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올림픽까지… 당신에게 마라탕은 무엇인가
매운맛의 몽롱한 기쁨, ‘매운 존재’ 되겠다는 心身 요청일까
담백한 맛으로 감당하기에 대한민국은 고강도 고자극 사회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사격으로 금메달을 딴 여고생 선수도, 역시 사격으로 금메달을 딴 성인 여성 선수도 마라탕이 먹고 싶다고 했다. 수상 소감에 마라탕이라니! 그 말이 나에게만 훅 들어온 게 아닐까 했지만 낭보를 전하는 많은 언론사가 ‘마라탕’을 헤드라인으로 뽑은 걸 보았다. 마라탕 전성시대구나 싶었다. 마라탕이 유행하기 시작한 지 꽤나 오래인데 여전히 인기가 있고, 인기가 식기는커녕 더 세를 불려 가는 느낌이다. 변화가 빠른 한국 사회에서 이토록 오래 지속되는 유행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런데 단지 유행이 아니라 현상이며 열풍 같아서 ‘대체 마라가 뭐길래’라며 지금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중학생 아이가 있는 선배가 말했던 게 떠올랐다. 우리 때 떡볶이가 요즘 애들에게는 마라탕이라며, 요즘 애들은 거의 마라탕에 미쳐 있다는 말이었다. 아이가 밥은 안 먹고 쿠팡이츠와 배민으로 내내 마라탕만 시켜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뭐를 먹겠냐고 묻는 게 의미가 없다고 했다. 친구와도 마라탕 집에서 만난다고 했다. 아이의 몸에 피 대신 마라가 흐를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마라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어떻게 하면 내내 생각나게 할 수 있는 것인가. 대체 마라의 매력이 뭐길래? 그래서 마라탕을 먹으러 갔다.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하자 선배가 아이의 단골집으로 인도했던 것이다. 일단 바구니를 들었다. 매콤 어묵, 크림 피시볼, 만두, 분모자, 치즈 떡, 숙주, 배추, 청경채, 쑥갓, 미나리, 메추리알, 새우, 주꾸미, 죽순, 유부, 푸주, 목이버섯, 팽이버섯… 여기에 적은 것보다 훨씬 많은 재료가 쇼케이스에 있었다. 소분되어 포장된 재료를 바구니에 골라 담는 시스템이었다. 그렇게 채집한 바구니를 계산대로 가져가 매운맛의 단계를 정하고, 옥수수면과 당면 중에 면을 고르고, 양고기와 소고기 중에서 선택했다.
마라탕은 맛있었다. 하지만 왜 그토록 중독적이라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마라탕 집은 간이 슴슴하고 마라 맛이 강하지 않은 데다 내가 매운맛을 1단계로 선택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마라탕에 절여진다는 감각이 없었다. 나는 식당을 꽉 채운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다. 대체 왜 그렇게 마라탕을 좋아하느냐고 말이다. 일주일에 몇 번을 먹나 묻고 싶었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마라탕만 있는 게 아니지 않으냐고, 대체 마라탕의 어떤 면에 중독되는지 말이다. 화끈해서? 얼얼해서? 정신이 나서? 땀이 솟구쳐서? 고자극이어서?
매운맛에 얼얼한 맛을 더한 게 마라다. ‘얼얼한 맛’의 ‘마(麻)’와 ‘매운맛’의 ‘라(辣)’가 바로 마라. 얼얼한 맛을 내는 원천은 초피로, 화자오라고도 하고 영어로는 쓰촨 페퍼다. 이름이 말해주듯이 초피의 원산지는 쓰촨으로, 맵고 얼얼한 것으로 유명한 쓰촨 음식의 특성은 초피에서 왔다. “초피의 ‘마’는 마취(痲醉)의 ‘마’다. 전기 마취와 닮은 자극이 뇌와 혀 사이를 잇는 회로를 엮어 미각을 예민하게 하는 추론도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혁명의 맛(가쓰미 요이치·임정은 옮김·2015)’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의 헤드 카피는 이것이다. “매운 것을 먹지 않으면 혁명을 할 수 없다.” 마오쩌둥이 한 말이다. 후난 출신 마오쩌둥은 매우면 매울수록 좋다고 요리사에게 요청했고, 매끼 고추를 먹었다. 습도가 높은 산간 지역인 후난이 매운맛의 땅이라면 쓰촨은 맵고 얼얼한 맛의 본고장으로, 덩샤오핑의 고향이다. 마오쩌둥이 집권한 때부터 중국 요리가 매워졌는데 덩샤오핑의 시대에는 더 맵고 얼얼해졌다고 작가는 쓰고 있다. 덩샤오핑 시대의 매움은 단순한 매움이 아니라 땀과 눈물이 솟구치고 의식이 몽롱해질 만큼의 매움이었다고.
매운맛이 주는 몽롱한 기쁨에 대해서라면 나도 안다. 마라 중독은 모르지만 매운맛에 중독된 적이 있던 나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먹다 보면 반응이 온다. 혀로 오기도 하고, 뇌로 오기도 하고, 입술로 오기도 한다. 짜릿한 고통이다. 기이한 고통. 맵고 힘든데, 그게 뭐라고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고, ‘자, 해보자!’라면서 스스로를 독려하고, 결국은 이겨내서 기쁨을 얻어낼 때의 스스로가 자랑스럽다.(’우리는 가끔 외롭지만 따뜻한 수프로도 행복해지니까’·2021)” 매운맛으로는 안 된다, 더 맵고 싶다, 실존적으로 맵고 싶다, 라는 열렬한 심신의 요청이 마라탕 중독으로 이끄는 게 아닌가 싶다.
담백하고 슴슴한 음식으로 감당하기에는 이 사회가 너무 고강도 고자극이라서? 여러분에게 마라탕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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