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수장 하니예, 이란 대통령 취임식 참석 후 피살

선명수 기자 2024. 7. 3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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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축’ 지도자 모인 테헤란서
“이스라엘 급습에 경호원과 사망”
헤즈볼라 거점도 보복 공습 당해
이란 하메네이 “가혹한 징벌 자초”
완파된 건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외곽의 한 건물이 30일 밤(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완파돼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번 작전으로 지난 27일 골란고원 축구장 공격을 주도한 헤즈볼라 고위 지휘관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이란을 주축으로 한 이른바 ‘저항의 축’과 이스라엘 간 갈등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란이 자국 대통령 취임식을 계기로 친이란 대리 세력인 ‘저항의 축’ 무장단체들과의 단결을 과시하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가 이란 심장부에서 암살됐다. 취임식 당일에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가 이스라엘 공격을 받았다. 하마스 내 ‘협상파’ 지도자의 피살로 가자지구 휴전 협상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31일(현지시간) 하마스는 정치국 최고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62·사진)가 이날 오전 2시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이스라엘의 급습으로 살해됐다고 밝혔다. 하니예는 전날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신임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테헤란을 방문 중이었다. 이란혁명수비대도 하니예가 숙소에서 경호원과 함께 암살됐다고 확인했다. 이스라엘이 앙숙인 이란 영토를 직접 공격한 것은 지난 4월19일 이후 처음이지만 이스라엘군은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

하니예는 가자지구 군사조직 수장으로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주도한 야히야 신와르와 함께 하마스를 이끌어온 양대 축으로 꼽혀왔다. 최근 몇년간 카타르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하마스의 외교전에 핵심 역할을 해왔다. 1987년 1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 때 하마스에 합류한 그는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의 대승을 이끌며 총리직에 올랐으나, 이후 선거 결과를 놓고 하마스와 파타(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주도하는 정당)가 갈등을 빚으며 해임됐다. 이듬해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파타를 축출하며 하마스 지도자 자리에 오른 그는 2017년 2월 가자지구 지도자 자리를 신와르에게 넘기고 같은 해 5월 하마스 정치국장으로 선출됐고, 카타르와 튀르키예를 오가며 망명 생활을 해왔다.

암살 전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모습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30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국회에서 열린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숨진 하니예, 망명 생활 하며 이스라엘과의 휴전협상 주도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이후에는 이집트, 카타르, 미국이 중재하는 이스라엘과의 휴전 협상에 참여했다. 지난 4월 휴전 협상 시 자녀 13명 중 아들 3명과 손주 4명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사망했을 때 그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내 아들과 손주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하마스가 입장을 바꿀 것이라고 믿는다면 망상”이라고 이스라엘에 경고했다. 지난 5월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이스라엘 공격 당시 민간인 다수를 살해하고 납치한 혐의로 하니예, 신와르, 알카삼 여단을 이끄는 모함메드 데이프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이란이 대통령 취임식을 계기로 중동지역 내 친이란 무장세력과의 단결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던 상황에서 수도가 공격받은 것은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암살 장소가 이란 수도 테헤란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고 짚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해 10월 하마스와 전쟁을 시작한 후 하니예를 표적으로 삼아왔으나, 하니예 등 하마스 정치국 인사들이 본거지로 활동해온 카타르는 단 한 차례도 공격하지 않았다. 하니예가 이란을 공개적으로 찾은 날 그를 암살한 것이다.

이날 취임식에는 하니예를 비롯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2인자인 셰이크 나임 카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이슬라믹지하드의 지도자 지야드 알나카라, 예멘 후티 반군의 대변인 무함마드 압둘살람 등 ‘저항의 축’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하니예는 취임식에 앞서 아야톨라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개별 면담을 하는 등 연대를 과시했다.

하메네이는 성명에서 “범죄자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이 우리 손님을 순교하게 했다. 그들이 가혹한 징벌을 자초했다. 그의 피 값을 치르는 것을 우리 의무로 여겨야 한다”며 보복을 지시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도 엑스에 글을 올려 “테러리스트 점령자(이스라엘)가 자신의 비겁한 행동을 후회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이스라엘은 취임식 당일 밤 레바논 베이루트를 공습해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오른팔’ 격인 작전 고문이자 지난 27일 골란고원 축구장 공격을 주도한 푸아드 슈크르를 제거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이 불과 몇시간 간격으로 친이란 무장세력의 최고위급 지도자들을 연이어 암살하면서 확전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키는 이란이 쥔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하니예 암살에 대응하기 위해 이날 최고지도자 자택에서 최고국가안보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혁명수비대 고위급 인사는 “이란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하마스도 보복을 다짐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지난 4월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한 뒤 상대방 영토를 향한 공격을 주고받았지만 군사 거점을 겨냥한 ‘제한적 타격’으로 수위를 조절하는 듯했다. 이스라엘이 이번에도 확전을 피하기 위해 제한적인 대응 조치만 취할 것이란 관측과 달리, 레바논 수도를 타격하고 이란 영토까지 공격하면서 중동 정세는 시계 제로 상황에 놓였다. 미국 압박으로 재개된 가자지구 휴전 협상도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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