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업계 거인 조양호 회장-上> “공부하는 얼리어답터, 공부 권하는 CEO”

장병철 기자 2024. 8. 1.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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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컴퓨터 접하고 IT에 눈 뜬 CEO
금융위기 때도 교육 투자는 아끼지 않아
한진그룹은 지난 4월 고 조양호 선대회장의 일대기를 담은 평전을 출간했다. 한진그룹 제공

한진그룹은 지난 4월 8일 고 조양호 선대회장 서거 5주기를 맞아 추모제를 열고 고인의 삶과 철학을 되새기는 평전 ‘지구가 너무 작았던 코즈모폴리턴(세계인)’을 선보였다. 평전은 △조 선대회장의 세계주의적 철학과 변치 않을 그만의 원칙을 그린 ‘함께해서 멀리 간 아름다운 코즈모폴리턴’ △임직원과 이웃 사랑 등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담긴 ‘따듯하게 조용하게’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과정 등을 담은 ‘체육인을 사랑한 체육인’ 등 총 10개의 챕터로 구성됐다. 평전에는 특히 조 선대회장이 ‘수송보국(輸送報國)’의 신념으로 대한항공을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서 우뚝 설 수 있게 만든 노하우와 이를 위해 차곡차곡 쌓아온 경영 철학 등이 상세히 담겨 있다. 아울러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개인적인 일화도 다수 담겨 있어 ‘개인 조양호’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산업 격변기를 맞아 ‘큰 어른 리더십’에 대한 요구가 더욱 절실해진 요즘 조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과 인생 발자취를 평전을 통해 상·중·하 시리즈로 되돌아봤다.

◇‘얼리어답터’ CEO = 1960년대 말 미국 유학 시절 컴퓨터를 처음 접하며 정보기술(IT)에 눈을 뜬 조 선대회장은 IT 관련 새로운 기기가 나오면 누구보다 이를 빨리 접하는 ‘얼리어답터’였다고 한다. 대표적인 일화가 2000년 초 전산부서에 당시 직원들한테도 생소했던 ‘PDA를 통해 이메일을 보게 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조 선대회장은 누구보다 IT 신문물을 빨리 받아들이려 노력했는데 그 때문에 직원들이 당황했던 적이 많다"고 회상했다. ‘컬러링(통화 연결음)’이 처음 나왔을 때도 조 선대회장은 누구보다 먼저 가장 좋아하는 곡인 ‘Top of the World’를 휴대전화 배경음으로 설정했었다고 한다. 당시 회의 때 임원들에게 해당 서비스를 이용해보라고 권했는데 아무도 뭔지 몰라서 당황했던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조 선대회장은 이런 ‘얼리어답터’ 기질을 바탕으로 1980년대부터 IT 기술을 항공에 접목하는 데 집중했다. IT 기술을 활용해 업무의 전산화 및 표준화를 추진하는 과정은 획기적이었지만 그만큼 반발도 거셌다. 업무에 방해가 된다며 컴퓨터를 복도에 내놓는 부서도 있었다. 하지만 조 선대회장은 "불편하다고 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며 기존 방침을 밀어붙였다. 결국, 조 선대회장은 1981년부터 4년간 시스템 담당 상무를 맡으면서 과감한 투자로 전산화의 기틀을 마련했고, 이를 통해 축적한 기술과 경험을 토대로 항공편 예약은 물론 여행정보까지 관리하는 종합항공예약시스템 토파스(TOPAS)를 개발했다. 또 1989년 한진정보통신을 설립하며 육·해·공 물류의 중추가 되는 정보통신망도 구축했다. 이후 IT 인프라를 통해 운항, 객실, 정비, 경영을 유기적으로 융합시켰으며 남다른 IT 프로세스를 통해 항공 업계를 선도했다.

고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 한진그룹 제공

◇한진그룹을 거대한 학교로 = 조 선대회장은 평소 입버릇처럼 "경영의 기본은 사람이며 사람의 변화는 결국 올바른 교육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정도로 교육을 통한 인재 육성을 중시했다. 특히 본인 역시 좋은 경영인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몰두했다. 실제 1980년대 초 전무가 된 조 선대회장은 정비, 자재, 운항 등 현장에서 실무 경험을 쌓으며 항공 분야에서는 누구보다 전문성을 키웠지만, 여전히 CEO가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결국, 조 선대회장은 정치학과 경영학, 신문방송학 등 다양한 분야의 교수 4명을 멘토로 선정, 한 달에 한 번씩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등 각 분야의 석학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지식의 만찬’은 2년 넘게 지속됐다.

이런 조 선대회장의 ‘공부 리더십’으로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은 회사이면서 거대한 학교가 됐다. 2003년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컨벤션센터에서 30여 명의 상무보급 임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임원경영능력향상과정(KEDP) 수료식이 열린 적이 있다. 연초 승진한 신규 임원 전원을 서울대 경영대에 위탁해 3개월간 MBA(경영학석사) 수준의 단기 연수를 시키고 나서 맞이한 수료식이었다. 당시 단상에 오른 조 선대회장은 "신규 임원들에 대한 교육 투자가 회사의 미래에 대한 최선의 대비책이라고 판단했다"며 "이 과정을 통해 향상한 경영 능력과 지식이 현업에 접목돼 대한항공이 초일류 항공사로 거듭나는 데 밑거름이 되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조 선대회장은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도 교육 분야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회사 관계자는 "2007년 금융 위기 당시 전사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맬 때도 우수 직원들을 해외 MBA 과정에 보내는 것을 포함한 교육 투자만큼은 한 푼도 줄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장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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