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할타자 방출 도박?' KBO 43년 역사 바꾼 물건이 왔다!…"스카우트가 날 데려온 이유 있겠죠"

김민경 기자 2024. 8. 1.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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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 베어스 제러드 영 ⓒ 연합뉴스
▲ 환호하는 두산 베어스 제러드 영과 이승엽 감독 ⓒ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광주, 김민경 기자] "스카우트가 나를 데려온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두산 베어스가 복권을 제대로 긁은 듯하다. 새 외국인 타자 제러드 영(29)이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팀 분위기를 완전히 뒤바꿔놨다. 두산이 3할 타자 헨리 라모스(32)를 과감히 방출하면서 기대한 효과가 제러드 영입 2경기 만에 제대로 나타나고 있다. 제러드는 침체된 팀 타선의 분위기만 바꿔달랬더니 KBO 43년 역사를 바꾸는 데 앞장서며 한국 야구팬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두산을 제외한 나머지 구단에는 경계 대상 1순위가 될 전망이다.

제러드는 지난달 31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 6타수 5안타(2홈런) 2볼넷 1삼진 8타점 5득점으로 맹활약하면서 30-6 대승을 이끌었다. 제러드는 역대 외국인 선수 및 베어스 선수 한 경기 최다 타점 타이기록을 달성했다. 외국인 선수 종전 기록은 SK 호세 페르난데스(2002년 9월 13일 인천 KIA전), NC 에릭 테임즈(2015년 5월 26일 마산 두산전)의 8타점이었다. 베어스 선수로는 최주환이 2015년 9월 26일 잠실 삼성전에서 8타점을 기록했다.

팀 30득점은 KBO리그 역대 한 경기 최다 득점 신기록이었다. 종전 기록은 삼성 라이온즈가 1997년 5월 4일 대구시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전에서 기록한 27득점이었다. 두산은 7이닝 만에 30득점을 달성하는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줬다. 아울러 두산은 팀 28안타로 종전 구단 한 경기 최다 신기록인 27안타(1996년 6월 13일 시민 삼성전)를 넘어섰다.

두산은 24점차로 승리하면서 KBO리그 역대 최다 득점차 경기를 기록하기도 했다. 종전 기록은 KIA가 2022년 7월 24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기록한 23점차(23-0 승리)였다.

두산이 선두 KIA 마운드를 완전히 붕괴시키면서 KBO 43년 역사상 신기록을 쏟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제러드였다. 제러드는 1-2로 뒤진 3회초 선두타자 허경민이 볼넷으로 출루한 가운데 우월 투런포를 터트리면서 3-2로 경기를 뒤집었다. KIA 선발투수 김도현을 완전히 뒤흔든 강력한 한 방이었고, 제러드의 홈런에 탄력을 받은 두산 타선은 3회초에만 대거 7점을 뽑으면서 8-2로 크게 앞서기 시작했다. 두산은 4회초 1득점, 5회초 5득점을 기록하면서 KIA 투수들이 올라오는 족족 사정없이 두들겼다.

제러드는 14-3으로 앞선 6회초 11득점 맹공격을 이끈 선봉장이기도 했다. 선두타자 허경민이 유격수 땅볼 실책으로 출루한 가운데 제러드는 이준영에게 우중월 투런포를 뺏으면서 16-3으로 거리를 벌렸다. 이후 김재환의 중월 투런포, 조수행의 1타점 적시타가 차례로 터지면서 19-3까지 도망간 가운데 2사 만루에서 타순이 한 바퀴 돌아 다시 제러드 타석이 됐다. 제러드는 투수 김현수 상대로 좌익수 왼쪽으로 빠지는 3타점 적시 2루타를 쳐 22-3까지 거리를 벌렸다. KIA는 김대유로 또 마운드를 바꿨으나 강승호의 밀어내기 볼넷, 김기연의 2타점 적시타로 25-3이 됐다.

제러드는 7회초 8타점 경기를 완성했다. 조수행과 김재호의 안타로 만든 1사 1, 2루 기회에서 제러드가 중견수 오른쪽 적시타를 날려 26-3이 됐다. 이때부터 두산의 한 경기 최다 득점 신기록 도전이 시작됐다. 1사 만루에서 김재환의 밀어내기 볼넷으로 27득점해 삼성과 최다 기록 타이를 이뤘고, 강승호가 좌중간을 가르는 2타점 적시 2루타를 때려 29-3으로 거리를 벌리면서 새 역사를 썼다. 계속된 1사 2, 3루 기회에서는 김기연이 유격수 땅볼로 타점을 올리면서 30득점을 채웠다.

제러드는 8회초 마지막 타석에서는 우전 안타로 이날 팀의 28번째 안타를 장식하면서 구단 역대 한 경기 최다 안타 신기록을 작성한 주인공이 됐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경기 뒤 "KBO리그 한 경기 최다 득점, 구단 역대 최다 안타 등 신기록들을 달성한 우리 선수들 모두 자랑스럽다. 연패를 끊은 뒤 화끈한 타격으로 연승을 달린 것이 남은 경기 자신감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팀 두산' 선수들 모두가 수훈갑이다. 그중에서도 제러드를 특히 칭찬하고 싶다. 영입할 때 바랐던 게임 체인저의 모습을 톡톡히 보여줬다. 지금의 활약이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총평했다.

▲ 두산 베어스 제러드 영 ⓒ 두산 베어스
▲ 두산 베어스 제러드 영(왼쪽)과 고토 고지 코치 ⓒ 두산 베어스

제러드는 미국에서도 8타점 경기를 한 적은 없었다고. 그는 "8회에 나가기 전에 8타점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믿을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했다. 첫 번째 홈런은 선두타자가 볼넷으로 출루했고, 내가 타석에 들어섰는데 뒤에 코치님을 보니까 치라는 사인을 주더라. 아주 좋은 기회가 왔던 것 같고, 최대한 강한 스윙을 했는데 잘 맞아서 넘어갔던 것 같다. 2번째 홈런은 홈런존(KIA EV3 전기차 지급) 위로 넘어가서 조금 아쉽더라"고 답하며 웃었다.

구단의 KBO 역대 한 경기 최다 득점 신기록을 이끈 것과 관련해서는 "기분은 좋지만, 내가 다 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야수) 9명이 전부 다 좋은 성적을 냈고, 오늘(지난달 31일) 투수들도 물론 다 잘 던졌다. 팀이 다 같이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제러드의 첫 홈런공을 관중석에서 받은 건 KIA팬이었다. 이 팬은 이 공을 두산 구단에 전달하면서 김도영의 유니폼과 모자, 그리고 이승엽 감독의 사인공을 요청했다. 제러드는 이 감독이 홈런공을 찾아주고자 사인까지 했다는 말에 "아주 좋은 교환인 것 같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제러드는 지난달 30일 광주 KIA전에 교체 출전하면서 KBO리그에 데뷔했고, 9회 2루타를 날리면서 첫 안타를 신고했다. 첫 안타 기념구 역시 제러드의 품으로 돌아왔다. 제러드는 "기념구를 받았는데 한글로 관련 내용이 쓰여 있더라. 아마 평생 간직할 것 같다"며 기뻐했다.

두산이 지난달 23일 라모스를 방출하고 제러드를 총액 30만 달러(약 4억원)에 영입한다고 발표했을 때 반응은 애매했다. 라모스는 올해 80경기에서 타율 0.305(311타수 95안타), 10홈런, 48타점, OPS 0.842를 기록하고 있었다. KBO리그 적응에 실패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성적인데, 두산은 5강 이상의 성적을 목표로 하고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훨씬 더 파괴력 있는 외국인 타자를 영입해야 한다는 데 현장과 프런트의 의견이 모였다.

두산이 적극적으로 새 외국인 타자를 알아보고 있을 때 마침 제러드가 풀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제러드는 지난 6월 KBO 다른 구단도 오퍼를 넣었을 정도로 여러 구단의 영입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선수였는데, 당시는 메이저리그 도전 의지가 강해 오퍼를 거절했다. 두산이 오퍼를 넣는 시점에는 제러드 스스로 메이저리그 콜업은 포기한 상태였고, 새로운 리그 도전에 흥미를 느껴 두산과 손을 잡았다. 두산은 제러드가 풀렸을 때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영입을 결정했다. 이제 단 2경기이긴 하지만, 라모스를 포기하는 도박을 주저하지 않은 결과가 성적으로 곧장 나타나고 있다.

두산 관계자는 제러드 영입 당시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꾸자는 게 컸다. 최근 경기 내용을 보면 선취점을 줬을 때 타선에 (반격할) 힘이 없었다. 제러드가 와서 그런 점에서 반등을 이끌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 콘택트 위주로 치는 타자가 있으면 한 방을 쳐서 파이팅을 줄 수 있는 그런 타자가 섞여야 하지 않나. 그런 차원에서 외국인 타자가 새로 와서 활력을 불어넣는 임무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타선의 분위기를 한번 바꿔주자는 게 가장 컸다"고 강조했다.

▲ 두산 베어스 제러드 영 ⓒ 두산 베어스
▲ 두산 베어스는 제러드 영이 합류하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 두산 베어스

표본이 아직은 부족하긴 하나 두산 내부적으로는 제러드의 활약이 반짝이 아니리라 확신하고 있다. 두산 관계자는 "기본기가 아주 탄탄한 선수 같다. 더 빨리 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 감독은 "공을 잘 볼 것 같다. 내가 볼 때는 상체가 공을 많이 따라다니지 않는 유형인 것 같고, 공을 볼 줄도 아는 선수 같고, KBO리그에 얼마나 빨리 적응할지 모르겠으나 생각보다 참을성이 있는 선수 같다. 쳐야 할 때 치고,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릴 줄 아는 차분한 성격을 지닌 선수 같다"며 꾸준한 활약을 기대했다.

제러드는 시작부터 고점을 찍으면서 앞으로가 더 부담이 되는지 묻자 매우 긍정적인 답변을 남겼다. 그는 "기대가 높은 것도 야구의 일부라 생각한다. 어쨌든 바닥에서 시작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기대가 높은 것도 경기의 일부니까 내가 그에 맞는 임무를 해야 할 것 같다. (상대팀이 분석한다면) 나도 똑같이 상대방을 계속 분석할 것이다. 오늘 보여줬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믿음직스럽게 답했다.

두산은 올해 외국인 선수 농사에 많은 돈을 쓰고도 애를 먹었다. 지난해 24승을 합작한 라울 알칸타라, 브랜든 와델 원투펀치에게 150만 달러(약 20억원), 113만 달러(약 15억원)를 썼으나 알칸타라는 부상과 부진이 겹쳐 결국 방출됐고, 브랜든은 왼어깨 견갑하근 부상으로 아직 재활선수명단에 있다. 알칸타라를 대신할 외국인 투수 조던 발라조빅을 영입하면서 25만 달러(약 3억원)를 추가로 썼고, 브랜든의 대체 외국인 시라카와 케이쇼는 6주 계약에 400만엔(약 3600만원)을 줬다. 라모스에게는 70만 달러(약 9억원)를 투자했으나 과감히 포기하고 제러드를 데려오면서 30만 달러를 추가로 썼다. 올해에만 외국인 선수 6명에게 쓴 금액이 우리 돈으로 대략 51억3600만원이다.

두산은 외국인 선수 비용 부담이 어느 해보다 큰 상황에서도 성적을 위해 제러드를 영입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고, 덕분에 시즌 막바지 반등의 발판을 마련했다. 두산은 4연패에 빠져 있다 선두 KIA를 만나 2연승을 달리면서 시즌 성적 53승50패2무로 5위에 올라 있다. 4위 SSG 랜더스와는 경기차가 없고, 3위 삼성과는 0.5경기차밖에 나지 않는다. 두산은 오자마자 리그 역사를 바꾸는 데 앞장선 외국인 타자 제러드 효과로 더 높은 곳에 올라설 수 있을까.

제러드는 앞으로 남은 39경기에서 자신을 다 보여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정도면 당연히 충분하다 생각한다. 기록 자체는 안 좋을 수도 있지만, 항상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인 것은 보여드릴 수 있다. 자신감이 제일 중요하다. 나는 미국에 있을 때도 시즌 중에 잘하고 있었다. 스카우트가 나를 데려온 이유가 있지 않겠나. 그 자신감을 야구로 보여주면 큰 문제 없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 한글로 첫 안타 기념 문구가 적힌 기념구를 들고 두산 베어스 제러드 영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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