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의 올림픽 출전…‘공정’과 ‘평등’의 딜레마
‘논쟁하니’ 여덟번째 주제는 ‘논바이너리와 트랜스젠더의 올림픽 출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입니다. 2024 파리올림픽에 논바이너리(성별을 어느 한쪽으로 규정하지 않은 사람)인 미국 육상선수 니키 힐츠(30)가 출전했습니다. 반면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미국의 트랜스젠더 수영선수 리아 토머스가 국제수영연맹을 상대로 낸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이에 따라 토머스의 파리올림픽 출전은 무산됐습니다. 논바이너리와 트랜스젠더의 올림픽 출전에 대한 찬반 논쟁을 게재합니다.
이래서 ‘찬성’ 입니다
동성 사이에도 신체적 격차 존재
심기용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상근활동가
트랜스젠더가 스포츠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여성간의 스포츠 경쟁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이나 인터섹스인 사람이 남성 주요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농도가 높을 수 있고, 이 점이 여성의 공정한 경쟁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파리올림픽에서도 이런 점에서 트랜스젠더 선수의 출전이 논란이 됐다. 그렇다면 트랜스젠더를 배제하고 남녀 성별을 분리하면 신체적인 면에서 공정성은 자동으로 확보되는 것일까?
엄밀히 말하면 동성 사이에도 신체적으로 똑같은 조건이라는 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같은 남성이라고 해도 인종 혹은 국적에 따라 신체의 평균 조건에 격차가 있다. 그렇다면 이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국제 스포츠 대회는 애초에 불공정한 것이다. 한국에서 인기 많은 종목인 축구, 야구에서도 선수들의 신체적 조건을 엄밀히 분석해 키나 체격, 근육량의 차이가 크면 출전하지 못하게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걸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동질하다고 여겨지는 동성 간에도 차이도 꽤 다양한 요소에서 크게 존재한다. 동성 사이에도 여러 원인으로 타고난 신체적 조건의 차이가 클 수 있고, 선수가 속한 사회의 스포츠 정책, 훈련 환경과 수준, 종목에 대한 지원과 관심, 선수 동기부여 및 관리 등 수많은 사회적 요건에서도 격차가 발생한다. 트랜스젠더 선수 출전의 공정성을 논의할 때 마치 생물학적 조건이 같다면 모두 공정할 것처럼 얘기하지만 정작 동성 간의 신체적 차이와 사회적 배경의 차이가 야기하는 유불리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경우가 많다.
스포츠에선 경쟁만이 아니라 도전과 극복 역시 중요한 가치이다. 여성 스포츠 역시 맹목적으로 경쟁에만 몰두해오지 않았다. 여성 스포츠는 여성이 남성보다 스포츠에 관심이 없고 능력도 부족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왔고, 남성 중심의 체육 교육과 환경을 여성도 누릴 수 있도록 바꾸어왔다. 어떤 종목들에서는 여성 선수가 남성 선수보다 우위에 서는 일도 적지 않게 일어난다. 여성 스포츠는 성별의 한계를 정해놓은 게 아니라, 오히려 계속 한계로 구분 지어진 벽을 허물어왔다. 여성 스포츠는 스포츠가 상정하는 ‘인간의 상’이 남성뿐이거나 남성중심적이었던 과거를 뛰어넘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다.
트랜스젠더의 출전이 공정하냐, 공정하지 않냐는 질문 뒤에도 스포츠가 상정하는 인간에 트랜스젠더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숨어 있다. 가령 2024 파리올림픽에 스스로 여성도 남성도 아닌 성별로 인식하는 논바이너리 선수가 출전한 일로 스포츠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포용적인 대안 없이 비난만 하고 있다면, 그 비난이 상정하는 스포츠엔 논바이너리나 트랜스젠더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스포츠 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스포츠 공정성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진정한 공정성을 위해서 우리는 스포츠가 상정하는 인간의 상에 계속 도전해야 한다.
호르몬 등 성적 특징에 따른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올림픽 정신이 설명하듯 우리가 스포츠를 통해 경쟁하는 이유는 심신을 향상시키고 문화와 국적 등 다양한 차이를 극복하며 우정, 연대감,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지고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 실현에 공헌하는 데 있다. 심지어 동성 사이에도 존재해오던 인종적, 신체적, 환경적 차이가 꽤 유의미한 경쟁의 유불리를 야기함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스포츠대회가 이어져 온 것은 대회의 근본적 목적이 더 엄밀한 경쟁에만 있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랜스젠더를 단순히 성별 경계를 흐리는, 혹은 반칙 그 자체의 존재로 낙인찍기만 하는 논의는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 경쟁의 공정성은 트랜스젠더만 사라진다고 담보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존재하고 함께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트랜스젠더 선수들을 경쟁의 무대에서 일괄적으로 배제하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스포츠 정신은 언제나 차이를 극복하고 도전하는 일에 인류가 힘쓰도록 강조해왔다. 스포츠의 포용성을 넓히고 좀 더 생산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트랜스젠더, 성소수자 선수들의 시선에서 스포츠의 기회를 더 열어주길 바란다.
이래서 ‘반대’ 입니다
동등 조건’ 공정 올림픽정신 훼손
기영노 | 스포츠평론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제33회 파리올림픽의 가장 큰 의미는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부터 시작된 여름올림픽 128년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평등 올림픽이 된 것”이라고 발표했었다.
파리올림픽에는 개최국 프랑스를 비롯해 206개국 1만500명의 선수가 출전했는데, 남자선수 5250명 여자선수 5250명으로 남녀 성비가 50 대 50으로 똑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논바이너리(non-binary)’ 선수의 출전으로 사실상 남자선수 5249.5명, 여자선수 5250.5명이다.
논바이너리는 자신의 성별을 여성이나 남성 중 어느 한쪽으로 규정하지 않은 사람을 말하는데, 미국 국가대표 육상선수로 이번 파리올림픽에 출전한 니키 힐츠(30)가 논바이너리다. 힐츠는 파리올림픽 미국 국가대표 선발전 여자 1500m 결승에서 3분55초33의 기록으로 1위를 차지하며 올림픽출전권을 따냈다.
파리올림픽은 논바이너리인 힐츠의 여성부 출전으로 ‘평등 올림픽’과는 거리가 있는 ‘불평등 불공정 올림픽’이 된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지난 2004년 5월 ‘스톡홀름 합의’를 통해 성확정(성전환) 수술을 받은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사상 처음으로 허용했다. 그래서 트렌스젠더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선수 캐스터 세메냐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당시 세메냐는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성 판별 검사 결과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모두 지닌 ‘간성’으로 밝혀졌다. 잠복 고환이 있고, 남성호르몬 농도가 일반 여성보다 높게 나왔다.
그러나 ‘성소수자 차별 논란’이 거세지자 국제올림픽위원회는 공식 성별검사를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엑스와이(XY) 성 염색체의 성분화 이상을 가지고 여성으로 등록된 선수가 여성으로 출전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에 세메냐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성소수자 차별’ 논란 때문에 모든 선수들이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야 하는 ‘공정올림픽 정신’이 크게 훼손된 것이다.
세메냐는 2012 런던올림픽과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육상 800m에서 잇따라 금메달을 따내 올림픽 2연패에 성공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는 1분55초28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따낸 부룬디 국적의 프랑신 니욘사바(1분56초49)를 1초21이나 앞섰을 뿐만 아니라 결승선을 눈앞에 두고 페이스를 늦추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마치 남성 같은 파워를 지닌 세메냐가 월등한 기록으로 올림픽 2연패에 성공하자 국제올림픽위원회는 그제서야 ‘공정 올림픽’을 해친다며 트랜스젠더 선수의 올림픽 출전에 제약을 두기 시작했다. 세계육상연맹이 2018년 11월, 400m, 400m 허들, 800m, 1500m, 1마일(1.61㎞) 여자부 경기출전 기준을 테스토스테론 5n㏖/L(나도몰) 이하로 정하면서 세메냐는 2019년부터 자신의 주종목인 여자 800m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사실상 은퇴했다.
세계육상계와 대부분의 언론들은 세계육상연맹의 ‘디에스디(DSD) 규정’(Differences of Sexual Development·성적 발달의 차이)을 ‘세메냐 룰’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20년 테스토스테론 수치 대신 경기력 우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하라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권고안이 나왔다. 또 성전환 선수들을 포용하되 이들에 대한 출전자격 기준은 종목별 국제연맹(IF)의 자율에 맡겼다.
그래서 ‘트랜스젠더 역도 국가대표 선수’가 등장했다. 2020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뉴질랜드 트랜스젠더 여성 역도선수 로렐 허바드였다. 허바드는 여자 무제한급(+87kg급)에 출전했지만 인상 1, 2, 3차 시기에서 모두 실격해 ‘공정성 논란’을 스스로 지워버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2021년 각 종목별 국제연맹이 ‘트랜스젠더’ 및 ‘논바이너리’ 선수의 경기 참여 규칙을 자체적으로 마련하도록 규정을 바꿨었다. 앞서 언급한 니키 힐츠는 여성(she)이나 남성(he)이 아닌 ‘논바이너리(they)’로 정체화한 트랜스젠더이고, 호르몬 요법이나 수술을 받지 않았기에 이러한 규정에 걸리지 않아 파리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논바이너리 힐츠의 여성종목 출전으로 평등 올림픽을 지향한 파리올림픽은 ‘불평등, 불공정 올림픽’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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