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치닫는 의정 갈등 6개월…의사·환자 신뢰마저 깨졌다
의료계 “의대생·전공의·전임의, 의료 질 직결”
지난 2월 정부가 내년 전국 의과대학 신입생 정원을 기존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 불거진 의정 갈등이 6개월을 넘었다. ‘의대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는 의료계와 ‘의대 증원 규모는 협상과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는 정부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환자와 보호자를 비롯한 국민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의료계 안팎에선 한국의 의학 교육과 의료 시스템의 붕괴가 이미 시작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31일 조선비즈가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 발표 이후 타임라인을 짚어보고 의료 현장의 전망을 정리했다.
◇정부 ‘증원 강행’ vs 의료계 ‘전면 백지화’
의대 증원 움직임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22년부터 시작됐다. 그해 10월 보건복지부가 국회 국정감사에서 의대 증원 의지를 밝혔고, 지난해 정부는 40개 의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증원 수요조사를 통해 2151~2847명이라는 숫자를 도출했다. 최종적으로 2월 6일 보건복지부가 내년도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2월 19일 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등 소위 빅5 대형병원을 비롯한 전국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했다. 2월 20일부터 의대생들도 집단 휴학계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거센 반발에도 정부는 증원 절차를 밟았다. 3월 5일 정부가 각 의대에서 증원 규모가 3401명이라고 발표했다. 20일에는 2000명을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 의대 361명, 비수도권 지방 의대에 1639명 배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의대 증원에 나서자, 의대 교수들이 2월 25일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의료계의 반발 수위가 높아지자, 정부는 4월 19일 정원을 확대하기로 한 21개 의대에 내년도에만 증원 규모의 50~100% 범위에서 자율 모집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대학들이 정원을 줄이면서, 지난 5월 내년도 의대 정원은 1509명 증가로 확정됐다. 5월 31일에는 대학별 모집 요강까지 발표되면서 증원 절차는 공식적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의료계 반발은 계속 이어졌다. 의대생들은 오는 9월 치르는 내년도 의사 국가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이 지난 26일 오후 6시 의사 국시 실기시험 원서 접수를 마감한 결과, 364명만 원서를 냈다. 의사 면허 취득 첫 단계인 실기 시험에 대상 의대생 중 11%만 응시했다.
사직 전공의는 10명 중 9명이 복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공의 사직 처리 마감인 지난 15일 정오 기준 수련병원 211곳에 출근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는 1155명에 그쳤다. 전체 전공의 1만 3756명 중 8.4%에 그쳤다. 사직 전공의들은 7월 진행된 전국 수련병원의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도 거의 지원하지 않았다.
◇커지는 의료 공백…미래 의료 안갯속
대학병원은 전공의 부족으로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규 의사 절벽이 현실화됐다는 것이다. 서울대 의대 A 교수는 “미래 의사를 배출하는 의학교육은 의과대학-인턴-레지던트-전문의-전임의 순서로 톱니바퀴처럼 물려 연차별로 돌아간다”며 “전공의 사직과 의대생 실기 시험 미응시는 그 시스템이 멈췄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의정 갈등에 따른 의대생 교육과 전공의 실습 공백이 미래 의료를 책임질 제대로 된 의사를 배출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이 지난 26일 오후 6시 의사 국시 실기시험 원서 접수를 마감한 결과, 364명만 원서를 냈다. 의사 면허 취득 첫 단계인 실기 시험에 대상 의대생 중 단 11%만 응시했다. 또 사직 전공의의 10명 중 9명은 근무지 복귀 의사가 없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공의 사직 처리 마감인 지난 15일 정오 기준 수련병원 211곳에 출근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는 1155명에 그쳤다. 전체 전공의 1만 3756명 중 8.4%에 그쳤다.
휴학한 의대생들이 내년 복학하면 신입생 정원도 늘어난 상태라 이를 감당할 교수와 시설을 단기에 확충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의대 예과 1학년 학생들이 오는 9월까지 돌아오지 않아 집단 유급할 경우, 내년에는 이들과 신입생을 합해 약 7500명이 한꺼번에 수업을 듣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전공의의 집단 사직 이후 교육과 실습을 통한 미래 의사 양성과 함께 난도가 높은 중증 환자 진료와 의학 연구를 담당하는 대학병원들의 기능이 사실상 망가졌다. 대학병원들은 전공의들의 공백이 생긴 이후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했다. 대학병원 소속 교수들은 전공의의 공백을 전임의와 교수진이 메우며 야간·주말 당직과 환자 진료, 수술을 이어가고 있으나 다들 “번아웃(극도의 피로), 과부하 상태”라고 입을 모은다.
주요 대학병원 소속 교수와 전임의들은 의학 연구를 이어가며 연구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한데 사실상 손을 놓을 지경에 이르렀다. 서울대 의대 A 교수는 “요즘 주요 의학회에서 부각되고 있는 이슈가 교수들의 논문 연재가 끊긴 것”이라며 “연구 논문을 집필할 시간도 없을 만큼 업무 과부하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어 그는 “세계 의학계에서도 우수한 역량을 인정받기 시작한 한국 의학 연구가 망가진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정이 이렇지만 정부나 병원 모두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업무 과부하를 겪고 있는 전임의와 교수 중에서는 근무 계약 종료와 사직을 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 부족에 따른 의료 공백 대책으로 진료지원(PA)간호사를 투입하겠다는 복안을 내놓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30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브리핑에서 “의료 공백이 최소화되도록 비상 진료 대책 운영에 더욱 만전을 기하겠다”며 “진료 지원(PA) 간호사 등 인력을 확충하고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을 통해 의료체계를 혁신해 과도한 전공의 의존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와 병원이 늘어나는 재원 부담을 어떻게 지원하고 투입할지, 제대로 된 PA인력 양성과 확보를 단기에 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려대 의대 B 교수는 “정부가 말하는 PA 전문 간호사를 투입하면 전공의한테 주던 월급의 몇 배를 더 많은 인력에 줘야 한다”며 “지금도 지방대 병원은 경영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데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고 비판했다.
6개월간 의정 갈등은 의료계 내부와 의사, 환자 간 갈등으로 번졌다. 연세대 의대 C 교수는 “그동안 의정 갈등을 겪으며 의료계 내부에서 주니어와 시니어 간 갈등도 심화했고, 의사와 환자 간 신뢰도 깨졌다”며 “이런 갈등이 결국 의료의 질 저하와 시스템 붕괴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와 국민에게 비극”이라고 말했다. 갈등의 당사자들이 크게 양보하는 결단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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