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원두막 나이트
경상도에선 ‘먹여줘’를 ‘미이도’라 한다. 무슨 섬 이름이 아니고 미이도~. 친구 하난 그쪽 동네에서 나고 자랐어. “성아. 수박 미이도~” 징징대자 형이 “찡꼴대지 말고 뚝. 니캉내캉 수껌댕이 묻히고 푸대짜루 들고 나가자. 니는 여풀떼기에 딱 붙어 있거레이”. 수박 서리로 단맛을 본 콩닥콩닥했던 그 기억을 잊지 못하겠대. 삐용삐용 순찰차만 지나쳐도 수박 서리 생각이 나서 뜨끔하다니 이제라도 자수하여 광명 찾아라. 법인카드를 마구 긁고 다니는 분들 비하면 소심하고 순진한 촌뜨기가 분명해.
영화감독 이창동의 단편소설 ‘하늘등’은 대학물을 먹은 용궁다방 레지 ‘신혜’씨가 주인공. 강원도 탄광촌 경찰들이 위장취업을 의심하여 돌아가면서 취조를 한다. ‘좌경용공 뿌리 뽑아 민주질서 수호하자’ 표어가 붙어 있는 데서 말이다. “너 공산주의자야 사회주의자야? 야 다 알고 묻는 거니 솔직히 말해봐.” “정말이에요 전 목돈이 필요했어요. 다음 학기 등록금을 준비해야 하거든요.” 속옷까지 벗겨진 채 몹쓸 고문을 당하고 풀려난 선혜는 서울로 잘 돌아갔나 모르겠다. 몇날 며칠 쫄딱 굶었을 텐데 단팥빵이라도 한 개 깨물었는지.
과거엔 수박밭을 지키겠다며 밭임자가 원두막을 짓고 손전등을 치켜들면서 꼬박 불침번을 섰다. 그러다 모기장 속에서 꾸벅 곯아떨어지면 달큰한 수박물에 홀린 개구쟁이들이 밭둑으로 기어올라왔다. 아라비안나이트 못지않은 원두막 나이트. 풍디(풍뎅이) 돌듯이 밤을 샐 이야기들이다.
산밭의 수조에 달빛이라도 반사되면 불 켜진 원두막인가 궁금해진다. 반딧불도 있고 도깨비불도 휘돌아. 캄캄한 유치장에 켜둔 등같이 죄고만 달이 둥시럿 뜬 밤. 여태도 ‘무시라~ 무서버라’ 잡아 족치는데 능통한 자들이 웃깍단(윗마을) 원두막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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