곤은 지난 7월 25일 1군 복귀 이후 18타수 7안타 2홈런 타율 3할8푼9리로 뜨거운 타격감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잘 쉬어서 그런지 살도 붙고, 쉴때 웨이트 트레이닝도 꾸준하게 했다. 그러면서 힘이 비축됐고 더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감독님이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이런거 하라고 돈 주시는 것 아닌가. 고참이기 때문에 해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있다"며 강한 책임감을 드러냈다.
구단 관계자들도, 코칭스태프도 오태곤에게 늘 고마워한다. 어떤 포지션도, 어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성격 좋은 선수. 오태곤을 향한 칭찬이다. 그는 "제 자리는 만족이 없는 것 같다. 솔직히 확고한 베스트9 주전이면 뭔가를 해보겠지만, 저는 쉬는 날도 되게 많다. 해봤자 7~9회 3이닝 정도를 나간다. 제 4 외야수, 제 5 내야수다. 하지만 저는 주전들이 빠지고 그 자리에 제가 들어갔을때, 나간 선수가 티가 나지 않게 뛴다는 스스로의 자부심이 있다.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플레이를 하는데 코치님들이나 프런트에서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다"며 미소지었다.
오태곤의 기적같은 끝내기 홈런이 터지자 SSG 벤치에 있던 모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쏟아져나와 기뻐했다. 최근 상승세를 타며 다시 상위권 진입을 노리는 SSG의 팀 분위기를 설명해주는 장면이었다. "솔직히 오늘은 완전 분위기가 저희 쪽으로 넘어왔었고, 이건 비겨도 우리가 손해인 경기였다. 만약 이렇게 해놓고 지면 내일 분위기가 안 좋아질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걸 다시 올릴 수 있게 돼서 너무 기쁘게 생각한다. 우리팀 이제 딱 44경기 남았다. 2위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힘들겠지만, 매 시리즈 위닝을 하자는 각오로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다"고 각오를 다졌다.
인천=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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