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임지연 '리볼버', 뇌리 남을 영화" [여름대전: 제작자들]
"두 배우 모은 작품…밥 안 먹어도 배불러"
[편집자주] 영화계와 관객들 모두 기다렸던 '여름 시즌'이다. 국내 극장가는 올해 역시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이번 여름에도 기대작들은 존재하기에 '희망'은 계속되고 있다. 올 여름 한국 영화 기대작들을 탄생시킨 제작자들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한 방에 즉각적으로 오는 어떤 체험이 있는 작품도 있고 이상하게 계속 생각나는 작품도 있잖아요? '리볼버'는 후자예요. 계속 뇌리에 남을 작품입니다."
창립 작품이었던 '신세계'(2012)부터 '무뢰한'(2014) '검사외전'(2015) '아수라'(2016) '보안관'(2016) '공작'(2017) '돈'(2018) '헌트'(2022) '화란'(2022)까지. 2000년대 이후 나온 한국 영화 중에서도, 특별히 관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온 색깔 짙은 영화들이 사나이픽처스를 통해 탄생했다.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는 21세기 한국 영화의 산증인이다. 그는 '올드보이'(2003)의 라인프로듀서였고 '주먹이 운다'(2004)와 '부당거래'(2010),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베를린'(2012)의 프로듀서로 일하다 사나이픽처스를 설립했다. 사나이픽처스는 설립한 이래 줄곧 개성 있으면서도 관객들의 마음에 선명한 인상을 남긴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신작 '리볼버' 역시 이 작품들의 계보를 잇는다. '무뢰한' 오승욱 감독, 전도연과 약 10년 만에 의기투합한 '리볼버'가 오는 7일 개봉을 앞둔 가운데, 서울 중구에 있는 사나이픽처스 사무실에서 한 대표를 만났다.
-개봉을 앞둔 심경은 어떤가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는 잊어버리는 편이다. 앞으로 찍을 영화도 생각하면서 이 영화를 잘마무리해야 한다. 그리고 배우들과 감독님,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했는데 영화계도 상황이 좋지도 않고 하니까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영화가 인정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항상 그랬다.
-전도연이 오승욱 감독에게 가벼운 시나리오를 하나 써보라고 해서 나온 작품이 '리볼버'라고 알고 있다. 제작사 대표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시작된 영화인가.
▶오 감독이 원래 준비하던 작품은 '가솔린'이라는 작품인데, 그 작품도 캐스팅은 됐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좀 느리다. 그냥 '느리다'고 표현하는 것을 넘어 조금 가공할 만큼 느리다. (웃음) 시나리오를 수정 하실 때 수정 자체가 느린 건 괜찮은데 그걸 지우고 다시 수정하고 하는, 심사숙고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결국 '가솔린'은 진행하다 안 됐다. 시대 배경도 과거라 예산도 컸다. 그러다 (전)도연씨가 어느 날 감독님과 둘이 같이 사무실에 왔다. 같이 삼겹살을 드시고 온 날이다. 라이트한 영화를 좀 해보자고 하더라. 나도 그때 당시에 음악을 몇 개 갖고 있었던 게 있었다. 나중에 하면 이런 톤의 음악을 써야지 하면서. 경쾌한 록 음악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나오면 (전)도연 씨가 하면 좋겠다고, 가볍게 경쾌한 영화를 만들자고 합의를 그날 했었다. 그런데 시나리오 고치는 데 몇 년 걸리더라.(웃음)
-관객의 입장에서는 '더 글로리'로 '핫'한 임지연과 '칸의 여왕' 전도연이 붙는 영화라는 점에서 기대가 많이 됐다.
▶그렇다, 괜찮다. 임지연이 잘한 거 같다. (전)도연 씨는 이 극에서 사실 주인공이긴 한데 과묵하고 조금 어떻게 보면 능동적이긴 하지만, 사실 그 주변 사람들의 조력이 없으면 안 되는 캐릭터다. 그런데 임지연이 줄타기를 잘한 거 같다. 영화가 끝나고 임지연의 팬 됐다. 임지연은 평소에 남자 동생 같고. 친척 같았다. 인간적으로도 너무 좋은 배우였다.
-임지연의 인간적인 매력에 대해서는 들었고, 연기에 대해서는 어땠나. '칸의 여왕'에게 밀리지 않고 잘한 것 같나.
▶'밀린다'는 표현은 안 맞는다. 연기라는 게 밀리고 안 밀리고가 아니다. 캐릭터에 충실했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밀리지 않는 연기'를 했다기보다는 '심적인 부담감을 극복하고' 연기를 잘 해냈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전도연 아닌가. 고유명사인 사람이다. 한예종 전도연이 될 거라 자기 주문을 건 친구가, 앞에 전도연이 있는데 평소 친분이 없었다가 작품을 통해 만나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또 (전)도연 씨 최대 장점이 후배들이나 동료 배우들을 되게 편안하게 해준다. 어떻게 보면 경직될 수도 있는데 그런 느낌이 들지 않게 하는 게 도연 씨의 배우로서의 존경할 만한 점이 아닌가 한다.
-전도연은 남자 주인공 영화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사나이픽처스에서 주인공 자리를 꿰찬 '여배우 1호' 아닌가.(영화 '무뢰한'은 사나이픽처스가 만든 여배우 주연 첫 영화다.) 사나이픽처스에게 전도연이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무뢰한' 찍을 때 그냥 정말 고맙기만 했었다. 고맙고 진짜 프로구나 했었다. 모든 게 다 감사했던 거 같다. '무뢰한'을 함께 한 모든 순간이 좋긴 했는데 끝나고 나도 '무뢰한'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있으시다. 내가 이 분과 이렇게 만나면서면서 작업할 수 있는 게 고맙고, 영광이다. 그러니 노력을 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불현듯 하기도 한다. 그냥 되는 일은 없으니까. 도연 씨가 노력하듯 나도 노력을 해야 조금 더 나은 작품을 같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도 연씨가 가진 어떤 힘이 있다. 필모그래피를 잘 쌓아왔으니, 후배들이라면 누구나 다 (전)도연 씨와 작품을 하고 싶어 한다.
-'무뢰한'은 여전히 기억하는 이들이 많은 수작이다. 여전히 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많다. '무뢰한'을 함께 한 오승욱 감독, 전도연과 10년 만에 새 작품을 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나.
▶새롭게 발견한 건 없다. '역시나'라는 감정이 들었다. 이제 뭘 하려면 빨리해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든다.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고, 할리우드나 가까운 일본, 홍콩 영화사를 돌아보면 전성기가 긴 배우들, 감독님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유한하다. 이 좋은 배우에게 그 역할을 주고 싶고, 감독님도 워낙 심사숙고하는 스타일이어서 조금 더 빨리빨리 해야 하지 않을까 싶더라. 그래서 감독님을 꼬집고 싶었다. (웃음) 고민을 좀 많이 하신다. 진짜 작가라 그렇다. 다시 두 사람과 영화를 한 게 누가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내게는 감사한 순간이었다. 얼마 전 제작보고회를 뒤에서 보고 있는데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블랙으로 맞춰 입고 왔더라. 배우들이 다 블랙으로 입고 와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너무 보기 좋았다.
-지창욱은 '최악의 악'을 제작하면서 맺은 인연인 것 같은데, 의외의 캐스팅이긴 했다.
▶연기를 잘하더라. 힘을 빼는 연기를 되게 좋아한다. 나도 제작보고회에서 전도연이 지창욱에 관해 얘기한, 잘생긴 한류 탤런트가 아닌가 하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최악의 악' 하면서 보니까, 보통 배우가 아니더라. 되게 다른 배우들도 잘했는데 그 '케미'가 좋았던 거 같다. '최악의 악'은 힘든 촬영이 많은데 이 친구 너무 괜찮다 싶었다. 힘도 뺄 줄 알고 정극 연기도 잘하고, 그동안 눈여겨보지 못했다가 못 봤던 것을 보게 돼 너무 좋았다. 지창욱이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가 들어가는 게 있는데 역할이 작아'하고 얘기를 했었다. 그래도 상관이 없다고 하더라. '최악의 악' PD 편에 '리볼버'의 대본을 줬는데 덜컥하겠다고 하더라. 예산이 크지 않다고도 했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전도연 선배님과 하니까 하겠다고 하더라. 굉장히 무리한 스케줄이었다. '최악의 악' 홍보를 하면서 '웰컴투 삼달리'를 촬영할 때였고 우정 출연하는 드라마도 있었다. 굉장히 스케줄이 벅찼을 텐데 잘해줘서 업고 다니고 싶더라.
-'리볼버'를 찍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무엇인가.
▶감독님의 속도? 농담이다. (웃음) '리볼버'는 조금 원만하게 된 편이다. 비가 많이 오긴 했는데 캐노피를 치고 찍었다. 그랬더니 지나고 나서는 날씨가 도와주기도 하고 비가 갑자기 쏟아지기도 하고 그랬다.
-오승욱 감독의 시나리오 집필 과정이 꽤 길었었나 보다. 오랜 시간 기다리면서도 오승욱 감독과 함께 영화를 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오승욱 감독의 가치를 설명해 보자면 어떤가.
▶나는 그냥 감독님이 좋다. 그러니까 영화에 관해서는 척척박사다. 어지간한 영화도 물어보면 다 아신다. 예전에 갑자기 술 마시다가 영화 제목이 생각이 안 나서 전화드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영어 원제와 한국 제목을 그냥 바로 말씀하시더라. 오래 같이 작품을 하고 싶은 사람이다. 인간적으로 좋은 분이다. 음악과 문학, 영화 이런 데 조예가 깊고 제가 배울 점이 있는 분이다. 그래서 같이한다. 물론 속도 빼고(웃음). 내가 속도 얘기를 농담으로 하면 감독님은 허허 웃으시는데 내 생각에 '고만 좀 해'라는 생각이 반영된 웃음인 것 같다. (웃음)
-사나이픽처스라는 독특한 이름이 주는 이 회사 제작 영화만의 특별한 이미지가 있는 것 같은데.
▶예전에 내가 사나이픽처스 이전에 제작사를 차릴 뻔했던 적이 있었다. 2008년인데 회사 이름을 뭐로 하지, 하고 있는데 그때 내 네이트온 아이디가 '응봉동 사나이'였다. '응봉동 쓰레빠'에 '한재덕 사나이'였나. 그때 키타노 타케시를 좋아했는데 당시 키타노 타케시 작품을 하려고 한국 배우와 준비하던 회사 이름이 '오피스 키타노'였다. 거기서 응용해 나는 '오피스 사나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너무 사채 사무실 같다고, 영화 만드는 회사로서의 정체성이 애매하다는 반응이 있었다. 그때 제작사를 차리지는 않았는데 그리고 회사를 차릴 때 투표해 다수결로 뽑혔다. 내가 지었다기보다는 직원들이 다수결로 사나이 픽처스를 택했다.
회사 이름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단정 지어지는 듯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조금 그런 게 부담스럽기도 하다. 호쾌해야 한다는, 호쾌한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는 심적인 부담감이 있다. 액션도 박력이 있으면 좋겠고.
-작품 제작 결정은 어떻게 하는 편인가.
▶'개취'로 결정한다. 장르를 떠나서 영화적인 미덕이 있느냐를 본다. 오락 영화면 오락 영화로서의 미덕이 있느냐, 하는 그런 거다. 개인적인 취향과 영화적인 미덕. 감독이 많이 하고 싶어 한다면 '왜 이걸 하고 싶은가?' 물어보고, 직원들이 다 함께 다수결로 결정하기도 한다. '이건 내가 하겠다'고 우길 때도 있다. 그런 영화들은 사실 신인 감독의 작품으로 보편적인 영화들은 아니다. 저예산으로 찍어야 하고. 그런 작품 중 하나가 '화란'이었다. 개봉 전인데 '야행'이라는 영화도 그런 케이스다. 감독이 써 온 글이 너무 좋아서 제작한 경우였다.
-영화적 미덕이라 함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각자 생각하는 근사한 영화들이 따로 있지 않나. 공통으로 꼽히는 영화들 말이다. 그런 영화가 가진 미덕을 찾게 된다. 왜 이 영화를 찾게 되는 걸까. 표현력이 부족해서 말하기가 어렵지만 어릴 때 영화를 볼 때도 '저 장면은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 울림, 여운을 준다' 싶은 영화들이 있었다. 그게 내게는 영화적인 미덕이 아닌가 싶다. 내가 그런 영화들을 좋아하더라. 어떤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길을 가고, 어떤 결과를 맞이할 때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과 위치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지지 않나. 이중적이고 복잡한 감정이 들면서 이를 통해 감정적인 여운을 주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 영화를 편애하는 편이다.
-'리볼버'도 그런 영화적 미덕을 갖춘 영화라 생각하나.
▶영화의 엔딩 부분에 그런 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목표를 위해 달려간다. 나는 내가 노력한 것보다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을 가졌을 때 꼭 환희와 기쁨만 있는 건 아니다. 묘한 공허가 있다. 나는 '리볼버'에 그런 것이 담기길 바랐고, 그게 잘 표현이 된 것 같더라. 한 가지 감정만이 아니라 주인공의 복합적인 그런 감정을 잘 살려서 그런 부분에서 영화적 미덕이 있다.
-영화계가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잘되는 영화는 '대박'을 할 수 있지만 보통의 영화들은 100만 관객 돌파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분석하고 대응하려고 하는가.
▶충무로의 모든 제작자에게 물어봐도 답은 같다. 영화계의 현실은 좋지 않고, 300만(관객 동원), 500만짜리 영화가 많아져야 한다고 입 모아 얘기할 것이다. 해결 방법은 영화를 잘 만드는 수밖에는 없다. 내가 경제학자도 아니고 챗GPT를 돌려서 모든 트렌드를 분석할 수 있느 것도 아니다. 관객들이 제작자들이 만든 영화를 봤을 때 어떤 지점에서 어떤 미덕이 소구 되는지, 그게 명확하면 흥행이 되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어떡하지' 스타일이다. 그냥 '큰일이네' 한다. 방법을 찾았으면 누군가 했고 우리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오래 사랑받는 영화가 좋은 영화가 아닌가. 자본에 대한 일정한 예의를 갖춰 손해를 좀 덜 보면서 말이다. 나는 제작자들의 취향이 담긴 개성있는 영화들이, 다양하게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제작자로서 개인적인 바람이나 꿈, 목표 같은 것이 있나.
▶배우들이 회고전을 할 때 들고 갈 영화를 만들고 싶다. (전)도연 씨가 몇 해 전 회고전을 할 때 '무뢰한'을 다섯 작품 안에 끼워주더라. 도연 씨와 작업한 것만으로 행운인데 회고전 인생작에 '무뢰한'이 들어가 있는 게 고맙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접속' '해피엔드'와 함께 '무뢰한'이 들어갔다. 황정민 씨도 회고전을 하면 '신세계'를 가지고 간다. 정우성 씨도 작품을 뽑으라고 하면 '무사' '태양은 없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와 함께 '아수라'를 뽑아주신다. 적어도 배우의 필모그래피에 흠을 내는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 자신을 더 채찍질하게 된다. 더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리볼버'의 매력을 한 번 소개한다면.
▶한 방에 즉각적으로 오는 어떤 체험이 있는 작품도 있고 이상하게 계속 생각나는 작품도 있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소설이든 그렇다. '리볼버'는 후자가 아닌가 싶다. MSG가 덜 들어간 음식 같은 맛인데 보면 계속 뇌리에 남는다. 무지하게 더운 여름이다. '파일럿'을 보면서 까르르 웃다가 '리볼버'도 보시고 '빅토리'도 보시라. 사실 여름 시장에 적합한 영화, 적합하지 않은 영화가 따로 없다. 나는 영화 인생이 길지 않지만, 여름 텐트폴 시장에 이런 장르의 영화가 나온 적은 없지 않은가 싶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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