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정보 유출로 드러난 대공수사 난맥상
언론에 알려지며 공개수사 전환
진상규명 제대로 될지 못내 우려
법 보완, 간첩죄 대상국 확대해야
손자병법의 마지막편은 ‘용간’(用間)이다. 간첩과 첩자를 이용한 활동을 일컫는다. 첩보원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는 것을 최선으로 삼는다. 이런 용간이 한순간에 국가의 운명을 바꾼 사례는 부지기수다. 현대의 첩보전은 정보의 수집, 분석과 사실 판단, 기만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어느 하나가 부실해도 전투에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래서 첩보 조직은 전문성을 지향하고, 정치적 외풍을 경계한다.
짚어야 할 것은 또 있다. 군사법원은 지난달 30일 이런 다수의 기밀을 중국 동포에게 유출한 혐의를 받는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기밀 유출 혐의가 적용됐다. 간첩죄 적용이 가능한 국가보안법 혐의는 빠졌다. 이는 북한과의 연계성을 찾지 못했다는 의미다. 군 수사당국이 정보유출 사실을 확인한 것은 지난 6월. 바꿔 말하면 A씨 조력자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일부러 잡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군 관계자는 “간첩 잡는 대공 수사의 기본은 조용히 수사를 진행해 대상을 일망타진하는 것”이라며 “그러려면 은밀하게 덫을 놓고 기다려야 한다. 1년도 좋고, 2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며 수사가 꼬였다. 결국 공개수사로 전환해 사흘 만에 영장이 청구됐다. A씨만 ‘추궁하는’ 수사가 된 셈이다. 사건 관련자들은 이미 다 도주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얼마 전 미국 연방검찰의 한국계 북한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 기소 과정에서 드러난 국가정보원의 허술한 정보 수집활동과 다를 바 없다. 말 그대로 ‘정보 참사’다.
보안 유지가 필요한 첩보 유출 사건인데도 보도유예조치(엠바고) 등을 사전에 조율 못한 국방부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언론 친화적인’ 신원식 국방부 장관의 성향을 고려할 때 납득이 쉽지 않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약 국방부가 이번 사건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더 큰 문제다. 최근 정보사 내에서 대북 휴민트(HUMINT·인적정보) 수집 업무를 맡고 있는 여단장(준장)이 상급자인 정보사령관(소장)에게 폭언하는 항명사건도 빚어진 마당이다. 부대 내 기강 해이가 도를 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정보 유출까지 빚어졌으니 윗선 보고가 제대로 됐을 리 있겠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진상규명이 될지 못내 걱정이다.
더구나 군형법상 간첩죄는 ‘적’(북한)에게 군사상 기밀을 누설한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북한 이외 국가에서 기밀을 빼가도 간첩죄로 처벌할 구실이 없다. 간첩죄 대상을 확대하는 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탓이다. 2018년 정보사 공작팀장이 각종 기밀을 건당 100만원에 중국과 일본 첩보 요원에 팔아넘기다 적발됐지만 고작 실형 4년을 살고는 출소했다. 마찬가지로 A씨에게도 간첩죄를 적용하지 못했다. 기밀을 넘겨 받은 이가 중국 국적이라서다. 사건이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관련 법을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70년 넘게 대치 중인 남북이고, 첩보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첩보를 소홀히 한 나라는 역사의 뒷전이 되기 일쑤였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정치권이 각성해야 한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일이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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