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올트먼은 왜 기본소득에 집착할까? [취재파일]

임태우 기자 2024. 8. 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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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올트먼은 '챗 GPT' 창시자이자 AI 기술 선구자로 유명하죠. 하지만 그는 기본소득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합니다. 최근 올트먼이 무려 3년 간 진행한 대규모 기본소득 실험 결과를 발표해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이 실험은 OpenResearch라는 비영리 단체를 통해 진행됐습니다. 2020년 11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미국 텍사스와 일리노이 주의 21~40세 저소득층 3,000명을 대상으로 했죠. 1,000명에게 매월 1,000달러를, 나머지 2,000명에게는 대조군으로 50달러를 지급했습니다.

참고로 대조군에게도 50달러씩 준 이유는 실험을 부정확하게 할 수 있는 플라시보 효과를 없애기 위해섭니다. 대조군에게도 작은 금액을 주면 두 그룹 모두 동등하게 '나 실험에 참여하고 있어!'라고 느끼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두 그룹의 행동 차이는 단순히 연구에 참여한다는 기분 탓이 아닌, 지급 받은 돈의 양 때문으로 좀 더 정확하게 귀결된다는 것이죠.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요? 매달 1,000달러씩 받은 기본소득 수혜자는 평균적으로 월 310달러를 더 지출했고, 주로 식품과 주거, 교통비에 사용했습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다른 사람을 돕는데 월 22달러를 더 썼고, 이 소비 비중은 26% 증가했습니다.

건강에 대한 지출도 늘었습니다. 수혜자는 보험료를 제외하고 의료 지출을 한 달에 약 20달러 늘렸습니다. 치과 방문 확률은 10% 증가한 반면, 자신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음주와 진통제 오용은 각각 20%, 53% 줄었습니다.

공짜 돈 받으면 그만큼 일을 덜 할 것 같지만, 실험 결과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기본소득 수혜자는 이전보다 주당 1.3시간 더 적게 일했고 고용될 가능성은 2% 포인트 낮아졌습니다(On average, recipients worked 1.3 fewer hours per week and were 2 percentage points less likely to be employed). 이를 근로 일수로 환산하면 연간 약 8일 덜 일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수혜자의 구직 활동은 10% 증가했는데, 기본소득이 생활을 받쳐주니 더 좋은 직장을 구하려는 욕구가 커진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샘 올트먼이 얻은 주요 결론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기본소득은 수혜자들이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증가시켰다. "The cash transfers increased recipients' ability to meet their basic needs and provide support to others."

2) 기본소득은 수혜자 개개인의 상황과 목표, 가치에 부합하는 취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율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Cash can increase agency to make employment decisions that align with recipients' individual circumstances, goals, and values."

3) 일부 수령자들은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할 돈이 생기면, 추가 소득과 그 소득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을 포기하는 대신 다른 필요를 충족시키는 쪽을 선택한다. 돌봄과 여가, 배움, 탐험과 같이 그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포함된다. "Some recipients showed that as long as they have enough money to meet their basic needs, they are willing to give up some additional income and the items it would allow them to buy to meet their other needs—for caregiving, leisure, learning, exploring, and a myriad of other ways they value spending time."

4) 월 1,000달러의 추가 지원금만으로는 (의료 지출이 소폭 늘었다고 해도) 의료 접근성에 대한 구조적인 장벽을 극복하고 건강 격차를 줄이기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The additional $1,000 per month alone may not be sufficient to overcome the larger systemic barriers to healthcare access and reduce health disparities."


올트먼은 기본소득이 만능 해결사가 아니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절대적인 빈곤을 해결해줌으로써 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혜택과 자율성이 늘어난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증명했다고 강조합니다. 올트먼은 이 대규모 기본소득 실험을 위해 최소 500억 원 이상 쓴 걸로 추산되는데, 그가 기본소득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올트먼은 AI 개발에만 몰두하기도 벅찰 텐데, 왜 기본소득에 집착하는 걸까요? 그는 AI가 전통적인 일자리를 없애고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만약 AI 기술로 얻은 부를 인간에게 기본소득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누구나 행복한 파라다이스가 될 것이라는 구상입니다. 이는 AI 재앙론을 잠재우고 AI 기술 발전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되거니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의지로도 풀이됩니다.

그러나 기본소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유발이나 근로 의욕 감소, 재정 부담 등은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진영이 제기하는 단골 주장들입니다. 지난 2020년 미국의 비영리 조사기관인 Pew Research Center는 미국 성인의 54%가 월 1,000달러의 보편적 기본소득에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백인일수록, 또 고령일수록 반대가 훨씬 거셌습니다.


이에 대해 올트먼은 AI 기업과 토지에 대한 과세를 통해 사회적 부를 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안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기존 화폐 가치 훼손이나 재정 부담과 같은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는 겁니다. AI 기술 혁신이 기본소득 시스템을 지속가능할 수 있게끔 하는 마중물이 될 거라고 본다는 점에서 올트먼의 시각은 과거 기본소득 주장들과 다릅니다.

그러나 올트먼의 아이디어가 실현되려면 여러 난관을 거쳐야 합니다. 먼저 AI 경제가 고도로 실현돼야 합니다. AI가 생성한 부를 포착하고 재분배하기 위한 새로운 법률과 제도가 필요합니다. AI 빅테크 기업들과 정부 사이에서 부의 재분배를 둘러싼 갈등도 예상됩니다. 또 AI 기술과 그 이익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기 때문에 국제적 협력이 따라야 하며, AI로 인한 직업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노동 정책도 필요합니다.


이런 난관을 모두 넘고 AI발 기본소득 실현 가능성이 눈앞에 가까워졌다 해도 그것을 정말로 실행할 것인지는 나라별로 지역별로 그 입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 같은 보편적 복지에 대해 거부감이 크고 사회 구성원 다수가 반대하는 상황이라면 실현 가능성은 요원할 겁니다. 기본소득을 실행하는 나라로 이민이 몰릴 경우 미실행 국가들과 분쟁이 생길 수 있고 기본소득이 절실한 저소득층과 그렇지 않은 고소득층 간의 사회 갈등도 예상됩니다.

올트먼의 구상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선뜻 동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실험을 통해 적어도 기본소득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통찰과 더 많은 궁금증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AI발 기본소득은 인류의 삶이 질적으로 향상하는 유토피아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노동 가치가 파괴되고 양극화가 심해지는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회 안전망으로서의 AI 기본소득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 실현 방안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입니다.

임태우 기자 eigh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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