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재 육성과 초격차 기술로 재도약 길로 가자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경쟁이 국가 대항전 양상으로 가열되고 있다. 신냉전·블록화의 최전선에 위치한 데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에 섰다. 우리가 경제·안보 등 다층 복합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의 기회를 만들어내려면 우수 인재 육성과 초격차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1일 창간 64주년을 맞은 서울경제신문이 ‘인재 대탈출-코리아 엑소더스가 온다’ 등의 기획 시리즈 기사를 준비한 이유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대만 등 주요국들은 첨단전략산업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재 및 기술 확보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엔비디아·퀄컴·TSMC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은 정부를 등에 업고 인재 유치전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중국 국가자연과학재단(NSFC)은 ‘젊은 국제 우수 학자 인재 초청’ 프로그램을 가동해 천문학적 규모의 연봉을 제시하며 해외 인재들을 자국 기업으로 끌어모으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지원법에 근거해 연구개발(R&D) 및 인재 양성에 17조 원 이상 투입하는 등 기업의 인재 영입·육성을 전폭 지원하고 있다. 대만은 2021년 매년 1만 명 규모의 반도체 인력 확보를 뒷받침하는 입법화에 나섰다.
삼성과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인재 선점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연봉 수준은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우수 두뇌 영입은커녕 이미 키운 인재의 유출 가속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이공계 경시 풍조와 의대 쏠림 현상이 심해져 갈수록 반도체 인재 가뭄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31년에 국내 반도체 인력이 5만 4000명가량 부족할 것으로 추산된다. 주요 경쟁국들이 전략산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사활을 거는 상황에서 영토가 작고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인재·기술의 경쟁력을 높이지 못한다면 글로벌 정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AI 산업의 급속한 성장으로 글로벌 인재 경쟁은 더욱 격화하고 있다. AI용 반도체 수요 폭증이 예견되면서 미국 내 반도체 인력 수요는 2023년 34만 5000명에서 2030년 46만 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기술자, 컴퓨터 과학자 등이 6만 7000명가량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여파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핵심 인재들이 미국으로 이탈하는 현상이 확산될 것으로 우려된다. 게다가 중국까지 반도체 인력 쟁탈전에 뛰어들면 인재의 해외 엑소더스가 더 심해질 수 있다.
우리 경제는 재도약이냐, 퇴보냐의 기로에 놓여 있다. 국내외 기관들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지난해 2% 밑으로 떨어졌다고 경고했다. 저성장 장기화 위기에 몰린 한국 경제의 미래 성장 동력을 점화하고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세상에 없는 기술’을 개발하고 뛰어난 핵심 인재를 적극 육성해야 한다. 인재와 기술을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려면 취업·연구 환경과 정주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경제·사회 시스템 전반의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고급 인력들이 창의적 연구와 기술 개발에 몰두할 수 있도록 대학과 기업의 환경을 조성하고 노동 개혁과 교육 개혁, 규제 혁파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
첨단산업 분야의 핵심 인력을 키우려면 교육 개혁이 절실하다. 충분한 보상으로 AI·반도체 분야의 최고 권위자들을 국내 이공계 대학의 교수 등으로 모셔올 수 있도록 대학에 시장 친화적인 재정·인사 권한을 대폭 허용해야 한다. 노동 개혁으로 고용 유연성을 확대하고 노사 협력 수준을 높이는 일도 시급하다. 경직된 노동시장은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일자리를 위축시키는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임금·고용 조건 등에 대한 규제가 사라져야 글로벌 고급 인재를 파격적인 대우로 유치할 수 있고, 노사 평화가 정착돼야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기업들이 투자와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서면서 기술 개발의 기반을 닦을 수 있다. 이를 위해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 ‘모래주머니’ 같은 규제 사슬부터 과감히 혁파해야 한다.
국내외 우수 두뇌들이 모여드는 ‘인재 플랫폼 국가’로 만들려면 지속 가능한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하는 부강한 ‘매력국가’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국민 통합과 국력 결집을 통해 구조 개혁을 하고 인재 육성과 기술 개발에 전력을 다해야 경제를 재도약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 여야 정치권은 입법·탄핵 폭주를 둘러싼 정쟁을 멈추고 상식의 정치를 복원해 경제·민생 살리기 입법을 위한 협치의 기반을 다져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결국 국민들과 정치권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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