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의 이제는 국가유산] [7] 붉은 꽃 내린 담양 명옥헌
설핏 잠들다 깨어도 그저 꿈결이지 싶은 곳. 이즈음의 명승 ‘담양 명옥헌 원림’이 그러하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들러보니, 빗소리에 옥구슬 부딪치듯 흐르는 물소리 아득하고, 색 깊어진 배롱나무 붉은 꽃잎이 무리 지어 연못과 정자를 품고 있다. 붉은 꽃 내린 한여름의 명옥헌은 찬란하다.
배롱나무는 백 일 가까이 붉은 꽃을 피워 목백일홍으로도 불린다. 그렇게 ‘백일홍나무’가 ‘배기롱나무’라 불리다 ‘배롱나무’가 되었다고도 한다.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무색하다. 하지만, 붉은 꽃만 피는 것도 아니요, 한 송이만 내내 피는 것도 물론 아니다. 가지 끝 원추 모양 꽃차례에 작은 꽃들이 이어가며 석 달 열흘가량 피고 진다.
배롱나무 붉은 꽃이 만발한 아담한 산자락,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린 곳에 살포시 명옥헌 원림이 자리하고 있다. ‘명옥헌(鳴玉軒)’은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는 청아한 물소리가 옥구슬 울리는 소리 같아 불린 이름이다. 계류 옆 세월의 더께를 이끼로 두른 작은 바위엔 ‘명옥헌 계축’이라 새겨져 있다. 집안과 인연 있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라 전해지며 그 흔적은 명옥헌 현판으로도 올려져 있다.
명옥헌은 오이정이 일찍 세상을 뜬 아버지 명곡(明谷) ‘오희도(1583~1623)’를 기린 곳이다. 세상사를 잊고자 담양 후산마을에 은거한 오희도는 ‘망재’라 이름 지은 곳에서 책을 벗 삼아 노모를 모시며 ‘명곡 효자’로 불리며 지냈다. 아들 오이정과 후손들은 선대를 기리며 대대손손 효의 마음으로 명옥헌 원림을 가꾼 것으로 전해진다.
명옥헌 원림은 산의 중턱 기슭에 위치하여 계류를 자연스레 끼고 있다. 물줄기가 위쪽 작은 연못에도 흘러가고, 아래 큰 연못으로 모이는데 연못은 각각 섬을 품고 있다. 가운데 방을 두고 사방에 마루를 놓은 명옥헌에 올라 동서남북 모든 풍경을 들이는 것도 특별하다.
배롱나무꽃이 찬란한 지금도 좋지만, 지긋하게 자연을 품은 고고한 아름다움을 늘 만날 수 있다. 명옥헌에서 돌아와도 그 모습을 떠올리면 사방 어디선가 꽃바람이 부는 듯하다. 짙게 드리워진 꽃 그림자에 마음을 실어 보내며 슬며시 눈을 감는다.
'붉은색 배롱꽃의 향연, 담양 명옥헌원림', 국가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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