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죄 처벌 피한 대북요원 유출범… 다시 불붙은 ‘법 개정론’
간첩죄는 ‘적국’ 北 관련만 해당
유출 군무원 ‘기밀누설’만 적용돼
“적국, 외국으로 처벌범위 확대를”
지난 국회 여야 법안 발의했지만
법원 “군사기밀법과 형량 불균형
우방·적국 일률 처벌 문제” 지적
민주 “기밀 개념 모호” 일부 반대
법사위 문턱도 못 넘고 결국 폐기
◆간첩 처벌 못 하는 간첩법
31일 정치권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이른바 간첩법은 형법 98조 1항을 말한다. 이 조항은 ‘적국’을 위해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적국’이란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적국’은 현재 정전 상태로 대치 중인 북한뿐이다. 즉 ‘적국’인 북한 외 어느 나라에 국가 기밀정보를 누설해도 형법상 간첩죄로 처벌할 근거 규정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법망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간첩법 조문상 ‘적국’을 ‘외국’ 또는 ‘외국 및 외국인단체’로 고치자는 것이 간첩법 개정 주장의 핵심이다.
간첩법 개정안은 역대 국회에서 꾸준히 발의됐지만 여야 정쟁 속 크게 주목받지 못한 채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는 수순을 거듭했다.
21대 국회 법안1소위 회의록에 기재된 당시의 간첩법 논의 과정을 보면 여당과 법무부는 간첩법 도입에 긍정적이었다. 법원행정처가 반대 입장이었다.
행정처는 특별법 형태의 군사기밀보호법이 개정 논의되던 간첩법보다 법정형이 가벼운 점을 들어 “법체계상 검토가 필요하다”는 부정적 입장을 냈다. 또 “우방국, 동맹국 또는 이에 준하는 외국에 제공할 수 있는 정보와 적국, 준적국 또는 이에 준하는 외국에 제공할 수 있는 정보의 종류엔 매우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도 일률적으로 높은 법정형으로 처벌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라고 했다.
행정처 논리는 우리 기밀을 탈취한 국가가 우방국이냐 비우방국이냐에 따라 간첩행위를 한 자의 처벌 수준도 달리 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이를 두고 안보 분야 한 전문가는 “어느 국가를 위해 정보를 누설하든 간첩행위란 본질은 그대로인데 해당 국가와의 관계가 왜 고려 대상이 돼야 하나”라고 했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은 “세계 환경이 바뀌었는데 우리가 거기에 따른 입법을 하자는 것”이라며 “과거의 제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냥 그걸(기존 법률체계) 가지고 말하면 곤란하지 않겠나”라고 행정처를 질타했다.
민주당은 법원 측 입장을 고려해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당시 법사위에 보임한 지 얼마 안 된 박용진 전 의원은 “이 논의를 처음 본다”며 “인력 유출은 어떻게 처벌하냐”고 했다. 이 전 차관이 “인력 유출은 지금 말한 국가기밀의 탐지, 수집 등 간첩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자 박 전 의원은 “다 간첩으로 몰아서 세게 이렇게 규율하는 것만으로 이를 바라보는 게 너무 단순한 사고의 접근방식 아닌가”라고 했다. 이후로도 “그것은 어디 있어요, 국가기밀 리스트는? 제가 이것 지금 처음 봐요”라고 하는 등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같은 당 권칠승 의원도 “(국가기밀 개념이) 그렇게 명확한가”라고 했고, 박주민 의원과 이탄희 전 의원도 군사기밀보호법 등 다른 법과의 관계를 고려해 추가 논의를 해야 한단 입장을 이어갔다. 이렇듯 여야 간 평행선을 달린 간첩법 논의는 지난해 3·6·9월 소위에서 다뤄진 뒤 22대 총선 국면으로 접어들며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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