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뷰티풀’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지난 7월18일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세번째 연속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의 수락 연설은 전당대회 역사상 가장 긴 90분 동안 이어졌다. 초반 20분에 걸쳐 며칠 전 암살당할 뻔한 순간을 감동적으로 풀어낸 그는 나머지 70분 내내 거친 표현과 인신공격을 일삼았다. 그가 쏟아낸 수많은 막말 속에서 ‘뷰티풀’(beautiful)이 자주 들렸다. 다음날 연설 전문에서 검색하니 무려 스무 번이나 나왔다. 트럼프 자신이 꽤 오랜 시간 자신을 두고 ‘철의 남자’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애쓰고 있으며 심지어 그의 연설 직전 프로레슬러, 랩 록 가수, 종합격투기 단체 대표 등 마초 분위기 강한 백인 남성들이 연설하고 노래를 했는데, 그 뒤에 이어진 연설에서, 트럼프 같은 ‘철의 남자’가 ‘뷰티풀’을 이처럼 많이 쓰는 게 신기했다.
한국어와 영어의 형용사는 많이 달라서 ‘아름답다’와 ‘뷰티풀’도 완전히 같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비교적 그 의미가 가까운 편이다. ‘뷰티풀’에도 ‘예쁘다’거나 ‘귀엽다’는 의미가 있지만 ‘아름답다’보다는 다소 먼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일반적인 의미에 대한 것이다. 트럼프의 ‘뷰티풀’에는 조금 다른 뜻이 담겼다. 그의 ‘뷰티풀’을 이해하려면 먼저 20세기 파시즘의 ‘뷰티풀’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대 출신으로 화가를 꿈꿨다가 실패한 아돌프 히틀러는 정치 영역에서 자신을 강력한 힘을 가진 ‘철의 남자’ 이미지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 연단에 설 때면 무대 장식, 조명, 배경에도 신경 쓰고 옷차림부터 입장 방식이나 심지어 연설 속도까지 연출에 공을 들였다. 1930년대 중반 뉘른베르크에서 개최한 대규모 집회는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가 기획한 것으로, 마치 신처럼 입장하는 자신을 향해 열정적으로 환호하는 청중들 모습은 히틀러의 눈에 매우 ‘뷰티풀’했을 것이다.
트럼프도 매우 비슷하다. 그는 전당 대회 전반에 매우 신경 썼다. 무대 배경은 백악관과 화려한 조명으로 쓴 그의 성으로 가득 찼다. 그 앞으로 천천히 입장한 뒤 연설을 시작한다. 눈물을 보이며 암살당한 뻔한 이야기를 꺼내고, 청중들은 이를 듣고 열광적으로 환호한다. 이 모든 장면이 트럼프에게는 ‘뷰티풀’했을 것이다. 화려한 세팅 위에 위대한 지도자가 군중들로부터 기계적인 환호를 받는 상황은 트럼프에게 ‘뷰티풀’하다. 트럼프가 히틀러와 비슷하다는 주장은 지루한 정치적 공격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치밀하게 기획한 집회 장면, 질서 정연하게 환호를 보내는 군중의 모습에서 둘 사이 공통점을 연상하는 것을 지나친 억측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트럼프에게 ‘뷰티풀’한 것은 또 있다. 첫번째 탄핵 원인이었던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북한 김정은 최고 지도자에게서 받은 편지도 ‘뷰티풀’했다. 자신에게 호의적인 최근의 대법원 판결도 그에게는 ‘뷰티풀’했다. 언론의 관심을 끈 여러 논란 가운데 자신이 생각하기에 ‘올바른’ 행위마다 ‘뷰티풀’하다고 표현해왔음을 알 수 있다.
형용사는 사람의 태도와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편리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의미가 뚜렷하지 않고 범위가 넓고 애매모호한 측면이 있다. 그 본질적인 애매모호함 때문에 형용사는 악용당하기 쉽다. 본인 중심의 파시즘 서사를 강화하기 위해 트럼프가 자주 사용하는 ‘뷰티풀’이 바로 그런 예다.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하는 그날의 집회와 군중들을 향해 그가 남발한 ‘뷰티풀’도 마찬가지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서사를 부인하는 사람은 ‘뷰티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모두 다 ‘적’이다. 파시즘에는 정치적 선동을 위한 ‘적’이 필요한 법인데 그런 점에서 트럼프는 적을 잘 만들어 내고 있으며 심지어 매우 잘 활용하고 있기까지 하다.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포기로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유력 후보로 등장했다. 트럼프와 해리스의 대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 역사상 첫번째 파시스트 대통령의 탄생, 전 세계 민주주의의 위기는 예상 가능하다. 트럼프에게는 ‘뷰티풀’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과연 그럴까.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이진숙, 취임 날 공영방송 이사 물갈이…“MBC 장악 쿠데타”
- 남자 사브르, 한국 펜싱 역사상 첫 올림픽 3연속 ‘금빛 찌르기’
- 전공의 공백에 PA 5천명 늘었지만…이틀 교육 뒤 수술방 가기도
- 이란의 심장서 하마스 지도자 피살…이스라엘에 ‘피의 보복’ 통첩
- [단독] 박정훈 해임 문건…‘장관’에 3줄 찍찍 긋고 ‘사령관’ 써넣어
- 급식실 기온 50도…“정수기 없어, 수돗물 끓여 식으면 마셔요”
- 사격 김예지, 2500만뷰 세계가 열광한 ‘국가대표 카리스마’
- 연준 “이르면 9월 기준금리 인하 논의”…9월 인하 가능성 공식화
- 메달 따고 더 강해진 신유빈, 여자 단식 8강행 한일전 예고
- [단독] 이진숙, 제주 오간 날 ‘법카’ 8번 출장기록도 없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