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영등포 쪽방촌 가보니 단열효과 미미한 패널 지붕 불볕 열기 그대로 다 흡수 선풍기 켜도 뜨거운 바람만 “차라리 집 밖이 더 시원해” 쪽방촌 거주자 대부분 노인 온열질환 취약해 픽픽 쓰러져
지난 29일 영등포 쪽방촌에서 만난 조상현 씨(55)는 이곳에 정착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갈수록 뜨거워지는 여름을 버티는 것이 힘에 부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방 안 온도가 40도를 넘을 때도 있다”며 “여기 사람들은 1.5리터 페트병에 물을 얼려 옆구리와 다리에 끼고서야 잠이 든다”고 말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지난 29일, 영등포 쪽방촌 주민이 방 밖으로 나와 더위를 식히고 있다. [사진=지혜진 기자]
올 여름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 휴가시즌이 시작됐지만 쪽방촌은 몰려올 폭염 걱정이 앞선다. 서울의 대표적 쪽방촌인 종로3가 돈의동 일대와 영등포 쪽방촌을 취재진이 찾은 이날 체감온도는 33도를 넘나들고 있었다. 어김없이 폭염주의보가 발령됐고 주민들은 좁은 방에서 나와 바깥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주민들이 골목에 설치된 쿨링포그(안개 분사장치)를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분사장치는 2분마다 시원한 수증기를 뿜어낸다. 한 주민은 “방 안에선 선풍기에서 더운 바람만 나온다”며 “차라리 밖에 나와 수증기 맞고 있 게 낫다”고 말했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29일 오후 1시께 종로3가 돈의동 쪽방촌. 2분 주기로 수증기를 뿜어내는 쿨링포그 아래로 주민이 더위를 식히며 걸어가고 있다. [사진=지혜진 기자]
쪽방촌에는 폭 1~2미터 정도 골목 좌우로 낮은 건물들이 빼곡하게 이어졌고, 건물마다 좁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임대주택 기간이 만료돼 친구의 소개로 지난해 8월 돈의동 쪽방촌으로 넘어 왔다는 김대현 씨(47)·김별 씨(50) 부부는 복층 건물의 1층 쪽방에서 살고 있다. 8.3㎡(약 2.5평) 방에서 유일하게 여름을 나는 데 도움이되는 것은 뚜껑이 떨어진 지 오래된 선풍기가 전부였다. 방에는 창문이 없었고 건물내 세면시설도 한 곳 뿐이다. 김대현씨는 “2층은 판넬 지붕인데 직사광선이 내리 쬐어 더 덥고 살기가 힘들어 1층을 선택했다”며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룩주룩 나 하루에도 옷을 몇 번씩 갈아입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부터 돈의동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는 김대현 씨(47), 김별 씨(50) 부부의 방. 창문조차 없는 2.5평짜리 방에 있는 유일한 냉방기기는 뚜껑이 떨어진 지 오래된 선풍기 한 대다. [사진=지혜진 기자]
주민들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쉼터가 마련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쪽방촌 초입에 위치한 돈의동 쪽방상담소 4층의 무더위쉼터에는 총 7개의 간이침대가 설치돼 있었고 에어컨은 23도에 맞춰져 있었다. 쪽방상담소에는 무료 사워 시설도 있어 매일 15명 정도가 쉼터를 이용한다. 샤워를 끝내고 나온 김 모씨(66)는 “집에는 제대로 된 세면 시설이 없어 여기서 씼는다”며 “더위를 식히려 하루에도 두세 번씩 샤워를 한다”고 말했다.
돈의동쪽방상담소 4층의 무더위쉼터에는 에어컨과 간이침대 7개가 설치돼 있다. 쪽방촌 주민이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 [사진=지혜진 기자]
일부 쪽방촌 건물에는 에어컨이 들어가 있지만 아직 설치되지 않은 곳들도 있다. 서울시, 종로구청, 돈의동쪽방상담소가 2022년 8월부터 지난해까지 돈의동 쪽방촌에 총 95대의 에어컨을 설치를 지원했다. 최선관 돈의동쪽방상담소 행정실장은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건물에 우선적으로 에어컨을 설치했다”며 “에어컨 설치를 위해 벽을 뚫었을 때 붕괴 위험이 있는 판잣집 또는 거주민이 한명이나 두명 정도로 규모가 작은 곳에는 에어컨을 설치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480명이 거주 중인 돈의동 쪽방촌에는 2~3평 남짓한 방에서 에어컨이 없이 선풍기 한 대로 폭염을 버텨내는 주민들이 있다. [사진=지혜진 기자]
특히 무더위에 취약한 노년층이 쪽방촌에 많이 살고 있다는 점에서 건강 우려가 심각하게 나오고 있다. 영등포 쪽방촌의 경우 389명이 거주 중인데 대다수가 60대 이상 노년층이다. 영등포 쪽방촌에 사는 이동규 씨(60)는 “더위와 높은 습도로 숨이 턱턱 막힌다”며 “주민 중에는 더위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지난 29일 방문한 영등포 쪽방촌. 20년째 영등포 쪽방촌에 거주 중인 주민 이동규 씨(60)가 본인의 방을 소개해 주고 있다. 2층짜리 건물에는 총 7개의 방이 개미굴처럼 모여 있지만, 복도에도 에어컨은 설치돼 있지 않다. [사진=지혜진 기자]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5~7월 60대 이상 온열환자는 402명으로 전체 38.2%를 차지했다. 특히 주민들은 열대야가 견디기 어렵다고 했다. 올 여름 열대야 일수는 지난 7월 28일을 기준으로 평균 7일을 넘어서며 30년 만에 최다 수준을 기록했다.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에너지학과 교수는 “기후위기로 인해 폭염 등 기후 변동성이 커지고 있고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냉방이 잘 안되는 쪽방촌에서 생활하는 저소득층이나 노년층은 건강 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기에 국가 차원의 쉼터 마련 및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