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막걸리에 색소·향료 넣지 마라

기자 2024. 7. 3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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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가 2024년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그 개정안 중에 설마하고 우려했던 법안이 들어 있어 충격적이다. 막걸리에 색소와 향료를 넣겠다는 것이다. 법은 왜 있는가? 모든 것을 허락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라면 법은 필요 없다. 막걸리에 무언가를 마구 집어넣는다는 것은, 막걸리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 뿐이다.

우리네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는 색소와 향료가 들어간 막걸리를 드시지 않았다. 농사지은 밀로는 누룩을 만들고, 쌀로는 고두밥을 지어 물을 섞어 막걸리를 빚어 나눠 드셨다. 동네에 있었던, 집안에 전해졌던 막걸리가 상품화되면서, 막걸리 회사도 생겨났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그 전통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그 전통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소규모 주류 제조의 붐을 타고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2021년에 국가유산으로 지정한 막걸리 빚기에 색소와 향료를 넣어 혼란에 빠뜨리는가?

답답한 마음에 양조인들이 내게 물어온다. 앞으로 오미자 막걸리를 어떻게 제조해야 하냐고. 오미자를 얼마나 넣어 오미자 맛을 낼 것인가, 오미자 발효에서 올라오는 독특한 발효향을 소비자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의 고민은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게 아니냐고. 오미자빛 색소에 오미자향을 몇방울 넣고, 미안하니까 오미자 몇줌 넣어 오미자 막걸리를 만들어내면 어찌할 거냐고. 그 양조인은 자신이 농사짓는 오미자를 배신하고 다국적기업에서 만든 향료와 색소에 의존하게 될, 또 다른 자신의 미래를 두려워했다.

그렇다면 이 법안으로 누가 이득을 보는가? 막걸리를 대량생산하고 대량유통하는 중대형 막걸리 양조장들이다. 이들은 이미 향료와 색소를 넣은 막걸리 타입의 술을 만들고 있다. 향료와 색소를 넣으면 막걸리라 할 수 없어서, 기타주류로 분류되어 주세를 30% 정도 내고 있다. 종량세가 된 막걸리가 5% 정도 주세를 내고 있는 것에 견주면 더 높다. 그래서 이참에 주세를 낮춰 막걸리 시장에 진입하겠다는 것이다. 해외 수출로 막걸리의 날개를 달겠다고 하는데, 수출 막걸리에는 주세가 원래 붙지 않고, 영어나 현지어로 술 이름을 적으니 굳이 막걸리 이름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수출은 핑계일 뿐, 국내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스카치 위스키엔 향료와 색소를 넣을 수 없다. 오크 향료와 색소가 있는데, 그걸 넣어 더 쉽게 더 많이 만들어 더 많은 돈을 벌지 왜 그러지 않는 걸까? 위스키 종주국이 지닌 자부심이 그 안에 녹아 있고, 정통성을 통해 더 큰 가치를 구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정통한 가치를 지키는 게 위스키 가치를 높이고 문화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막걸리에 왜 그런 가치를 부여하려 하지 않는가?

일본엔 맑은술에 분유와 사케 지게미를 넣고 아스파탐을 첨가해 막걸리라고 부르는 술이 있다. 그건 막걸리가 아니라고 내가 말하니, 일본인 양조인은 일본엔 막걸리의 정의가 없다고 웃으며 말한다. 한국 막걸리가 일본에서 잘 팔리니, 일본인들이 비슷하게 만들어 파는 것이다. 답답하고 어이없는 일이다. 그런데 대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우리 전통 속에 단단하게 이어져온 막걸리의 존재를 부각시켜내는 것이, 해법이다.

막걸리를 국가유산으로 지정하고, 막걸리로 한국 음식의 매력을 드높이려는 이때에, 향료와 색소라니! 당신의 아버지에게도 색소와 향료가 들어 있는 막걸리를 드릴 것인가? 막걸리는 색소와 향료로 변주된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막걸리는 한국인이 누대로 즐겨온 액체밥이다. 그 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공동체는 전진해가야 한다.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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