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텍스트 힙'(Text Hip)은 과시욕의 산물인가
2023년 영국의 종이책 판매량은 역대 최고 수준인 6억6900만권이었다. 이 기록을 만든 주역은 기성세대가 아닌 놀랍게도 Z세대였다. Z세대는 흔히 20대로 볼 수 있는 젊은층인데 그들이 종이책을 찾은 덕분에 놀라운 책 판매량이 가능했다. 영국에서는 '텍스트 힙'(Text Hip)이라는 말도 유행한다. '활자' 등을 뜻하는 '텍스트'와 '멋지다'는 힙이 결합한 말이다. 즉, 책읽기 등에 관한 콘텐츠가 선호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6월에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은 역대 최고의 방문객 수를 기록했는데 20~30대가 73%를 차지해 이런 사실이 언론을 장식했다. 더구나 30대는 28%였고 20대가 무려 45%에 이르렀다. 젊을수록 종이책을 많이 보는 것이다. 단순히 종이책에 관한 관심이 증가한 것만이 아니라 문학을 향한 관심도 흔히 젊은 세대를 규정하기 쉬운 웹소설의 범위를 벗어났다.
시집 판매량이 늘어나는가 하면 문학 원서구매에서 20대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더군다나 드라마대본집도 불티나게 팔린다. 특히 문학 중에서도 더 읽지 않는 시에 주목한 것은 괄목할 만하다.
이런 종이책에 관한 주목은 SNS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책의 경쟁상대 같은 SNS가 거꾸로 책 판매량을 늘려주고 있다. 2022년 영국출판협회(PA) 조사에 따르면 10대 중반~20대 중반의 젊은 세대 가운데 북톡(책+틱톡)을 통해 책을 산 이가 48%에 이르렀다. 틱톡은 물론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는 책 관련 게시물이 무척 많다. 책의 특정 구절이나 표현을 사진에 담아 공유하기도 하고 책 인증샷을 올린다. 당연히 책을 추천하기도 하고 관련 콘텐츠를 곁들이기도 한다. 시집이 이러한 게시물 때문에 베스셀러에 오르는가 하면 젊은 시인들이 팬덤을 형성해 문단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출판사나 문단이 이러한 흐름에 맞춰 다양한 행사를 마련하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문학의 힘이 젊은층의 SNS에도 나오는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젊은층의 독서 관련 행위들을 과시행위라고 낮춰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진정한 독서가 아니라 멋있게 보이기 위한 장식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한다. SNS를 통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용 책읽기라는 말도 보인다. 일부 이런 지적은 맞는 면이 있다. 책으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심리가 분명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책을 통한 과시행위가 어제오늘 현상은 아니다. 이전 세대에게도 책읽기는 멋지고 폼나는 일이었다. 과거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세계문학전집이나 백과사전의 전질을 구매하기도 했고 대학생들도 문학계간지나 사회과학도서를 끼고 다닌 적이 있다. 얼마나 깊이 읽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책장이 있지 않은 집이 없었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책은 아날로그 시대의 철이 지난 낡은 매체쯤으로 인식됐다.
이렇게 내쳐진 책을 디지털 플랫폼에서 다시 뜨겁게 만든 점은 젊은 세대의 공헌이다. SNS에 아무 책이나 올릴 수 없고 나름 읽어야 한다. 자랑이 목적이라고 해도 좌우지간 책이 가까이 있다면 한 자라도 보게 되고 구매하면 출판 생태계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과시(誇示)라기보다 현시(顯示) 행위라고 부르는 게 적절하다. SNS라는 디지털 수단 자체가 자신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표현 자체를 자만하듯 뽐내는 행위로 폄훼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각 개인의 현시를 통해 담론이 형성되고 여론이 만들어지며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좀 더 진일보할 수 있다. 책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더욱 좋은 콘텐츠를 담아낼 수 있게 된다. '젊은 세대의 SNS 책읽기'의 미흡한 점만 집중하기 전에 그것의 의미는 물론이고 미래의 잠재적 가능성에 더 주목하는 것이 백번 낫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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