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합성 필요 없는 심해 ‘암흑산소’ 발견…생명 기원까지 흔든다
태평양 수심 4천미터 해저의 망간단괴
전기분해로 바닷물에서 산소 만드는듯
자연이 지구의 생명체에게 공급하는 산소는 광합성을 통해 생산된다. 육상의 식물과 바다의 식물성 플랑크톤, 조류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뒤 햇빛을 이용해 물과 반응시켜 산소와 포도당을 만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빛이 없는 곳에선 산소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이런 상식에 반하는 현상이 발견됐다. 햇빛이 닿지 않는 심해에서 산소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스코틀랜드해양과학협회(SAMS)의 앤드루 스위트먼 교수가 이끄는 국제연구진은 태평양 심해에서 살아 있는 유기체가 아닌 금속 덩어리에서 산소가 생성되는 것을 발견해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이 암흑산소라고 명명한 이 금속은 햇빛 대신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이번 발견은 하와이와 멕시코 사이 6400km에 걸쳐 있는 심해 평원지대 클라리온-클리퍼튼구역(CCZ)에서 이뤄졌다. 햇빛이 닿지 않는 이곳의 수심은 4000미터에 이른다.
이곳에는 ‘바다의 검은 황금’으로 불리는 망간단괴가 널리 분포돼 있다. 감자 크기만 한 망간단괴(2~8cm)는 해저 퇴적물이 수백만 년간 화학 반응을 거치며 형성된 것이다. 이름은 망간단괴이지만 망간뿐 아니라 코발트, 니켈, 구리, 리튬 등 산업적 가치가 높은 금속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하나같이 태양전지, 전기차 배터리 등 친환경 기술 분야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금속이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클라리온-클리퍼튼지대에 211억톤의 망간단괴가 분포해 있으며, 단괴에 포함된 주요 금속 매장량은 각 금속의 전 세계 육지 매장량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본다.
왜 망간단괴 지역에서만 산소가 증가할까
연구진이 이 현상을 처음 발견한 것은 2013년이었다. 당시 심해저 광물 채굴이 해양생물 다양성에 미칠 영향 평가를 위한 탐사에 나선 과학자들은 작은 선박을 해저에 가라앉힌 뒤 퇴적물 속으로 센서를 밀어 넣어 산소 수치의 변화를 측정했다.
해저 생태계의 생물들은 바다 표면에서 해류를 따라 심해로 운반돼 온 산소를 생존 기반으로 삼는다. 연구진은 따라서 심해 동물들이 산소를 흡입하면서 점차 산소 수치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정반대로 산소 수치가 증가했다. 바다 표면보다 산소 수치가 더 높았다. 처음엔 센서에 결함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몇 번을 해봐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8년 후인 2021년 다시 한번 측정한 수치도 마찬가지였다. 망간단괴가 없는 다른 심해 조사 지역에선 볼 수 없었던 현상이었다.
연구진은 이 이상 현상의 원인이 망간단괴에 있을 것으로 보고, 일련의 실험을 하며 탐구한 끝에 망간단괴가 매우 높은 전하를 띠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는 이 전기를 이용해 바닷물을 수소와 산소로 전기분해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바닷물에서 전기분해가 일어나려면 AA배터리에 해당하는 1.5V 전압만 있으면 된다. 연구진은 망간단괴에서 최대 0.96V의 전압을 확인했다. 직류 연결처럼 단괴가 이어진다면 상당한 전압이 발생할 수 있다. 망간단괴가 바닷물에서 산소를 뽑아내는 배터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규명 못해
하지만 연구진은 망간단괴 표면의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또 산소 발생 과정을 직접 확인한 건 아니다. 산소 발생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지, 어떤 조건에서 일어나는지, 그리고 이 암흑산소가 주변 생태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도 추후 규명해야 할 과제다.
덴마크 남부대의 생물지구화학자 도날드 캔필드 교수는 네이처에 “이번 발견은 매혹적이지만 많은 질문을 던진 것이지 많은 답을 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를 지원한 심해 광물 채굴 기업 더 메탈스 컴퍼니는 연구 결과에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에 “연구 결과에 대해 매우 유보적”이라며 “자체 분석에 따르면 산소가 검출된 것은 내부가 아닌 외부의 산소에 오염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회사 쪽은 성명을 통해 “똑같은 방법으로 측정한 한국 탐사 구역에선 오히려 산소가 순소비됐다”며 “포괄적인 반박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심해 생태계 위협”…채굴 반대 목소리 커질 듯
이번 발견은 산업계와 과학계에 동시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심해 광물 채굴은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른 규제 대상이다. 유엔은 국제해저기구(ISA)를 통해 국제 공해 구역인 이곳에서 각국 정부와 기업에 자원을 탐사, 개발할 수 있는 지역을 할당한다. 한국은 2002년 남한 면적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7만5000㎢ 크기의 독점 탐사광구를 확보했다.
그러나 암흑산소의 발견으로 심해 광물 채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심해 채굴의 수중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는 와중에, 반대 명분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심해저 생물들이 필요한 산소의 일부를 망간단괴가 만드는 산소에 의존하고 있다면 심해 채굴은 해저 생태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가 된다. 영국, 프랑스 등 27개국은 국제 해역에서의 심해 채굴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 표명한 상태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프란츠 가이거 교수는 “자원 채굴업체들이 해저 3천~6천km 깊이에서 광물자원을 추출하려 한다”며 “심해 생물의 산소 공급원을 고갈시키지 않으려면 채굴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로 1980년대 심해 광물 채굴 지역이 황폐화한 사례를 들었다. 해양생물학자들이 2016~2017년 채굴 지역을 방문해 조사했더니 박테리아조차 발견할 수 없었던 반면, 채굴이 되지 않은 곳은 해양 생물이 번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해저동물 다양성은 열대우림의 생물 다양성보다 풍부하다는 점에서 해저 채굴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제해저기구(ISA)는 7월29~8월2일 열리는 총회에서 망간단괴를 비롯한 심해 자원 채굴과 관련한 규정을 논의한다.
생명의 기원 가설 뒤흔들 수도
이번 발견이 최종적으로 사실로 확인될 경우, 과학계는 지구 생명의 기원을 다시 들여다봐야 할지도 모른다.
산소의 대량 발생은 지구상에서 복잡한 생명체 진화를 촉발시켰다. 현재로선 30억년 전 남조류에 의해 산소가 대량 생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 빛이 없는 심해에서도 산소가 생성된다면 생명이 언제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처음부터 다시 살펴봐야 할 수도 있다.
암흑산소의 존재는 생명의 기원에 관한 여러 가설 중 심해 열수 분출구 이론에 힘을 실어준다. 이곳에서 시작된 최초의 생명체에 암흑산소가 에너지원으로 사용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위트먼 교수는 “이번 발견은 지구의 생명이 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엔셀라두스, 유로파 등 지하 바다가 있는 태양계 천체의 생명체에 대한 기대감도 그만큼 높아지게 될 것이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38/s41561-024-01480-8
Evidence of dark oxygen production at the abyssal seafloor.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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