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아우슈비츠의 ‘월든’

기자 2024. 7. 3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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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답고, 가장 잔혹한 낙원이었다. 어쩌면 나와 우리의 삶이란 약자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시스템 위에서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영화였다. 극장을 나오며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생환한 작가 장 아메리가 “가끔 히틀러가 사후에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Zone of Interest)>(2023)는 스위트 홈을 추구하며 안락을 위한 전체주의를 용인하려는 우리 안의 무의식을 통렬하게 꼬집는 영화였다.

여기, 여행엽서에 나올 법한 완벽한 집 한 채가 있다. 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 부부가 사는 집이다. 이들 가족이 사는 집은 지상에 구현한 그야말로 완벽한 천국이다. 남편인 루돌프 회스가 말을 타고 출근하면, 아내 헤트비히는 아이들을 돌보고 온 집 안을 아름답게 가꾼다. 이들의 정원에서는 온갖 꽃과 나무 그리고 작물들이 무럭무럭 잘 자란다. 유대인 하녀들은 집 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으며 가족들을 돌본다. 휴일이면 아이들과 강에서 소풍을 즐기며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나날들을 보낸다. 부족한 것 하나 없는 완벽한 나날이다.

문제는 모델하우스 같은 그들의 집 바로 옆에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가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누구도 저 ‘담장 너머’를 상상하지 않는다. 저 너머에 강제수용소가 있다는 흔적 자체를 지우기 위해 애쓴다. 아우슈비츠의 ‘월든’을 가꾸는 데 누구보다 진심이다. 유대인 문제의 최종적 해결이라는 이름의 인종청소 및 인종박멸을 추진했던 나치가 생태적 순수성을 지향하며 에코파시즘을 추구하려 했다는 점을 연결하고자 한 감독의 탁발한 의도가 읽힌다. 사람들은 아내 헤트비히를 두고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괴물이 어떻게 탄생하는가를 다룬 영화였다. 그리고 그 괴물은 악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숱한 희생자들의 ‘신발’ 같은 유품들은 관객들이 어찌할 수 없이 영화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그렇듯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강제수용소 안의 끔찍한 풍경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오직 총성 같은 소음, 굴뚝에서 하염없이 나오는 하얀 연기 등의 연출로 간접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음향’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소리가 사운드(sound)가 되고, 어떤 소리가 잡음(noise)이 되는지 우리는 식별해야 한다.

영화 속 부부는 실존 인물이었다고 한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장 회스 부부가 구현한 지상천국의 스위트 홈의 모습에서 현재 우리가 누리는 삶이란 역(逆)유토피아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저 담장 너머를 생각하지 않으려는 아우슈비츠 여왕의 모습은 현재 나의 모습과 얼마나 먼 것일까. 그리고 제노사이드(genocide·대학살)와 에코사이드(ecocide·생태학살)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멀까 생각하게 된다. 자연을 대상으로 한 ‘살처분’은 지구 곳곳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나는 너무나 아름답게 꾸며놓은 아우슈비츠의 ‘월든’에 쉽게 입주하지는 못하겠다. 괴물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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