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싱, 죽지 않았다”
내일 8강 이기면 12년만에 메달
한국 복싱이 올림픽에서 승전보를 날린 건 남녀 선수를 통틀어 8년 만이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때 남자 복서 함상명(29)이 56kg급 32강전에서 거둔 승리가 마지막이었다. 임애지가 8강전에서 이기면 한국 복싱은 12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따게 된다. 올림픽 복싱은 3위 결정전을 따로 치르지 않고 준결승전에서 패한 선수 2명 모두에게 동메달을 준다. 한국은 한순철 복싱 대표팀 코치(40)가 2012년 런던 대회 남자 60kg급에서 은메달을 딴 이후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韓복싱 恨푼다”… 임애지, 여자 첫 올림픽 메달에 한 스텝 남아
[PARiS 2024]
女 54kg급 8강 진출
취미로 복싱하다 고1때 선수 시작… 고3이던 2017년 국제대회 첫 정상
선수층 얇아 국내대회 54kg급 없어… 60kg으로 체급 올려 경기 치러
임애지, 한 경기 더 이기면 최소 동메달 확보 임애지(오른쪽)가 31일 파리 올림픽 복싱 여자 54kg급 16강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8강에 올랐다. 한국 여자 복싱 선수가 올림픽에서 거둔 첫 승리였다. 사진은 임애지와 타티아나 헤지나 지 제주스 샤가스(브라질)의 16강 경기 모습. 파리=뉴시스 |
중학교 때까지 취미로 복싱을 하던 임애지는 고교 1학년이던 2015년부터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고교 시절 3년간 전국대회에서 패한 적이 거의 없을 만큼 독보적인 1인자였고 ‘복싱 천재’ 소리를 들었다. 유소년 세계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고3이던 2017년 처음 출전한 국제 대회인 세계 유스복싱선수권 정상에 올랐다. 한국 여자 복싱 선수가 국제 대회에서 우승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임애지는 19세이던 2018년 태극마크를 달고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나갔고, 2021년 도쿄 올림픽에도 출전한 한국 여자 복싱의 간판 선수다. 왼손잡이 아웃복서인 임애지는 이날 16강전에서도 빠른 주먹과 가벼운 발놀림으로 차근차근 점수를 쌓으면서 상대를 어렵지 않게 물리쳤다. 32강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해 16강 준비에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임애지는 상대를 철저히 분석했다. 임애지는 4-1로 비교적 여유 있는 판정승을 거두고도 실력을 100% 다 발휘하지는 못했다며 다소 아쉬워했다.
임애지의 복싱 인생에도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다. 파리 올림픽에서 임애지가 출전한 54kg급 체급이 전국체육대회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내 대회엔 없다. 여자 복싱 선수층이 얇아 이 체급 복서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대회에서 임애지는 체급을 올려 60kg급에서 뛰어야 했다. 권투 선수가 국내와 국제 대회에서 체급을 달리해 가며 경기에 나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60kg급엔 이번 올림픽에 함께 출전한 오연지(34)가 있다. 국내에선 오연지가 이 체급 최강자다. 오연지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세 차례나 우승했고,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같은 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3위에 올랐다. 한국은 이번 파리 올림픽 복싱에 임애지 오연지 2명만 출전했다. 남자 선수는 없다.
대한체육회는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출전 선수들의 정보를 담은 자료집을 냈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국가대표 143명 전부가 아니라 종목별로 추려 실었는데 복싱 선수로는 오연지가 포함됐다. 오연지가 상대적으로 더 나은 성적을 낼 것으로 본 것이다. 양궁도 남녀 각 3명인 대표팀 가운데 남자는 김우진, 여자는 임시현만 실렸다. 김우진과 임시현은 파리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남녀부 각각 1위를 한 선수다. 국내에서 임애지는 매번 오연지에게 밀리는 2인자였지만 올림픽에선 한국 여자 복싱 선수 최초의 승리를 거두면서 빛났다. 오연지는 이번 대회 첫 판인 32강전에서 패해 탈락했다.
임애지는 올림픽 첫 출전이던 2021년 도쿄 올림픽 때 16강에서 탈락했다. 당시에도 32강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해 16강에 올랐는데 스카이 니컬슨(호주)에게 판정으로 져 8강에는 오르지 못했다. 3년의 시간이 지나 올림픽 8강 무대를 밟는 데 성공한 임애지는 이제 올림픽 메달까지 1승만을 남겨 놓고 있다.
임애지는 2일 오전 4시 4분 예니 아리아스(콜롬비아)를 상대로 한국 여자 복싱 최초의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 임애지는 자신의 8강전 경기가 TV로 생중계돼 팬들이 복싱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파리=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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