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아들의 뇌경색과 부모의 죄책감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2024. 8. 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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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신고자는 어머니였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한동안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방문을 열자 침대 위의 아들은 의식이 없었다. 그는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왔다.

중환 구역의 환자는 눈을 벌겋게 뜨고 있었다.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고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약 봉지나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뇌졸중이 확실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특별한 질환은 없다고 했다. 언제 마지막으로 멀쩡한 모습을 보았냐는 질문에는 머뭇거렸다. “그저께였던가, 서로 출퇴근 시간이 달라서요.”

질환을 파악하고 치료 방침을 정해야 했다. 뇌출혈 아니면 뇌경색이었다. 뇌출혈은 혈관이 터진 것이고 뇌경색은 혈관이 막힌 것이다. 어느 쪽이든 상태는 좋지 않았다. 숨을 가쁘게 쉬는 환자의 기도를 확보하고 두부 CT를 찍었다. 뇌출혈이 없었다. 중증 뇌경색이었다.

혈전 용해제를 시도해 볼 수 있었다. 발병 후 여섯 시간 안에만 유효한 치료였다. 환자가 의식을 잃은 시점을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스마트폰이 있었다. 지문 인식기에 그의 손가락을 비볐다. 불과 두 시간 전까지 메시지를 보낸 기록이 있었다. 치료가 유효하다는 결정적 근거였다. 혈전 용해제를 사용하고 응급 MRI를 찍었다. 의료진에게 절망감을 안기는 뇌경색이 확인됐다.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신경학적 검사도 호전이 없었다. 이미 뇌간까지 손상된 탓이었다. 혈전 제거술을 해야 했다. 혈전을 직접 제거하면 나이가 젊어서 호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흡기를 조정하고 동공 반사를 확인했다. 모든 징후가 나빠지고 있었다. 뒤늦게 아버지가 도착했다. 쓰러진 직후 연락을 받고 온 듯했다. 부부는 중환 구역으로 들어왔다.

“젊은 나이에 발생하기에는 드문 뇌경색입니다. 호흡과 의식이 떨어져서 사망 가능성이 높습니다. 혈전 제거술을 하고 중환자실로 입원시키겠습니다.”

그들은 먼발치에서 서성댔다. 마치 외면하듯 환자 곁으로 오지 않다가 대기실로 돌아갔다. 보호자를 다시 불렀다.

“아드님이 여기 있는데, 어디 가세요.”

“… 미안해서.”

“미안할 일이 있었나요?”

아버지는 침울하게 대답했다.

“아뇨. 정말 미안해서. 저희 집은 돈 버는 기숙사 같았어요. 저는 직장이 지방이고 딸도 다른 지방에서 일해요. 애 엄마는 밥만 차려놓고 아침부터 일하러 나갔어요. 아들은 물류 일을 하느라 밤낮이 없었어요. 저는 집에 못 들어가서 평소에는 얼굴도 못 봤어요. 독감으로 끙끙 앓다가 간신히 일하러 나갔다고 들었는데, 이제 와서 볼 면목이 없어요. 내가 조금 더 챙겨줘야 했는데….”

“보호자분.”

“네.”

“혈전 용해술은 여섯 시간, 제거술은 스물네 시간까지 효과가 있습니다. 늦지 않은 겁니다. 사람이 독감에 걸리는 일은 피할 수 없습니다. 경중은 있지만 과로와 스트레스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둘 다 뇌졸중에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막상 모두에게 동등한 요인입니다.”

“….”

“이런 질병은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특히 부모가 챙겨주는 일은 어떤 인과관계도 없습니다. 물론 부모님 마음을 이해하지만, 없는 것은 없는 겁니다. 막을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었습니다. 아드님 나이가 젊습니다. 최선의 치료도 진행 중입니다. 지금은 의식이 없지만, 본인은 잘 이겨내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번에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시면 됩니다.”

일부러 그를 노려보고 말했다. 그러나 부모는 끝까지 아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시술실로 향하는 환자의 예후가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그들에겐 길고 긴 삶이 남아 있었다. 어떤 불행의 순간은 끝없이 해석되고 분석되고 재생된다. 그 찰나를 사람들은 회귀하듯 다시 살아가야 한다. 부모가 책임을 완전히 소거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단호해야 한다. 미래의 복기까지 예견해서 행여나 있을 죄책감을 덜어야 한다. 내게는 찰나지만 그들에게는 영원할 순간이다.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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