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3A.M.] 축구협회와 양궁협회의 모멘텀
찬사받는 정의선 양궁협회장 행보와 대조적
정 협회장의 책 ‘축구의 시대’에는 ‘정몽규 축구 30년’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그가 축구에 얼마나 진심인지 설명하려는 책이다. K리그 3개 팀 구단주, 프로축구연맹 총재에 이어 2013년부터 축구협회장을 맡고 있다. 어쨌든 축구를 향한 그의 30년 애정과 철학을 폄훼할 필요는 없겠다. 그의 주장에 대한 평가와 논쟁은 독자의 몫이다.
그런데 타이밍이 단단히 어긋났다. 책을 출간한 출판사는 “어쩌면 이 책은 그동안 정몽규 회장을 둘러싼 오해와 논란에 대해 답하는 최초의 ‘오피셜 코멘트’일 수도 있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책임 있는 오피셜 코멘트는 최소한 지난 2월 클린스만 경질과 선수단 불화 사건부터 임시감독 선임과 올림픽 진출 실패, 이달 홍명보 감독 선임 논란으로 협회에 대한 불신이 정점을 찍던 순간 사이 그 어디쯤 있어야 했다.
정 협회장의 책이 정식 발간되기 전날인 29일에는 홍 감독이 취임 기자회견을 가졌다. 협회의 감독 선임 절차에 문제가 있었는지 기초 조사를 해오던 문화체육관광부도 이날 현장감사에 돌입했다. 17일부터 시작된 국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축구협회 감사 및 해체를 요청하는 청원은 지난 28일 소관 상임위 심의요건인 5만명을 넘겼다. 정 협회장은 리더가 있어야 할 시간에 있지 않았다. 그런 그가 지금 자신의 진정성을 입증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4선 연임 목적이라는 의심만 더해졌다.
모멘텀이란 눈에 뚜렷이 보이지 않고 계량되기도 어렵지만 일련의 순간이 모여 강력한 힘을 내는 기세와 같은 것이다. ‘빅 모(Big Mo)’라고 불리는 긍정적 모멘텀에 잘 올라타는 일과 더불어 부정적 모멘텀에 말리지 않고 때를 고르는 일도 중요하다. 정치 전략가 스콧 밀러는 저서 ‘리더십 캠페인’에서 “모멘텀을 도모하는 일은 그 자체로 쉽고,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정의선 양궁협회장은 파리 올림픽에서 최고의 시간을 맞았다. 양궁 대표팀을 향한 응원 메시지를 보내고 대표팀을 챙기기 위해 직접 파리로 갔다. 여자 대표팀이 단체전 금메달을 따면서 올림픽 10연패를 달성하는 순간 정 협회장은 시상자로 깜짝 등장했다. 평소 잘 하지 않는 언론 인터뷰에도 응해 “선수들이 워낙 잘해서 묻어가고 있다. 제가 운이 좋은 것 같다. 할 수 있는 것은 뒤에서 다하겠다”며 공을 돌렸다.
그리고 단체전 금메달 소식과 함께 현대차와 정의선 회장의 양궁 뒷바라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삼계탕 뚝배기까지 공수해서 선수들 식단을 챙기는 일화부터, 앵발리드 경기장과 똑같이 연습시설을 만들고 기술을 동원해 슈팅로봇을 만든 얘기까지 구체적이고 생생한 스토리들이 알려졌다. 경기 직전에는 양궁 협회가 얼마나 혹독하고 투명하게 대표 선수를 선발하고 철저하게 훈련시키는지를 다룬 다큐도 나왔다. 사전에 잘 준비된 콘텐츠들이 올림픽 10연패라는 모멘텀에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대를 이은 현대차의 양궁 후원 얘기는 사실 4년마다 되풀이되지만 올림픽은 언제나 흡인 효과가 대단하다. 축구팬들은 정의선 회장에게 ‘축구협회도 맡아달라’고 하고 있다. 양궁협회의 ‘빅 모’가 축구협회의 부정적 모멘텀을 더 키우는 상황이 됐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의 책은 이런 시간에 나왔다.
이인숙 플랫폼9와4분의3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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