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수장, 이란 심장부서 피살...하메네이 “복수는 우리 임무”
하마스 “배후는 이스라엘” 보복 예고
이스라엘과 열 달 가까이 전쟁을 벌여온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무장 단체 하마스의 최고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62)가 31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됐다고 하마스와 이란 정부가 발표했다. 카타르에서 은신해 온 것으로 알려진 그는 전날 열린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차 테헤란에 머물고 있었다. 구체적인 공격 방식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현지 언론들은 미사일로 추정되는 공중 발사체가 하니예의 거처를 타격해 그와 경호원들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하마스와 이란은 이스라엘을 하니예의 암살 배후로 지목했다. 하니예는 하마스의 가자지구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와 함께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습격 배후로 꼽히는 인물이다. 당시 하마스 공격으로 이스라엘인 1400여 명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가자지구로 납치돼 끌려갔다. 이스라엘이 이에 보복 공격을 개시하며 전쟁이 시작됐고,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에 직접 진입해 격전을 벌여왔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적대 세력인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등이 이스라엘 공격에 가세하며 전선이 확대됐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최대 앙숙이면서 하마스·헤즈볼라·후티의 후원세력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침묵하고 있다. 하마스는 “우리 지도자 하니예를 급습해 순교케 한 시온주의자(유대인)들을 용서치 않겠다”며 보복을 천명했다.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도 “이스라엘이 비겁한 살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민간인 사상자 속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에 아랑곳없이 10개월째 하마스 격퇴전을 강행했지만, 물밑에선 미국과 카타르 등의 중재로 휴전 협상에 대한 논의를 해왔다. 그러나 전쟁과 휴전 협상의 한 축인 하마스 수장의 암살로 향후 중동 정세가 더 큰 격랑에 휩쓸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31일 오전 테헤란 북부의 숙소에 머물고 있던 이스마일 하니예를 겨냥한 공격으로 그와 그를 보호하던 이란 측 경호원들이 사망했다. 자세한 공습방식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현지 언론들은 미사일 등을 활용한 공습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란 관영 누르 뉴스 등은 “이날 새벽 이란 외부에서 날아온 ‘공중 발사체’가 하니예의 숙소를 타격했다”고, 레바논의 친헤즈볼라 매체 마야딘은 “하니예가 미사일 공습으로 암살됐다”고 전했다.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그가 머물고 있던 건물이 공격을 받았다”며 총격이 아닌 폭발로 암살됐음을 시사했다.
하마스는 전날 테헤란의 이란 의회에서 열린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고, 페제시키안과 따로 만나 양측의 협력 방안도 논의했다. 하니예는 이스라엘의 추적을 피해 2019년경부터 하마스의 본거지 가자지구를 떠나 인근 튀르키예나 카타르 등 이슬람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은신해왔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본격화된 지난해부터는 줄곧 카타르에 머물렀으며, 보안이 삼엄한 특급 호텔에 거처를 마련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군의 거센 공세에 하마스가 가자 지구 내 주요 교두보를 상실하고, 핵심 지휘관들이 잇따라 사망하자 중재국을 통한 이스라엘과 휴전 협상을 지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하니예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10개월째 이어진 전쟁으로 하마스의 지휘 계통이 대부분 무너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지도부를 하나하나 제거하는 데 성공하면서 하마스가 더욱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한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총리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하니예는 2007년 온건파가 주도하는 자치정부에서 이탈한 뒤 하마스의 최고 정치 지도자가 됐다. 하마스는 이후 “이스라엘을 완전히 패망시킨다”는 노선을 확고히 하며 인명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이스라엘과 무장 투쟁을 고수해 왔다.
이런 와중에 하마스는 지난해 10월 7일 전례 없는 규모의 이스라엘 공격을 강행했다. ‘알 아크사(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 홍수’라는 작전명으로 일요일 새벽 로켓 5000발을 퍼붓고 오토바이와 낙하산 등을 타고 월경, 집단 농장과 음악 축제장 등을 급습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관과 아이언 돔 등 첨단 방어체계가 무색하게 일격을 당한 이스라엘은 이후 모사드(해외정보기관)와 신베트(국내정보기관) 등을 총동원해 하니예와 야히야 신와르 등 하마스 지도자들의 제거 작전을 준비해왔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직접 “하마스 군사·정치 지도자들을 제거하는 것이 전쟁의 주요 목표”라며 “그들이 세계 어디에 있든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에 대해 앞으로도 계속 침묵할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은 이미 1970년대부터 이란과 중동,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반이스라엘 인사를 암살해 온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2008년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벌어진 헤즈볼라 군사 지도자 이마드 무그니야의 폭사, 2010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발생한 하마스 고위 간부 마흐무드 알 마부흐 독살, 또 지난 10여 년간 이란의 여러 핵과학자들의 암살 사건 등이 모두 이스라엘의 소행으로 추정되지만 이스라엘은 한 번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한 적이 없다.
이번 공격은 하마스와 연대해온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예멘의 후티, 또 이들을 ‘저항의 축’이라고 부르며 전폭적으로 지원해 온 이란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로도 해석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이란 현지 매체들은 “하니예는 이날 하마스와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고위 관계자들과 함께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눴고, 이후 저항의 축을 주제로 한 전시회에도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이들 모두가 ‘표적’이 됐을 수 있었던 셈이다.
사건의 향후 파장은 이란의 대응에 따라 정해질 전망이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상대방을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최대 위협으로 간주하면서도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은 피해왔다. 그러나 지난 4월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직원들이 사망하자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향해 드론과 미사일을 대거 발사했고, 다시 이스라엘이 이란 중부 아스파한을 공습하며 처음으로 무력으로 충돌했다. 이후 양측은 확전을 피하기 위해 공습 범위와 규모를 제한하는 등 상황을 관리하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번 하니예 암살은 자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러 온 귀빈을 암살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을 겨냥한 이란의 강도 높은 보복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이스라엘이 가혹한 처벌을 받는 상황을 자초했다. 하니예를 위한 복수는 우리의 의무”라고 말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수석 대변인은 이날 “우리 군은 모든 시나리오에 완벽하게 대비하고 있으나, 더 큰 전쟁 없이 적대 행위를 해결하는 것을 선호한다”며 확전을 원치 않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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