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3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있기를”

전지현 기자 2024. 7. 31. 20: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권위원장 후보 사퇴한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인권위원회 차기 위원장 후보에서 사퇴한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30일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사퇴 이유와 인권위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정치권력과 각을 세워야 하는 조직
존재 자체 걱정하고 싸워야 할 때
정부가 예산·인사권 틀어쥔 상황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판단
안이 아닌 밖에서 목소리 내겠다”

“지금은 자리가 아니라 인권위원회 존재 자체를 걱정하고 이를 위해 싸워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후보 중 1명으로 추천됐지만 지난 26일 사퇴했다. 한 교수는 지난 3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인권위 ‘내부’로 들어가기보다 ‘외부’에 남기로 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참여연대 공동대표이기도 한 한 교수는 인권위 후보추천위원회가 오는 9월 퇴임하는 송두환 인권위원장의 후임으로 대통령에게 추천한 후보 5인에 포함됐다. 타인 추천으로 인권위원장 서류심사에 입후보하게 된 한 교수는 심층질의서에 답할 때부터 고심이 깊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인권위 상황, 특히 정치적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안에 들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이 회의 운영 및 의결 방식 등에 대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파행이 계속되는 상황, 정부가 인권위 예산과 인사를 틀어쥔 구조에선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 교수는 최영애 전 인권위원장이 최종 지명된 2018년에도 위원장 후보에 들었다. “그때는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았죠. 이번하곤 달랐어요.” 한 교수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는 인권교육원을 제대로 만드는 것, 현재 자유권에 한정된 인권위의 권한을 사회권까지 확장해 ‘기후위기’ 등 새로운 의제를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변화를 꾀하는 것을 꿈꿨다고 했다.

한 교수는 “인권위는 기본적으로 다수 및 정치권력과 각을 세워야 하는 조직”이라고 했다. 그는 “인권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갖지 못하는 사람의 목소리이자 비명’”이라고 말했다.

2003년 인권위가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를 내릴 때 꾸려진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당시엔 권위주의 체제에서 국가보안법 피해를 본 이들의 목소리를 인권위가 대신한 것이었고, 지금은 주거약자나 성소수자 등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 인권위의 역할”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이번 정부에서는 인권위가 정치권력의 압력을 버텨내기 어려운 국면을 맞이했다고 평가했다. 현 정부가 ‘인사권’을 무기로 인권위에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도 했다. 한 교수는 “현 정부는 ‘인권’이라는 두 글자 자체를 선호하지 않거나 혹은 때에 따라 배척하는 지경이다 보니, 인권위의 권한을 질적으로 확장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자신의 지론대로 인권위 내에서 정치권력과 각을 세우며 일을 하는 게 인권위라는 기관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했다. 그는 “안보다는 밖에서 인권위가 제대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게 옳겠다고 결론 내렸다”고 했다.

“앞으로 3년 동안 인권위가 죽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2001년 출범한 인권위가 크고 작은 내홍을 버티고 성장하는 모습을 쭉 지켜본 그의 바람은 소박함을 넘어 절박했다. 새로 임명될 인권위원장 임기 3년,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인권위가 버텨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한 교수는 위원장과 위원으로 누가 오든 인권위 사무처 직원 및 조사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현병철 위원장 시절 6년 동안 인권위가 무력화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인권위 자체를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더 저하된 상황”이라며 “그래도 지혜를 모아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한 교수는 “저는 밖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며 인권위 관계자들을 향해 “버텨주시라”라는 당부를 전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