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디지털 교과서 정책이 말하지 않는 사실
교육부가 내년 전면 도입을 목표로 내건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교육 전문가들은 최소한 속도라도 늦추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교육부는 좀처럼 수용하려고 들지 않는다. 일방적인 의대 정원 증원이 몰고온 파장만큼이나 이번 디지털 교과서 정책의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듯하다.
이 사업의 핵심은 2025학년도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의 영어·수학·정보 과목에 디지털 교과서를 적용하고, 이를 통해 인공지능을 활용한 학생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화려한 수사들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에는 몇 가지 깊은 검토가 필요한 문제들이 있다.
첫째, 교육부가 말하는 인공지능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GPT 등 거대언어모델(LLM)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단순한 논리에 기반한다. 즉 학생들의 문제풀이 행동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축적하고, 그로부터 추출되는 알고리즘을 통해 학생들의 오답 패턴을 예측하고 오답률을 줄여가려는 것이다. 그런데 오답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수업은 당연히 수많은 정답 찾기 문제풀이의 반복일 수밖에 없다. 실제 이번 여름 수행된 선도교사 연수에서 활용된 프로토타입도 대부분 문제풀이와 그 오답 분석 과정으로 채워져 있었다.
사실 오답률이란 근대 공장제 체계에서 표준화된 생산품의 불량률을 점검하던 방식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답률을 중심에 둔 교육은 교육을 정답을 향한 폐쇄적 지식체계 전수과정으로 보고, 학교를 불량률(오답률)을 줄이는 표준화 지식생산기지로 이해한다. 이런 관점은 우리가 지향하는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미래교육의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미래교육의 핵심은 문제풀이를 넘어 창의력과 비판적 능력 등을 포함한 “답 없는 질문들”을 다루는 일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정답주의-객관식 시험-수능-서열화-학력사회로 연결되는 쳇바퀴에만 머물러 있다.
둘째, 디지털 교과서 개발 과정에 참여하는 에듀테크들이 주로 사교육 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구축한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하고 있으며, 프로토콜을 개발하는 초기 단계에서 교육 전문가나 학교 교사들의 참여는 거의 없었다. 그 결과, 사교육 시장의 학습 관리 방법이 별다른 거름 장치 없이 ‘디지털 교과서’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들어오게 되며, 학생들은 마치 공장 노동자들의 과학적 행동관리 방식인 테일러리즘을 연상시키는 시험 중심 학습관리장치들에 의해 관리받게 된다. 시험 점수 향상을 위해 이미 학원가에서는 이런 기능을 탑재한 학습기제들이 사용되고 있는데, 주로 문제풀이 과정을 관리하며, 오답 관리 기능을 제공하고, 전용 앱 대시보드에서 자동 채점, 풀이 기록, 필기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기능들이 탑재되어 있다. 교육부가 강조하는 ‘맞춤형 교육’의 실제가 대체로 이런 것이다.
셋째, 이번 디지털 교과서 사업은 그 ‘교육적 효과’ 여부를 떠나 에듀테크-사교육 산업의 시장가치와 산업 생태계를 확장시킬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인 이주호 장관이 기대하는 디지털 교과서 사업의 주요 효과일지도 모른다. 이미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소식이 에듀테크 시장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거나 “에듀테크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다”는 전망이 시장에 나돌고 있다. 한국의 에듀테크 산업이 성장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이것이 공공성과 교육적 가치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지 제대로 된 검토와 성찰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에듀테크 산업을 키운다고 하면서 그 대가로 정작 학생들을 폐쇄적 표준화 문제풀이 수업에 가두어버려서는 안 된다. 또한 학교가 단순히 에듀테크들이 제공하는 학습 플랫폼의 프로그램들을 ‘구독’하는 사용자이자 데이터 제공자임과 동시에 비용 지불자로 전락하게 해서도 안 된다.
요컨대 향후 디지털 교과서의 가장 큰 과제는 ‘답 없는 개방된 질문들’을 생성하고 스스로 답하게 만드는 창의적 학습을 지원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해내는 것이다. 이것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며,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다. 현재 문제풀이 중심의 학습분석을 무리하게 모든 과목에 적용할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특히 영어 과목의 경우, 지금까지 문제풀이와 오답 분석 방식으로 영어를 학습해온 폐해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같은 잘못을 ‘인공지능’이라는 허상으로 가려서는 안 된다.
만약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면, 2025년에는 수학 과목 정도만 실행하면서 그 효과를 분석해보는 것을 제안한다. 2026년 이후의 계획은 유보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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