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땀 한땀 바늘과 실이 다녀간 시간…규방 넘어선 자수
[앵커]
흔히들 자수하면 조선시대 양반집 여인들이 규방에 모여 바느질하는 모습을 떠올리죠?
전통공예 혹은 산업공예 정도로 인식되던 자수가 이제는 바느질 한땀 한땀이 만들어내는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서형석 기자입니다.
[기자]
수백, 수천 번 바늘과 실이 다녀간 단련의 시간.
사치를 멀리했던 조선시대에도 노리개부터 주머니 같은 작은 소품이나 각종 살림도구는 자수로 화려함을 뽐냈습니다.
원색 강렬한 꽃과 산수는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빌었던 당시 여인들의 마음이 녹아 있는데, 일제강점기로 들어서 여성의 교육, 근대화와 맞물린 자수는 '현모양처'에게 부가된 노동 중 하나로 자리를 잡으며 주로 감상 만을 위한 '그림 같은 자수'가 주를 이뤘습니다.
광복 후 국가 재건과 전통 복원, 현대화의 과제가 뒤엉켰던 시대 속에 자수는 또 한 번 변신합니다.
<박혜성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새는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멀리서 보신다면 이 새가 날아가는 듯한 속도감을 느끼실 수가 있고요. 이 실 한올 한올 한땀 한땀이 마치 새 깃털처럼 표현이 돼서 그 추상이면서도 회화와 다른 효과…"
6·25 전쟁과 국가 산업화 과정을 겪으며 외화벌이를 위한 산업공예로써 자수에 치중하기도 했지만, 요란했던 현대사 속에 뿜어져 나온 장인들의 예술혼은 멈추지 않았던 겁니다.
<박혜성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추상화는 한 획 일필휘지로 그을 수 있지만 추상 자수는 그렇게 보이더라도 정말 무수한 몇 천, 몇 만 땀이 이루어져야 한 획이 그어지거든요."
바늘과 색색의 실이 다녀간 시간을 한 폭의 그림처럼 녹여내며 우리나라 예술사에 작은 한 땀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다음 달 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립니다.
연합뉴스TV 서형석입니다. codealpha@yna.co.kr
영상취재기자 : 황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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