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수원 갈빗집과 이천 쌀집의 씁쓸한 연봉 경쟁

이성훈 기자 2024. 8. 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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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SK하이닉스 임금 경쟁
그러라고 세금 지원하는 것 아냐
경영진도 고액 연봉 단맛에 빠져
생활 힘든 서민 ‘눈치’도 봐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로고. /조선일보 DB

삼성전자가 어제 2분기 실적을 확정 발표했다. 반도체 부문(DS)에서 낸 영업이익이 6조4500억원.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 부진으로 자존심이 상했던 삼성전자로서는 모처럼 체면이 섰다. 그런데 경영진의 머리가 좀 복잡할 것 같다. ‘연봉·성과급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에 뭐라고 할까?’

삼성전자 DS 부문이 주축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의 파업을 당사자들만큼 관심 있게 지켜보는 곳이 있다. 경쟁사 SK하이닉스다. 이 둘은 반도체 시장을 두고 맹렬히 다툰다. 회사 아닌 개별 직원 입장에서 그보다 더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임금이다. 그럴 땐 각 회사 소재지에 빗대 상대를 ‘수원 갈빗집(삼성전자)’ ‘이천 쌀집(SK하이닉스)’이라 얕잡아 부른다. 상반기 성과급은 SK하이닉스가 기본급의 150%, 삼성전자 75%. 이천 쌀집의 승리다.

지난달 시작한 전삼노 파업은 ‘창사 이래 처음’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붙었다. 결국엔 이천 쌀집만큼 성과급을 달라는 수원 갈빗집의 요구다. 핵심이 ‘성과급 산출 때 영업이익에서 이자 등을 빼지 말라’는 것인데, 바로 SK하이닉스의 방식이다.

총파업 첫날 6500여 명(노조 추산)이던 현장 참가자 수가 나중에 350여 명 수준으로 줄었다. ‘연봉 상위 4% 노조의 파업’이라는 대중의 비판 때문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여론 눈치를 본 것이 아니라 파업 참가로 못 받게 될 임금이 아까웠다는 것이다. 이번 노사 협상은 31일 최종 결렬됐는데, 노조가 막판에 ‘200만원 상당 쇼핑몰 포인트 지급’ 등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고연봉자도 당연히 파업을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 이익을 나눠달라는 직원들의 요구를 뭐라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생각해 볼 지점은 있다.

작년 초 정부는 반도체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8%로 결정했다. 그때 여론은 글로벌 ‘칩 워’ 상황에서 정부의 반도체 지원이 너무 인색하다고 했다. 결국 정부는 이를 15%로 높였다. 반도체 전쟁에서 이겨 국내 투자와 고용에 기여하라는 주문이었다. 지금 파업을 보며 사람들은 “그때 왜 그랬나” 싶을 것이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앞날이 여유 있어 보이지 않는다. 최근의 반도체 호황은 전 세계적인 AI 붐의 영향이다. 이게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미 미국의 빅테크들은 AI 데이터센터 투자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실적에는 환율 착시 효과도 있다. 삼성전자는 해외 매출 비율이 약 85%, SK하이닉스는 90%를 웃돈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가 원화로 바뀌는 순간 수익이 크게 뛴다. 현재의 비정상적 강(强)달러 현상이 없어진다면?

삼성 노조 주장 중 반박하기 힘든 내용이 있다. “임원들만 수억원 성과급을 챙긴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임원은 3년간의 장기 성과 인센티브, 일반 직원은 작년 적자로 초과이익 성과급(OPI)이 없다”고 한다. 규정은 그렇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이제 국내 최고 경영진 사이에선 수십억 연봉이 흔한 일이 됐다. 이들이 애플의 팀 쿡이나 MS의 사티아 나델라처럼 비전을 제시하고 사업 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쳤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연봉이 많다 보니, 재임 기간 문제를 최대한 안 일으켜 3년 더 연임하며 연봉 챙기는 게 목표처럼 된 듯하다. 고액 연봉이 노(勞)와 사使)가 적당히 ‘화합’하는 매개가 된 것이다.

이를 보는 서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길 바란다. 수원 갈비든 이천 백반이든 마음 놓고 외식하기 힘든 이들은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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