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김진표의 ‘부동산 반성문’
한 달여 전 출간된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은 ‘윤석열 대통령이 극우 성향 유튜브 방송을 본다’는 의혹으로 뉴스가 됐다. 그걸 부각한 보도가 나왔고, 야당 의원들이 이를 받아 키웠다. 그러자 대통령실은 “김 전 의장이 왜곡했다”며 발끈했고, 여당은 그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이 책 때문에 여럿이 목에 핏대를 세웠는데, 그때마다 인용되는 내용은 책 264쪽에 있는 열 줄 분량의 ‘극우 유튜브’ 에피소드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기자가 읽어봤더니 이 책의 핵심은 180~182쪽에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 전 의장이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한 대목이다. 마흔 두 줄에 이른다. “부동산 문제는 근본적으로 수급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한데 참여정부는 세금으로 단박에 풀려다 보니 실패를 거듭했다. (중략) 20년이 지난 지금도 부동산 정책을 막지 못한 일은 사무치게 후회된다.”
당시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같은 세금 폭탄으로 집값을 때려 잡으려 했지만, 부작용을 낳으며 집값을 오히려 급등시킨 데 대한 자기 반성이다. 경제 관료 출신인 그가 계속해서 말한다. “(내가) 욕을 먹더라도 그때 강하게 주장하고 시정시켰어야 했다. 그랬다면 참여정부는 최소한 경제 영역에서는 훌륭하게 성공한 정부로 마무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핵심은 책 247~250쪽에서 예순네 줄에 걸쳐 반복된다. 문재인 정부를 다룬 대목이다. 그는 문재인 정권이 세금을 강화해 주택 수요를 억제하려 한 것에 대해 “부동산에 이념적으로 접근해 노무현 정권과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고 했다. 이어 “집값을 잡으려는 노력이 집값을 폭등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며 “부동산으로 정권을 두 번 뺏긴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가 ‘정권 재창출’을 못 한 이유가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이었다고 결론 낸 것이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에서 “세금으로 집값을 때려잡자”는 말이 거의 나오지 않는 이유는, 김 전 의장이 고백한 교훈을 민주당이 어느 정도 학습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는 최근 “종부세를 완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중산층 표를 의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치인이 민심을 신경 쓰는 건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 전 의장의 회고록 출간은 민주당의 부동산 정책이 노무현·문재인 정부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 혹은 바뀌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논의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야권에 장기적으로 득이 되고, 현재 집값 대응책을 고심 중인 정부와 여당도 반면교사를 삼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본질을 벗어난 신경전 때문에 이에 대한 생산적 논의는 설 자리가 없었다. 정치가 ‘말싸움’이 아닌 ‘정책 싸움’이기를 원하는 바람은 언제쯤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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