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세대교체에도 사브르 패권은 굳건…'뉴 어펜져스' 시대 개막
(파리=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한국 펜싱의 간판 종목인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2024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격변의 시기를 맞았다.
2012년 런던,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을 제패한 대표팀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우승하며 파리 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그런데 도쿄 올림픽과 항저우 아시안게임 우승을 합작한 '어펜져스'(어벤져스+펜싱) 멤버들 가운데 절반이 이탈했다.
베테랑 김정환과 김준호가 국가대표 은퇴 의사를 밝히고 파리 올림픽에 불참하기로 했다.
이들과 올림픽 금메달을 합작했던 오상욱(27·대전광역시청)과 구본길(35·국민체육진흥공단)은 신예인 박상원(23·대전광역시청), 도경동(24·국군체육부대)과 새로 호흡을 맞춰야 하는 과제를 받았다.
막막한 마음으로 시작한 이들의 첫 여정은 1일(한국시간)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대성공으로 첫 장의 막을 내렸다.
지난달 28일 세계 강호들을 모두 누르고 처음으로 개인전 금메달을 딴 오상욱이 '뉴 어펜져스'가 첫 출항에 항로를 잃지 않도록 새로운 팀의 구심점을 자처했다.
오상욱은 개인전 우승 후 공동취재구역에서 "형들(김정환, 김준호)이 나갈 때 정말 큰 변화가 있었다"며 "정말 많이 박살 나기도 했고, 자신감을 잃기도 했다"고 밝혀 팀 재건 작업이 쉽지 않았음을 짐작게 했다.
개인전 우승으로 대표팀에 기분 좋은 출발을 안긴 그는 동료들이 믿고 의지하는 '가장 날카로운 칼'로서 득점이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제 몫을 했다.
1989년생 구본길은 가장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답게 '맏형 리더십'을 발휘해 서로 익숙하지 않은 팀원들을 '원팀'으로 모았다.
남자 사브르 전성시대의 시작인 런던 대회 때 막내였던 구본길은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인 박상원과 도경동이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다독이고 격려하는 역할도 했다.
도발적인 제스처와 미묘한 신경전 등 특유의 노련한 플레이로 난적으로 꼽힌 개최국 프랑스와 준결승전에서 상대의 평정심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박상원은 특유의 저돌적인 공격으로 대표팀의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패기로 무장한 박상원은 개인전 32강에서 국제펜싱연맹 랭킹 6위의 콜린 히스콕(미국)을 잡는 이변을 썼다.
이후 16강에서 중국의 선천펑에게 패해 짐을 쌌지만 경기 후 "(단체전에서는) 지금보다 분위기를 더 끌어올리겠다"고 말했고, 단체전에서 힘찬 찌르기를 여러 차례 적중하며 그 약속을 지켰다.
도경동도 박상원처럼 '차세대 기수'다운 기량을 인정받아 대표팀에 선발됐다.
180㎝ 후반의 신장을 앞세운 공격이 날카롭기로 정평이 난 도경동이 어느 선수가 빠져도 대체할 기량이 있음을 훈련장 등에서 보여준 터라 세 선수에게 '든든한 백업'이 버티고 있다는 믿음을 줬다.
헝가리와 결승전 7라운드에 처음 출전한 도경동은 라운드 시작 전 1점이었던 격차를 6점으로 벌려놓은 후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박상원과 도경동 모두 구본길이 2012년 런던에서 한국 펜싱의 올림픽 단체전 사상 첫 금메달을 일군 것을 보며 펜싱 선수의 꿈을 키운 '런던 키즈'이기도 하다.
대표팀에는 구본길 외 두 선수가 우러러봤던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선배가 또 있다. 원우영 대표팀 코치다.
원 코치는 새롭게 결성된 팀의 경기력을 김정환, 김준호가 활약하던 이전 대표팀 수준을 끌어올리는 과제를 해결한 주역이다.
세대교체를 이끌라는 숙제를 받은 원 코치는 평소 '펜싱은 기세 싸움'이라는 지론을 편다.
그런 만큼 계속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상대와 기 싸움에서 눌리지 않도록 선수들을 이끌었고, 지도자로 처음 경험한 올림픽에서 여정을 금메달로 마쳤다.
원 코치가 지도자로서 최고의 영광을 얻은 그랑 팔레는 14년 전 그가 한국 사브르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에 우승한 곳이기도 하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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