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장례지도사”… 역술인들의 기이한 진로 상담
7월9일 서울의 한 철학원. 자리에 앉은 역술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학이란 건 하나의 통계학이야. 이런 사람은 처음 봤네. 1%에 해당하는 사주야.” 사주의 기본 원리에 대해 10여 분 이야기한 뒤 그는 기자에게 “기자, 특히 출판 분야는 맞지 않는 사주”라고 단언했다. 기자 직종은 원예·여행사·백화점 등과 함께 ‘목(木)’에 해당해 해롭고, ‘토(土)’에 해당하는 공인중개사·정육점·종교 분야가 좋다고 했다. 내년부터 3년 내에는 “잘릴 수가 있으니 납작 엎드려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일로 성과 낼 생각보다는 부동산 투자를 권했다. 아연한 마음에 먼 데로 눈을 돌리자 벽면 화이트보드의 ‘가격표’가 보였다. 맨 아래에는 ‘부적: 200,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사주는 유행이다. 다만 뿌리 깊은 유행이다. 중국 당·송대에 정립된 후 1000년 이상 수없이 많은 이들이 여덟 글자로 운명을 점쳤다. 술수란 사회가 불안정할 때 유행하기 마련. 〈정감록〉에는 세상을 뒤엎을 ‘진인’의 사주가 등장한다. 한국의 사주 붐은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등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때마침 PC 통신과 초고속 인터넷망이 보급되면서 온라인 운세 시장도 열렸다. 현재 국내 사주 시장 규모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몇몇 언론은 사주·점술·무속 등을 합한 ‘운세 산업’ 규모가 4조원 안팎이라고 보도하는데, 관련 단체들의 추정에 기댄 수치다. 통계청의 가장 최근 조사(2016년)에서 ‘점술 및 유사 서비스업’ 매출액은 그 20분의 1인 2000억원 수준이다. 그러나 이 지표가 사주의 인기를 온전히 반영하지는 못한다. 업종 특성상 정식 사업등록을 하지 않는 종사자가 많고 ‘사주카페’처럼 여러 업종을 겸하는 일도 있다. 무엇보다 지난 몇 년간 운세 시장의 급성장 추세가 심상치 않다. 스마트폰 운세 애플리케이션(앱)이 등장하면서 젊은 세대가 사주에 빠져들고 있다.
운세, 사주 앱에는 젊은 세대를 공략하는 요소가 많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누적 500만명 이상 다운로드한 A 앱은 생년월일시를 입력하면 행운의 코디, 시간별 운세, 포춘쿠키 등 갖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사주 외에 별자리·혈액형 등 7개 항목에 따라 궁합을 본다. 심지어 ‘연예인과의 궁합’ 서비스까지 있다. B 앱은 플랫폼 역할에 집중한다. 역술인과 이용자의 거래를 중개하되 ‘상담 후기’를 활성화했다. B 앱을 통하면 역술인과 미리 상담 일자를 잡을 수 있다. 상담 후 이용자는 배달 앱이나 온라인 쇼핑몰처럼 게시판에 평점과 후기를 남긴다. 후기 개수나 평점을 바탕으로 역술인의 ‘능력’을 가늠하게 된다. 역술인 목록을 평점, 거리, 재상담률 등에 따라 정렬할 수도 있다.
“부동산으로 사기 쳐서 돈 벌 팔자”
대중문화에서도 ‘사주의 변신’을 발견할 수 있다. 6월18일 방송을 시작한 〈신들린 연애〉가 대표 사례다. 〈신들린 연애〉는 〈나는 솔로〉 〈솔로지옥〉처럼 출연자들이 연애 상대를 고르는 ‘짝짓기 예능’이다. 특이한 점은 이 프로그램 출연자가 모두 무속인·역술인이라는 것. 직업 특성상 출연자들은 어떤 상대가 자신과 잘 맞는지 사주나 점술로 ‘알 수 있다’. 첫 만남에서 이들은 이름과 생년월일 정보가 적힌 명패만 보고 ‘자신에게 맞는’ 상대를 택한다. 얼굴과 직업을 공개한 뒤 출연자들은 자신의 사주를 공개할 수 없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사주상 이상적 연애 상대’인지 알 수 없게 해 딜레마를 유도하는 것이다. 역술인·무속인을 초연한 도인처럼 여기는 선입견과 달리, 이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인간적 고뇌를 드러낸다. ‘타로점을 봤더니 마음에 드는 남자와의 궁합이 최악’이라며 괴로워하고, ‘지금 연애가 잘 안 풀리는 건 내 사주가 그렇기 때문’이라고 자조한다.
색다른 프로그램의 등장을 보며 ‘사주를 친숙하게 여기는 젊은이가 늘었다’고, 쉽게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사주 앱의 게시판에 이용자들이 써둔 넋두리는 가볍지 않다. “○○ 선생님 여자 과거 잘 보시나요?” “큰 계약 앞두고 있는데 어떤 사주 선생님이 잘 보나요?” “△△ 선생님이 제 남친 유부남 같다는데 이분 정확한가요?” 등, 역술인들의 혜안을 진심으로 신뢰하는 듯한 이가 많다. 애정·재물·진로 등 모든 주제를 통틀어 이 게시판에는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급해요. A 선생님과 B 선생님 말이 다른데, 누가 더 잘 맞히나요?”
누구나 쉽게 맞닥뜨리는 난제다. 일단 사주를 믿기로 마음먹더라도 ‘무엇을’ 믿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 생긴다. 같은 사주를 두고도 역술인마다 해석이 천차만별이다. 기자의 사주를 보고 한 역술인은 ‘칼 쓰는 일’이 알맞다고 말했다. “센 직업이 좋습니다. 좀 뜬금없을 수 있지만, 기자보다는 장례지도사나, 발골사, 아니면 저희처럼 사주 공부하는 것도 권합니다.” 3년 내에 해고될 수 있다고 경고한 앞선 역술인과 달리, 그는 기자 일을 계속하더라도 내년부터는 운이 풀릴 것이라고 평했다. 세 번째로 만난 역술인은 두 사람과 정반대로 기자직을 적극 추천했다. “사주에 땅의 기운이 많다. 땅에는 나무가 있어야 한다. 기자는 나무에 속한다”라는 논리였다. ‘부동산에 투자하라’는 다른 역술인들의 말을 언급하자 그는 기이한 신중론을 내놓았다. “무턱대고 투자할 사주는 아니에요. 좀 나쁘게 말하면 선생님은… 부동산으로 사기를 쳐서 돈 벌 팔잡니다.” 세 사람 모두 제각기 다른 조언을 확신에 가득 차 내뱉었다.
같은 사주를 달리 푸는 현상에 대해 역술인들에게 묻자 이들은 “능력 차이”라고 입을 모았다. ‘공부가 부족한 사람(다른 역술인)’들은 그릇된 풀이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주명리학이 “입문은 쉬워 보여도 숙달은 어렵고 평생 공부해도 부족한 학문”이라고 주장했다. 명리학 이론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디지털 만세력(사주 풀이에 쓰는 달력)’을 활용하면 제 사주가 어떤 글자와 오행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는 바로 안다. 그러나 공부하면 할수록 심오한 분야이기에 사주 풀이에 통달하는 길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책 몇 권 읽고 몇 년 공부한 게 전부인 사람들은 사주 풀이가 틀릴 수밖에 없고, 고매한 스승에게 지도받은 뒤 수많은 사람의 사주를 봐온 자신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완전히 다른 설명도 있다. 사주라는 이론 체계 자체가 허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직접 사주에 입문했던 이들 입에서 이런 주장이 나온다. 최근 책 〈사주는 없다〉를 펴낸 이재인씨는 “사주에는 우주도 없고 운명도 없고 ‘나’도 없다”라고 썼다. 전남대(독문과)·전북대(독어교육과)에 출강 중인 그는 2013년께 계룡산에서 한 스승을 만나 사주 공부를 시작했다. 한때 은퇴 후 생업으로 고려했을 정도로 깊이 빠졌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헐거운 대목들이 속속 눈에 띄었다. 그의 비판은 ‘사주에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회의론과 조금 다르다. ‘이론에 모순이 있어 정합성이 떨어진다’는 데 가깝다.
사주명리학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나면서 ‘우주의 기운’을 받는다. 자연의 기운이 기질을 정하고, 운명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나타내는 여덟 글자를 ‘팔자’라고 한다. 이 여덟 글자는 천간(甲·乙·丙 등 10글자)과 지지(子·丑·寅 등 12글자)로 표기한다.
각 천간과 지지에는 글자마다 ‘목·화·토·금·수’ 오행(五行)이 담겨 있다. “사주에 불(火)이 많다”는 따위 말은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재인씨는 “사주의 여섯 글자는 자연의 기운과 무관하다”라고 말한다. 계절과 시간을 나타내는 건 단 두 글자뿐이다. 나머지는 자연의 변화와 아무런 연관 없이, 60진법에 따라 순차적으로 반복될 뿐이다. 그런데 정작 사주명리학에서는, 자연의 속성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일간’에 해당하는 글자가 ‘나’를 나타낸다며, 일간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게 정설이다.
사주는 어떻게 전문가의 영역이 되었나
사주가 과학이 알지 못하는 어떤 법칙을 반영하는 건 아닐까? 여기서 나오는 게 ‘통계’ 주장이다. 그 원리를 완전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사주에 어떤 특징이 있는 사람이 공통된 기질을 가지더라는 것이다. 근래에는 실험으로 사주의 ‘경향성’을 입증하려는 시도까지 나온다. 그러나 대부분 연구가 실험설계를 잘못해 틀린 결론을 내린다고 이재인씨는 지적했다. 예를 들어 재소자 100명 중 70명의 사주에 ‘삼형(형벌과 관련된 특성)’이 보인다고 해서 ‘삼형이 있는 사람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까? 표본도 턱없이 부족하거니와, “실제로는 삼형 관련성이 있더라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기에 이 실험은 틀렸다고 이재인씨는 말한다.
마찬가지로 10여 년간 사주·주역·풍수 등을 공부한 작가 이지형씨는 사주가 인기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주는 이중적 특성이 있다. 우선 1000년 이상 쌓인 방대한 데이터가 있다. 이걸 다루는 건 경험과 (일종의) 수학적 영역이다. 여기에 영적인 것에 대한 본능적 관심이 가미된다. 경험 많은 사람이 내 이야기를 듣고, 알 수 없는 운명을 점쳐주는 게 고금의 흥미를 끈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제 앞날을 점쳐볼 수 있다면 그것은 지적인 과업도, 영험한 능력도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한여름에 태어난 사람은 불의 기운이 있다’는 수준의 이론은 그럴듯하지만, 그만큼 뻔해서 흥미롭지도 않다. ‘비약과 은유를 통한 추상화’야말로 사주와 역술인의 인기 비결이라고 이지형씨는 말한다. 계절·밤낮과 무관한 ‘일간’ 중심 해석이 여기 일조했다. “일간을 중심으로 풀이하면서 사주 체계는 추상화됐다. 이것이 비웃음과 아마추어리즘으로부터 지켜주는 진입장벽이 되었다. 사주가 전문가의 영역으로 격상된 것이다(〈강호인문학〉 이지형, 2015 중.”
고민을 털어놓을 창구, 덕담 들을 기회 정도로 활용한다면 사주는 제 효용을 다할 수 있다. 〈사주는 없다〉에서 사주명리학을 신랄하게 비판한 이재인씨도 ‘사주의 근절’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역할에 머무른다면 괜찮다. ‘인문학’이니 ‘통계학’이라며 과장하고, 이러저러한 나쁜 일이 닥쳐온다며 겁을 주고, 부적을 파는 등 잇속을 챙기는 일탈이 문제다.” 불안한 사람들은 오늘도 용한 역술인을 찾는다. 그러나 수천 년에 걸쳐, 앞일을 점치는 술수는 대부분 무위로 돌아갔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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